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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탄식 (창 06:1-12)

첨부 1


설교의 도움이 될까 싶어 지난 몇 시간을 되새겨 보겠습니다.
4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를 열랍 하시고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이 열랍지 않으셨습니다. 이로 인해 가인은 시기하여 아우 아벨을 들로 불러내어 쳐죽였습니다. 이런 가인을 하나님은 길이 참으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 앞을 떠나 나갔습니다.
여호와 앞을 떠난 가인과 그 후손들은 하나님 없이 사니까 살인과 간음과 첩을 두고 온갖 악을 자행하며 땅에 번성하였습니다.
반면에 아벨 대신 주어진 셋을 통한 신앙의 후손들은 그래도 5장에 보면(4:25-26, 5:1-32) 믿음을 지키며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경건하게 살다가 낙원에까지 그대로 걸어 들어간 에녹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아 시대에 와서는 신앙자의 후손 셋의 후손도, 불신자의 후손 가인의 후손들의 죄악에 물들어 온갖 죄악을 행하게 되었고 온 땅이 여호와 앞에 패괴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돌이킬 수 없는 죄악에 빠진 사람들로 인하여 심히 탄식하시고 슬퍼하시며 이들을 물로 심판하실 것을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대에 세속에 물들지 않고 믿음을 지킨 노아란 어른이 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탄식과 노아의 신앙에 대하여 살펴 가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Ⅰ.육체가 된 인간(1-4)

1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노아 시대까지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죄의 세력도 동시에 암과 같이 퍼져 나갔습니다.
2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던 신앙자 셋의 후손들을 가리킵니다.(창4:26)
또한, 사람의 딸들이란 불신앙자 가인의 후예들을 대표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불신앙자 가인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습니다.
이것은 믿는 자들이 타락하여 불신자들과의 차이가 없어졌음을 말합니다.
가인의 후에 라멕 대에 내려가서는 최초로 라멕이 첩을 두었는데 그 첩이 아다요, 씰라인데 아다는 꾸미고, 씰라는 딸랑거린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마 가인의 후손의 딸들이 예쁘게 꾸미고, 딸랑거리며 돌아다녔던 것 같습니다. 짙게 화장을 하고, 눈웃음을 치며, 아기죽거리며 하나님 섬기는 셋의 후손의 남성들을 유혹하였습니다.
그래서 남청년들은 멍하니 넋을 잃고 정욕의 노예가 되어 정신을 못 차리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자들로 아내를 삼았습니다.
그 자매들이 거듭났는가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소원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보지 않고 외모로만 살펴 아내로 삼았습니다.
결혼이란, 하나님이 창설하신 것이기 때문에 거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도록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결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나의 영적 생활에 발전이 되는가 이 결혼을 하여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가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결혼을 해야 하는데 셋의 후손도 가인의 후손의 영향을 받아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을 위한 수단으로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적 결혼관이 무너지고 성격적인 결혼관이 없었습니다.
신자들이 생각하는 결혼관도 불신자들이 생각하는 결혼관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만 이기적인 욕심과 육신의 정욕대로만 결혼을 합니다.
결혼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결혼은 인륜지대사입니다. 가장 큰 일은 하나님께 맡겨야 가장 안전합니다.
그런데 셋의 후예들도 가인인 불신자의 물이 들어서 결혼만큼은 내 맘대로 하려고 합니다. 내 좋은 대로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합니다.
요사이 신자들이 불신자보다 더 인간적으로 따집니다. 더 육신적입니다. 하나님 좋도록 결혼을 해야 하는데 자기들 좋도록 결혼을 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생각해야 하는데 그것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결혼의 대상이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는 보지 않고 인물 찾고, 학벌 찾고, 재산 찾고, 신앙은 맨 끝에 두고 찾습니다. 목사에게 와서 하는 말이 “목사님, 우리 집에 와서 믿게 하면 안되겠습니까” 라고 하며 불신자 보다 더 육신적이요, 정욕적입니다.
성서적인 결혼은 어디까지나 중매 결혼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십니다. 창세기를 계속 공부하노라면 하나님은 연애 결혼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 나라는 얼마 전만 해도 중매 결혼이 많았습니다. 중매 결혼한 분들은 그래도 그냥 그냥 잘 사는데, 저희들끼리 좋아서 연해 결혼한 가정들은 갈수록 이혼율이 높아 갑니다.
요사이 부모들은 “ㅇㅇ야,너는 없느냐 데려와 봐라” 하며 데려오면 외모만 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람인가 신앙이 있는가 그것은 보지 않고 외모만 보고 내 맘에 드는지 그것을 먼저 봅니다. 그랬다가 큰 코 다치는 분들 많습니다. 또, 사람을 데려 오는 자가 효자라고도 합니다. 많이 부패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어떻게 여기셨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니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되리라”
여기 “육체가 되었다”는 말은 동물과 같이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성을 가져야 될 인간이 그것은 가지지 않고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성이 완전히 단절되고, 동물과 같이 육체적인 본능과 욕구대로만 살았다는 말입니다. 이같은 이들의 생활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고(눅17:27) 지적하셨습니다. 이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집 짓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영적인 일,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육신적이요, 정욕적이요, 동물적인 삶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하셨습니다.
이를 공동 번역에서는 “사람은 동물에 지나지 않으니 나의 입김이 사람들에게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을 수 없다”(3)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날은 120년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심판을 작정하신 것입니다.
더욱이 4절을 보십시오.
당시에 네피림(장부)이 있었으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요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네피림은 “덮친다”는 말에서 온 이름으로 “침략자, 폭군”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들은 육체를 자랑하며 약자를 괴롭히며 강포를 향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 사이에 자식이 태어났는데 “용사”라 했습니다. 이는 혼혈 족이 났다는 말입니다. 이들이 건장해서 “용사”같이 되어 스포츠를 즐기고 건강한 육체로 정욕만 즐겼습니다.
벌써 120년 후에 멸망하리라는 심판이 정하여 졌는데도(3) 하나님의 아들들은 회개할 줄 모르고 죄를 물 마시듯 하면서 살았습니다. 글자 그대로 육체가 된 세상이 되버렸습니다.

Ⅱ.하나님의 탄식(5-7)

5,6절을 보십시오.
세상에 사람의 죄악이 점점 더 늘어나서 관영 했다고 했습니다.
관영은 “차고 넘친다”는 뜻입니다.
또, 그 마음의 생각과 모든 계획이 악하였습니다.
여러분 악인이 누구입니까 못된 짓을 하고, 죄를 짓는 자만이 악인이 아니고, 마음에 생각과 계획을 못되게 가지는 것이 악인입니다. 다 같은 자루 속에 밀을 넣으면 밀 자루가 되고, 소금을 넣으면 소금 자루, 콩을 넣으면 콩 자루가 되듯이 악한 생각을 마음에 담는 이는 악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 하사 마음에 근심하셨습니다.
이제 이들이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나, 계획하는 것이나 하나하나 일을 하는 것이 모두 악할 뿐임을 보셨습니다.
고의적이고, 계획적임을 하나님은 보셨습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 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하리라” 하였습니다.
짧은 말씀 속에 패괴하였다는 말이 3번 나옵니다.
패괴란 부패(corruption)를 말합니다. 도덕적인 부패나 신앙적인 부패를 말합니다.
이들은 도덕적으로 부패하여 짐승같이 되었고, 신앙적으로도 부패하여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께 경거망동하였습니다.
또, 강포라는 말은 사회적인 무질서를 말합니다. 당시 세상은 무법 천지였습니다. 살인, 강간, 약탈, 약육강식의 살벌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을 보신 하나님은1) 3절에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떠날 것을 말씀합니다.
2) 그리고,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나이가 120년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수명이 아니고, 120년 후에 멸하리라는 것입니다.
3) 그리고, 6절에 하나님이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 하셨습니다. 마음에 근심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원래 인간을 창조하시고 심히 기뻐하셨는데 이제는 근심도 하시고, 한탄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악은 반듯이 심판하십니다. 당신이 지으셔서 기뻐하신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하였으니 사랑하는 자식을 심판해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아프고, 슬픈 심정을 토로한 것입니다.
뭐 전능한 하나님이 한탄하시고 근심하시겠습니까
인간 편에서 이해할 때 근심이요 한탄입니다. 그러므로 칼빈(calvin)은 “여기서 한탄이란 하나님의 본성이 아니라 인간의 이해를 표시한 것이다” 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나의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마치 쓰레기를 치우듯이 세상에 어지럽게 퍼져 있는 인간 쓰레기들을 깨끗이 청소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참으로 인간들은 쓰레기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세상을 더럽히고 온갖 악취를 풍기며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존재입니다. 이처럼 육체가 된 인간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인 인간, 패괴하고, 강포가 가득할 뿐입니다. 이런 인간들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런 이간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120년이란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베드로후서 3:8,9절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서 하루가 천년 같고 천 일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더딘 것이 아닙니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멸망되지 않고 다 구원받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이 한 구절의 말씀을 보고, 온갖 죄악에서와 마음에 악한 생각, 계획을 버리고 기다리시는 주 앞으로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계속 미련 대면 하나님의 입김은 떠나고, 하나님이 쓸어버릴 것입니다.

Ⅲ.믿음의 사람 노아(8-12)

그러나 온 세상에 악이 관영하고 사람들이 패괴하여도 노아 한 사람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있었습니다.(8)
8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더라” 했습니다.
제가 신앙하기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악에 쌓이지 않고, 악에 빠지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시대를 거슬려 믿음으로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9,10절에 이런 사람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었습니다.1)첫째, 노아는 의인이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노아는 의임ㄴ이였습니다.
히11:7절 노아는 믿음으로 의 후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입은 것입니다.
의롭다는 말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입니다.(공동 번역)
모든 사람들은 인간적인 욕망을 따라 살았지만, 노아는 믿음을 쫓아 살았습니다.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계획하고 실천하였습니다.
저는 성도 여러분들이 이 패역한 세상에서 노아 같은 믿음으로 계획하고 생각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2)둘째, 노아는 완전한 자였습니다.
여기의 완전은 도덕적인 완전이 아니고, 죄악에 오염되지 않은 사람, 세속에 물들지 않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그가 죄가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도 역시 아담의 형상을 지닌 죄인입니다.(창5:3) 그러나 그는 세상에 죄악에 물들지 않고 육체가 된 세상에 거룩하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자였습니다. 그는 육체가 된 세상에서 두 아내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일부일처로 결혼의 진리를 지키고 자녀들도 신앙 교육을 잘 지켜 세 자녀 모두 일부일처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완전한 자였습니다.
3)셋째,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습니다.
지난 시간에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을 동행하다가 그대로 낙원까지 걸어갔습니다. 오늘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인류를 구원하는 중시조로 남았습니다. 노아는 에녹의 믿음을 본받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뜻입니다.(히11:5)
① 노아는 삶의 목적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있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의 좋은 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살았습니다.
② 동행은 자기 뜻대로 하면 동행이 안됩니다. 노아는 노아의 뜻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노아의 삶에 목적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노아가 이처럼 죄악 된 시대에 홀로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입니다. 이것은 물론 노아가 피나는 영적 투쟁을 한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었고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8)
우리가 죄악된 세상에서 믿음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물론 우리 자신의 영적 투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은혜를 입었기 때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살후 3:2절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 들어온 것은 우리의 도덕적인 행위나 노력에 근거한 것은 아닙니다. 전적 하나님의 은혜에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날 아침, 성전에 나올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은혜를 받았으므로 노아와 같이 의인으로, 완전한 자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가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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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

2. 10.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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