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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미 0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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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있읍니다. 이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운동을 좋아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음악을 좋아하고 또 어떤 사람은 문학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여러가지의 취미가 생기는가 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도 좋아하는 것이 있고 원하는 것이 있읍니다. 하나님에게는 세가지의 취미가 있는데 첫째는 음악을 참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일 먼저 천군천사들을 창조하셔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셨고,세상만물들도 다 노래를 하게 하였읍니다. 새들만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도,파도도 철썩거리면서 노래를 합니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그 중에서도 악기중에 최고의 악기입니다. 지난번 내한했던 [루드밀라 남]이란 한국계 러시아사람은 우리 한국인들을 완전히 사로잡고 갔읍니다. 어떻게 그런 아름다운 노래가 나올 수 있느냐고 모두들 감탄을 했읍니다. 게다가 분단의 아픔까지 폭발해서온통 눈물바다가 되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읍니다.

하나님의 두번째 취미는 창조하는 일입니다. 세상뿐 아니라 그 가운데 많은 것들을 만드셨읍니다. 나무도 왠 종류가 그렇게 많은지, 또 꽃을 보세요 그얼마나 종류가 많습니까 모양은 물론 그 색깔도 가지가지입니다. 하다못해 곤충만해도, 예를들어 개미만 해도 그 종류가 수백가지가 넘습니다. 정말 우리 하나님은 만드는 것을 참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의 세번째 취미는 그의 백성들과 함께 지나는 것입니다. 대화도 하시고, 만나기도 하시고, 마치 자성한 아버지처럼 늘 함께 지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지난번 제 생일 때였읍니다. 그날따라 외로움을 느꼈읍니다. 그래도 서울에 있을때는 카드도 있고, 또 축하도 받다가 대전에 와서 단한통의 축하전화도, 생일카드도 없이 하루를 보내니까 교수로 있을때가 좋았구나 하는 생각이 나더군요.

그러나 미국에 있는 아들이 보낸 편지 한통이 제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읍니다. 다른 것은 없어도 그것으로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었읍니다. 아버지란 누구나 자녀들과 함께 하고 대화하고 할 때에 기쁨이 있는가 봅니다. 이것은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속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위해서 참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읍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눌려고 합니다.

[1] 본문은 인간은 근본적으로 열망하는 것, 꼭 필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말해줍니다. 그것은 바로 창조주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그러면 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에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도록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의 형상대로 만드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나 지식이나 만물을 통치하는 능력을 인간에게 주셨다는 것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읍니다. 달이 한 순간도 태양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고 지구도 태양을 떠나서는 단 한 순간도 존재할수 없고 지구도 태양을 떠나서는 단 한 순간도 살아있을 수 없듯이 인간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그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고 그 생명도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다는 점입니다.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지도 못하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 앞에서 있지도 못하고...

바로 이 간격은 인간의 죄 때문에 생겨집니다. 휴전선보다도 더 무서운 간격이 바로 이 죄의 담입니다. 그리고 이 간격을 없애주기 위해서 인간은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큰 착각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그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을 만족하게 할 수 는 없읍니다.

그러면 왜 인간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라고 했읍니다. 경배한다는 말은 슐라이엘마하가 말한대로 절대 의존의 감정을 의미합니다. 시계를 만든 의미는 시간을 바로 가르쳐 줄 때에 나타나듯이인간의 의미는 하나님께 경배할 때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참된 의미를 느끼게 되고 또 영적으로 삽니다.

[2] 본문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인간에게는 두가지 종류의 간격이 있읍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생겨지는 근본적인 간격, 이것을 종적 간격이라고 부릅니다. 죄로 말미암아 생겨지는간격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겨지는 수평적 간격, 즉 횡적간격이 있읍니다. 이 간격은 종적 간격의 결과로 생겨지는 것인데 이것은 믿음과사랑으로서만이 해결됩니다. 최근 미국과 한국이 사상 유래없는 감정적 간격을가지고 있읍니다. 시발점은 한국팀의 복싱선수가 불공정한 판정을 폭력으로 항의한 것을 NBC가 한국의 뒷 골목은 물론이고 6.25 때를 소제로 한 Mash 란 작품까지동원하면서 과장되게 보도한 것을 기회로 발단되었읍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국에서 마치 기다리기라고 했다는듯이 입장식 때의 미국팀의 예의 없는 태도나, 또미국의 수영선수인 댈비의 호텔에서의 절도사건, 육상선수가 택시를 발로 찬것 같은 별로 중요치 않은 것을 대서특필 하면서 국민적 감정으로 심화된 것입니다. 게다가 미국NBC에서 이태원에서 T셔츠에 영어로 한국을 조롱하는 단어(We're Bosing.

We're Bad. 라든지 Chaos 88)와 태극기 안에 복싱을 하는 그림같은 것을 그려서 맞출려다가 거절당한 사건이 나오면서 불을 붙였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따지고 보면 서로간의 불신에서 시작됩니다. 미국은 아직도 6.25 때의 한국을 생각하면서 한국을 깔보고 있고, 또 한국은 그래도 우리는 올림픽을 개최할만큼 성장한 나라인데 하는 선진국 의식의 자존심을 가진 민족감정이 결국 충돌한 것입니다.

그러면 섬처럼 떨어진 이런 간격을 무엇을 가지고 연결할 수가 있읍니까 이것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떤 외적인 그 무엇을 가지고는 불가능합니다. 번제물을 바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또 몸의 열매를 드린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참된경건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3] 따라서 참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참된 경건입니다. 참된 경건을 본문에서는 세가지로 말씀하고 있읍니다.

첫째는 공의를 행하는 것이라고 하였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로운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공의를 행한다는 말은 단순히 의를 행한다는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남을 억압하거나 착취를 하지않는 것은 물론이고 남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황금율은 공의에 대한 가장 적절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공의란 남에게 무엇을 안하는 그런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기가 받고싶은 대접을 남에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읍니다. 우리가 남에게 받고싶은 것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대접도 받고싶고, 친절도 받고싶고, 칭찬도 받고싶을 것입니다. 이것을 행하는 것이 바로 공의를 행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인자, 즉 자비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였읍니다. 이것은 바로 용서와 사랑을 의미합니다. 자비란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는 용서를 하는 것이고,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에게는 사랑을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에게는 관용하면서 남에게는 너무도 엄격합니다. 그래서 남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이라는 것을 잊었기때문입니다. 우리는 억만가지의 죄를 용서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남의 조그만 잘못을 용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러지를 못합니다. 그러나마 18:35절에서 주님은 남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그를 용서하지않는다고 하였읍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그러면 용서란 무엇을 말합니까 원어에 보면 덮어준다, 기억지 아니한다,보내버린다는 뜻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렇게 하고 있읍니까 미국에 잠페리아이라는 육상 선수가 있었읍니다. 그는 1936년 우리 손 기정씨가 마라톤에서 일등을 했을 때 출전한 사람입니다. 그는 2 차대전때 군에 입대하여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일본군함의 사격에 의해 추락하여 태평양에 표류하다가 일본 포로가 되어 가진 고생을 다 했읍니다. 포로후에도 병으로 인해 계속고생을 하였읍니다. 의사가 말하기를 당신의 마음에 미움을 가지고 있는 한 이병에서 낫기가 어렵겠읍니다 라는 충고를 받았읍니다. 그러나 아무리 잊어버릴려고 해도 잊을 수가 없었읍니다. 마침 빌리 그레함 전도 집회에 참석했다가 주님을 영접하고 새 사람이 되었읍니다. 그의 마음 전체를 지배하고 있던 모든 미움이 사라졌읍니다. 그 후 그는 맥아더 장군에게 편지를 보내어 특별 허락을 받아 자기를 괴롭혔던 일본 군인들을 감옥에서 만나 자기의 심정을 말하고 이제는사랑으로 다 용서하므로 아무런 미움이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선포하였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인간의 미움을 이길 수 있읍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체험할 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들 가운데 과거의 어떤 일로 인해서 잘못한 것이 있다면 다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잘못한 것이 있다면 혹이나 성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있으면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는 것입니다.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만 보지 말고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면서 내가 부족해서 그래 하며 통회 자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나의 얼굴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기차여행을 하고 있는데 마침 앞에 예쁜 여자가 앉아있었읍니다.

목사로서 먼저 말하기도 그렇고 또 모른척하기도 그렇고... 그런데 그 여자는 자꾸만 입에 미소를 머금고 말을 하려다가 말고 또 하려다가 말곤 하는 어색한 분위기가 계속되었읍니다. 그런데 잠깐 잠이 든 사이에 그 여자승객은 내렸고 예쁘게쓴 편지가 한장 있었읍니다. 바로 그 여자 승객이 놓고간 것이었읍니다. 가슴이두근거리는 것을 참고 보니 거기에 이렇게 기록되었읍니다. 목사님이신 것 같은데 거울을 보십시요. 그래서 얼른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니 밥풀 두개가 얼굴에 묻어 있었고 입가에 자죽이 있었읍니다. 아아구, 호감이 가서 그런것이 아니라 밥풀을 떼라고 말을 하려다가 그만둔것을 알았읍니다. 우리는 자기 얼굴을 못보기 때문에 괜히 오해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의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비쳐보고 서로서로 용서합시다.

그러나 이런 소극적 행동만으로는 부족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남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고 했읍니다. 바로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이야기를 보면 대부분이 목사의 얘기고 대개는 흉보는 얘기입니다. 문제는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있읍니다. 사랑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보이고, 미운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밉게 보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나 중심, 내 교회 중심의 삶을 살고 있읍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한국에는 [김가] 보다[내가]더 많습니다. 바로 이것이 죄입니다. 죄란 타인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것이라고 하였읍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말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이요 또 하나님에게 우리의 삶을 바쳐서 봉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에 보면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한 것밖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읍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에서 가장 이상적인 신앙인으로 묘사되고 있읍니다. 중요한 것은 그 무엇을 하는 것이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그 어떤 의식으로도 대치할 수는 없읍니다.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있읍니다. 누가 과연 이런 경건을 하나님 앞에서 행할 수 있읍니까 없읍니다. 아무도 없읍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셨읍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를 위해 살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대속물이 되셨고 또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서도록 해주셨읍니다. 이제 우리는 내가 무엇을 행하지 않고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읍니다. 행함으로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내 모습 그대로 주님앞에 나왔아오니 주여 받아 주옵소서 하며 나오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시간 남의 잘못은 다 용서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의를 행하고 사랑을 베풀고,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귀한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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