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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참 교육의 오산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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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 김기석은 1920년대 초반의 오산학교를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도시에서 온 학생들은 오산의 흙 냄새와 개구리 소리가 한없이 정다웠다. 그들은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는 재석산과 모안이의 아이포와 쑥섬으로 갔다.

재석산에 올라 서쪽 바다를 굽어보고 멀리북쪽과 남쪽을 바라볼 때 고구려의 융성과 신라의 번창이 마치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오산은 배움의 동산이요, 노래의 동산이었다. 학생들의 입에서는 늘 노래가 흘렀다.

교가, 창립 기념가, 동문회가, 운동가, 오산경가, 도산 안창호의 거구가, 한양가, 모란봉가도 불렀다. 찬송가도 많이 불려졌다. 방과후에도 선생과 학생이 한자리에 모여서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같이 놀고 하여 스승과 제자 사이도 친형제 같았다.

선생들은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은 물론 그 학생의 고향, 장기(장기)가 무엇인지, 성격이 어떤지까지 알았다. 저녁길이나 운동장에서 만나면 마치 가까운 친구 사이인 양 서로 정답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오래도록 함께 걸었다.

상급생 사이도 우정이 두터웠다. 그러면서도 선생과 제자는 참 존경과 신뢰로 결합되었다. 수업 중에는 선생에 대한 존경과 새로운 지식에 대한 설레임으로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학우들간에는 평생을 함께 할 친형제 이상이었음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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