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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약속을 성취하신 하나님 (창 21:1-21)

첨부 1


우리는 때때로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또한 특별한 사람을 위해서는 가능하겠지만 굳이 나 같은 사람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사람은 약속을 하거나 약속을 맺고도 자기의 이익에 따라 파기하기가 허다하지만 하나님은 반듯이 그 말씀하신 대로 때가 되면 그 약속을 신실히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약속을 신실히 지키시는 하나님을 앙망하며 그 말씀 위에 굳건히 서시기를 기도합니다.
라틴어에 [나는 믿는다]라는 CREDO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이 CREDO는 COR와 DO의 합성어로서 COR는 심장, 마음, 심령을 뜻하고 DO는 고정시킨다, 놓는다 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마음(심장)을 고정시킨다는 것이겠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제 25년의 신앙 훈련을 받은 아브라함이 그 마음을 하나님께 고정시킵니다.

Ⅰ.그 말씀하신 대로(1-7)

오늘 본문에는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이삭을 자식으로 주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그 약속하셨던 바 약속을 성취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15:4절에 자식을 줄 것을 약속하시고 17:16절, 18:10절에는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자식을 주실 것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시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하신 대로 사라를 돌아보셨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성경은 사라가 어떻게 아기를 잉태하게 되었다고 말합니까
“그 말씀대로” “그 말씀대로” 되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 약속하신 대로 그 기한에(17:17) 그 말씀대로 행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기한에 그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럼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와 같이 행하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요(17:1)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18:14)
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기를 아브라함 100세, 사라 90세에 아기를 낳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17:17) 그 약속을 우리 하나님이 이제 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그 말씀 위에 굳건히 서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한국 교인들의 신앙이 감정에 치우치고 환상과 이적과 기적에 치우치는 것을 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서도록 방향을 잡아 주십니다. 우리 기독교의 진리는 약속에 근거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말씀대로 행하시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 주실 때에 아브라함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3,4절을 보십시오.1)먼저,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습니다.
17:19절에 하나님이 이삭이 나기 전에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리니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순종했습니다. 이 이름은 자식이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지어 준 이름입니다.(17:19,21) 하나님이 지어 준 대로 이삭이라 지었습니다.
2)둘째, 난지 8일만에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17:11-12절에 양피를 베어라 난지 8일만에 할례를 행하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3)셋째, 하갈과 이스마엘을 말씀하신 대로 쫓아내었습니다. 하나님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하실 때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가게 했습니다.(10-14) 하여튼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이르신 그 대로 순종을 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입니다.
히브리서 5:8,9절을 보십시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 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순종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순종은 배우는 것입니다. 순종을 배워서 온전케 되었으므로 예수님은 자기를 순종하는 자를 구원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절대 순종하고 아니라 함이 없었습니다. 오늘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 말씀대로 행하시는 체험을 보고 이제는 절대 순종합니다. 이런 진리에 순종함을 우리 성도님들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을 때에 100세라고 하였습니다.(5) 이것도 하나님이 100세에 아들을 낳으리라고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100세에 낳으리라고 하나님이 약속하시니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100세 된 자가 어찌 자식을 낳겠습니까(17:17) 했습니다.
그러나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였고, 사라는 90세였으니 그들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지 25년만 이었습니다. 그 동안 아브라함은 절망하기도 하고 실의에 빠지기도 하고 그 마음이 조급하여 기다리다 못하여 고향을 떠나온지 10년만에 첩을 얻어 이스마엘을 낳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이 휘청 휘청 하는 것과 관계없이 그 말씀대로 언약을 성취시켜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말씀하신 바를 반듯이 성취시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긴긴 세월 동안 왜 이삭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연단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처음에 아브라함은 말씀을 기초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12:1-3) 그 나이 75세 때 하나님이 부르시니 말씀에 순종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나갔습니다.(히11:8) 그러나 그의 내면에 운명적인 요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식을 낳지 못하는 문제였습니다.
물질 문제 같은 것은 한 번 실패하고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만, 자식 문제만큼은 믿음으로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조금만 힘들어도 이 문제로 인해서 문제에 빠지고(15:2,3) 휘청휘청 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기른 종이라도 양자로 삼아 상속을 할까 생각하기도 하고 또, 참다못해 아내와 의논해서 첩을 두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이 이스마엘을 낳고 13년 동안이나 그에게 소망을 두고 살기도 하였습니다.(17:18)
이처럼 그 마음속에 하나님께서도 이 자식 문제만큼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사실 오랫동안 운명적으로 생각해 오던 인생 문제를 믿음으로 해결 받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단이 순간 순간 마음에 불신을 심고 이것만큼은 하나님도 어쩔 수 없다고 불신을 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살다가도 이 자식 문제에만 부딪히면 여지없이 무너지고 주저앉았습니다. 그러기를 25년간 허우적거리다가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말씀대로 성취되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 주시는 것을 보고 아이쿠 이럴 줄 알았다면 외도하지 않을 것을 하며 후회도 했을 것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말씀 성취를 보고 믿음 위에 굳건히 섰습니다.
그럼 이제는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말씀대로 행하시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 주실 때에 사라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6,7절을 보십시오.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사라가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만은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했습니다. 사라는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혼자서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웃음을 주는구나 듣는 사람이 나처럼 웃지 않을 수 없겠구나” 속으로 혼자 중얼거리고 웃었습니다. 사라는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라를 두 번이나 웃기셨습니다. 1)먼저는 꼬부랑 할머니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여 장막 뒤에 있는 사라를 웃기셨고(18:12)
2)둘째는 90세 된 호호 할머니가 아들을 낳게 하시므로 또 한 번 웃기셨습니다. 호호 할머니가 아들을 낳았다면 저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요사이 같으면 기네스북에 오르고 세계가 떠들썩할 것입니다. 이 기쁨, 이 웃음은 믿음으로 산 자의 열매이겠습니다.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이 말씀은 사라의 기쁨이 사라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사라와 같이 믿음으로 사는 자는 누구든지 이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삭” 이라는 이름의 뜻은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산 아브라함의 가정에는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어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그래서 너무 너무 좋아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기쁨은 아브라함과 같이 끝까지 믿음으로 산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다르고 이 기쁨을 빼앗아 갈 자가 없는 줄로 생각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성도님들도 아브라함 같이 사라와 같이 인내하여 기쁨을 소유하시기를 기도합니다.

Ⅱ.이스마엘을 쫓아내라 하신 하나님(8-12)

본 장에는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이삭의 출생을 말합니다. 이삭이 출생하므로 하나님의 약속하셨던 바가 그대로 성취되고 있습니다.(15:4, 17:16, 18:10) 하나님의 약속으로 인해 출생한 이삭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이 된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본 장에는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다가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나는 것도 봅니다.
이는 “성령으로 난 자”에 반하여 “육체를 따라 난 자”(갈4:29)가 겪게 될 궁극적인 종말이 어떠한 것인지를 영적으로 상징해 줍니다.
이제 8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자라서 젖을 떼게 되었습니다. 당시 유대 풍속으로는 2,3살 때까지 젖을 먹였다고 합니다. 또, 당시에 아기가 젖을 뗄 때 종교의식과 더불어 큰 잔치를 베풀어주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제가 어릴 때 젖을 땔 때는 잔치는 고사하고 어머니의 젖꼭지에 빨간 머큐륨을 바르거나 아니면 쓴 토끼풀 진을 발라서 젖을 못 먹게 했습니다.
이삭은 늦게 얻은 자식이라서 젖을 떼는 날을 기념하여 대연(큰 잔치)을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첩의 소생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였습니다. 이 때 이스마엘의 나이는 16,17세 가량이었습니다. 이스마엘은 이삭이 나기까지 온갖 아브라함의 사랑을 독차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삭이 태어난 후 이삭에게 사랑을 다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첩의 자식이라고 무시를 당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은 기회만 있으면 이삭을 괴롭히고 싶었을 것입니다. 또, 이 때 이스마엘의 나이가 16,17세였으므로 철이 다 든 상태입니다. 이삭의 출생으로 인해 자기의 위치와 상속권이 깨어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미워하고 희롱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날도 대연을 베풀 때 시기심에 사로잡혀 이삭을 희롱했습니다. 동생을 못살게 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4:29절에 이스마엘이 이삭을 이날에 희롱했다고 하질 않고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했다”고 했습니다. 사라는 이 사건을 목격하고 몹시 분개했습니다. 그래서 즉시 아브라함에게 이 여종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했습니다.
또, 당시 풍습으로는 여주인이 노비와 노비의 자녀들을 쫓아내도록 요구하는 것은 합법적인 것이었습니다. 또, 사라가 이스마엘을 쫓아내도록 요구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10) 했습니다. 즉, 유업을 나누어 가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근거로 이스마엘을 쫓아낼 것을 요구했습니다.(17:19)
이런 일로 인하여 아브라함은 마음에 깊이 근심을 하게 되었습니다.(11) 이스마엘은 비록 불신앙으로 맺어진 열매이지만 아브라함의 피를 타고난 자식이요 13년 동안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웃음이요, 소망이었습니다. 이런 이스마엘을 쫓아낸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픈 일입니다. 그래서 깊이 근심이 되었습니다.
이런 근심하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어떻게 도와 주셨습니까 12,1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말한 것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고민하고 있는 아브라함을 찾아 오셔서 4가지로 말씀을 주셨습니다.1) 먼저는 네 아들 이스마엘이나 네 여종 하갈을 쫓아낸다고 해서 근심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굶어 죽을까, 광야에서 어떻게 될까 네가 염려 말라 하셨습니다.
2) 둘째, 사라가 네게 한 말을 들으라 즉 사라의 말대로 쫓아내라 하셨습니다. 하갈도 이스마엘도 쫓아내라 함께 유업을 나눌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3) 셋째,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곧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네 후손으로 인정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4) 넷째, 여종의 아들 이스마엘도 네 씨이므로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쫓아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를 잘 아셨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스마엘을 데리고 살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삭은 어리고 이스마엘은 힘이 세므로 언제 어떻게 이삭을 해할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삭을 보호하고 이삭을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스마엘을 쫓아 내보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방향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내게 쫓아내야 할 이스마엘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이 이스마엘과 이삭을 동시에 소유하고 싶어하듯이 우리도 동시에 소유하고 싶으나 함께 유업을 얻지 못합니다.(10)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때 육은 무익합니다. 요6:63절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립니다.(갈5:1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습니다.(롬8:7,8) 이스마엘은 육신을 쫓아 났고 이삭은 약속(영적인 언약)을 쫓아 났습니다. 그러므로 인본주의적인 생각과 정과 욕심에 근거한 인간적인 생각은 단호하게 끊어 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속 역사에 쓰임을 받을 수 없고 도리어 방해를 가져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가게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결단하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끊어 냈습니다. 온전히 아브라함이 결단하고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염려하던 하갈과 이스마엘을 하나님이 아주 섬세하게 지켜 주시고 돌봐 주셨습니다.(14-21)
목이 갈 하여 광야에서 죽게 되었을 때 샘물을 찾아 주시고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셨습니다.(20) 이스마엘은 장성하여 애굽 여인과 결혼을 했으며 활 쏘는 자가 되었습니다. 대게 이스마엘 문제를 알면서도 끊어 내지 못하는 이유는 도덕적인 책임감 때문이요, 그 뒤에 따르는 후유증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결단하면 모든 뒤 책임을 하나님이 져 주십니다.
이상 말씀 가운데에서 이스마엘을 끊어 내는 아브라함의 믿음은1)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믿음이었습니다.
2) 정과 욕심을 믿음으로 도려내는 아픔을 잘 감당하는 믿음이었습니다.
3)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을 소유한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귀한 믿음을 소유해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귀히 쓰임을 받는 일군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1996.

5. 26.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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