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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하는 자의 자세 (눅 1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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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예수님이 어떤 곳에서 기도를 하시다가 기도를 다 마치시게 되자 한 제자가 예수님께 “주여! 세례 요한이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던데 세례 요한이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준 것처럼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십시오” 하였을 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하시면서 가르쳐 주신 것이 주기도문이겠습니다.
주기도문은 기도를 어떤 내용으로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준 것이라면 오늘 말씀은 주기도문을 바탕으로 “기도하는 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본문 말씀을 통하여 3부분으로 나누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① 먼저는 5-9절로 기도하는 자의 자세가 간청의 자세이어야 함을 말씀 드리고,
② 둘째는 9-12절로 기도하는 자가 신뢰의 자세로 기도하여야 함을 말씀 드리고,
③ 셋째는 13절로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이심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Ⅰ.먼저 기도하는 자의 자세는 간청의 자세이어야 합니다.(15-18)

팔레스틴에서는 낮 기온이 40℃를 오르내리므로 여행자들은 흔히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저녁 늦게 여행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 가운데 나오는 이 여행자도 거의 한밤중에 라야 자기 친구 집에 도착을 했습니다.
고대 동방에서는 자신이 궁하여도 손님이 찾아오면 손님 대접에 힘을 쓰는 것을 미풍으로 여기며 이를 신성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한 밤중에 찾아 온 친구는 여행에 지치고 몹시 배가 고팠습니다. 그러나 그 집에는 저녁 식사를 다하고 남은 빵조차 없었습니다. 친구에게 줄 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이웃집 친구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며 떡 세 덩이를 빌려달라고 구했습니다.
이 예수님의 이야기 가운데 나오는 집은 부유한 집이 아니고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팔레스틴의 가난한 집의 가옥은 작은 창문 하나만 달린 단칸방이 많았습니다. 마루는 마른 갈대와 골풀로 덮어 단순히 흙으로 다져 만든 것입니다. 방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졌는데 칸막이로 된 것이 아니라 높낮이로 구분을 했습니다. 유대에는 이런 한 방에 자녀들과 종들이 심지어는 가축들까지 함께 잠을 잤습니다. 저녁에는 닭이나 소나 양이나 염소들까지도 집안으로 몰고 들어와 함께 잠을 자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일어나게 되면 온 집안 식구들과 종들과 짐승까지도 다 깨어서 일어나므로 어려운 것입니다.
문을 두드리니까 닭은 놀라서 “꼬꼬댁”하며 날개를 치고, 염소는 “음매”하고 울고,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7,8절을 보십시오.
“저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롯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 할찌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하셨습니다.
이는 순전히 간청 때문에, 끈기 있게 졸라대기 때문에 일어나 줄 것을 예수님이 비유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함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문을 몇 번 두드리다가 친구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만 포기하고 가 버리지 말고, 문을 열어 줄 때까지 줄기차게 적극적으로 매달리고 염치 불구하고 구해야 함을 말씀한 내용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간청의 기도가 많습니다.
① 특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와 거기 있는 롯을 위하여 간청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의인 50인만 있으면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한 후에 45인, 40인, 30인, 20인, 결국 10인으로 깍아 내리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간청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창세기 19:29절에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 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했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줄기찬 기도를 들으시고 롯을 구원하셨습니다.
② 또, 누가복음 18장에 끈기 있는 기도를 할 것을 예수님이 비유하셨습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었는데 그녀는 자주 재판관을 찾아가서 자기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 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재판관은 얼마 동안 그녀의 간청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가 마침내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녀의 간청을 들어주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아침, 저녁으로 늘 와서 간청하면 이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그 간청을 들어주었다고 하시며 불의한 재판관도 들어주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지 않겠느냐, 오래 참으시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셨습니다. 주의 말씀을 듣고 줄기차게 끈기 있게 기도할 자가 있겠느냐 하셨습니다. 여기의 간청(强請)은 헬라어 “아나이 데이아”로서 “부끄러움도 없는 파렴치한” 이란 뜻입니다. 때와 장소, 사람을 가리지 않고 성가시게 끈기 있게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간청하는 기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소용대로 주리라(8)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해 달라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해 달라고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죄를 사해 달라고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고 줄기차게 끈기 있게 기도하면 하나님은 꼭 들어주실 것을 밤중에 찾아온 벗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여 주셨습니다.(5-8)

Ⅱ.둘째는 기도하는 자가 신뢰하는 자세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9-12)

창세기 15장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겠다(4), 땅을 주겠다(7)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자식을 주시겠다 할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세나 됐습니다. 육신적으로는 가망이 전혀 없을 때이므로 아브라함은 믿지 않았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을 캄캄한 밤에 데리고 나가서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과 은하수를 처다 보게 하시며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믿었습니다. 이렇게 믿었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의(義)로 여기셨습니다.(창15:6) 또, 땅을 주시겠다(15:7) 하셨습니다.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業)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우르에서 불러낸 여호와라”하니 아브라함이 믿지를 않았습니다. 내가 무엇을 보고 믿겠습니까 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더러 3년 된 암소와 3년 된 암염소와 3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집비둘기를 잡아 그 중간을 쪼개어 마주 대하여 놓으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그 유명한 언약(Covenant)이 체결됩니다. 언약(Covenant)은 히브리말로 <베리트>인데 자르다, 썰다, 끈다는 뜻입니다.
개인이나 국가의 왕들이 언약을 체결할 때, 이렇게 합니다. 고기를 쪼개어 놓고 그 쪼갠 고기 사이로 두 사람이 지나가면서 이 쪼개진 고기를 봅니다. 어느 쪽이든 언약을 어기면 저 고기처럼 쪼개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세기 15:17절에 아브라함이 쪼개어 놓은 고기 사이로 친히 하나님이 지나가셨습니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개어진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약속을 어기면 하나님 당신이 이 고기처럼 썰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을 하시면서 아브라함더러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천지는 없어져도 이런 하나님의 약속들은 일점 일획도 변함없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이런 이 맥락을 기억하시며 예수님이 약속하신 말씀, 본문을 상고하십시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 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그럴 아비가 없듯이 너희 하늘 아버지는 너희 구하는 것을 꼭 주신다고 비유를 들어 신뢰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신뢰하며 구할 것을 말씀합니다.
주님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하셨습니다. 야고보 4:2절 하반 절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했습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끈기 있게 그리고 신뢰하며 구하여 받고 두드려 열리고, 찾아 얻어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Ⅲ.셋째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밤중에 찾아 온 벗”의 이야기는 지구력 있게 기도해야 된다는 것도 되고, 줄기차게, 끈기 있게 간청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도 합니다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도하는 그 이상의 좋은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도 않는 것을 억지로 때를 서서 우리의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그리고 강제로 기뻐하시지도 않는 것을 받으려고 응답이 올 때까지 문이 부셔져라 두드려 짜내고 얻는 것을 말함이 아닙니다.
비유란 것은 원래 헬라어로 “파라보래”로서 “옆으로 던진다. 옆에 놓여 있다”는 뜻으로 곁에 있는 것을 들어 견주어 교훈 하여 주는 것이겠습니다.
이 구절의 요점은
인색해서 마지못해 떡을 내어 주는 집주인이거나, 그 친구의 염치없는 인내심에 억압이 되어 내놓은 것이 아닙니다. 마지못해 내어놓은 것이 아닙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했습니다.
마태는 7:11절에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했습니다.
하여튼 구하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려고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것을 믿으며 또 억지로 마지못해서가 아니고 기쁘게 제일 좋은 것으로 주시는 아버지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아버지를 믿으며 기도하십시다.
당시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치시고 기도의 자세를 가르치신 것은 제자들에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도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던데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시옵소서 했을 때 하신 말씀입니다 이렇게 오늘 전한 기도의 자세를 말씀하시고 구하면, 하나님이 기쁘게 응답하십니다.
구하는 이가 받고 ,
찾는 이가 찾게 되고,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게 되고,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줄 아버지가 없고,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의 고기를 줄 아버지가 없고,
달걀을 달라 하면 전갈을 줄 아버지가 없듯이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제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은 “성령”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제자들이 바라는 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이었습니다.(행1:6)
유대는 로마에 속국으로 있었기 때문에 로마를 뒤엎고 해방을 받아 유대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보실 때, 제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은 돈이 아니요, 자식이 아니요, 명예도 아니요,이스라엘이 회복되어 장관을 지내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사도 행정 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좋은 성령을 주시려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7일간 간절히 기다리며 기도를 했을 때, 오순절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제자들은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로마, 인도, 저 아프리카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며 귀신을 쫓아 내고 병을 고쳤습니다.
베드로는 하루에 3,000명, 5,000명, 수 만 명을 회개시킬 수 있었고, 그림자만 지나도 병이 나았습니다.
제자들에게 가장 좋은 것은 “성령”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기도하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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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 6. 주일 낮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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