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초대교회의 모범 (행 08:1-4)

첨부 1


지혜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호크마] 라고 합니다. 관찰 반성 경험을 통하 여 적당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지식 즉 헬라어로 [소피아]를 얻는다는 말 입니다. 그 내용은 근면 정직 순결 고귀한 생활방식 자연에 대한 넓은 지 식을 말합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 하여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복종을 지혜의 중심으로 삼았습니다. 전도서 5장 1절에 보면 너 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찌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 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3절의 말씀에도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 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관찰이 되고 반성이 되고 경험이 되어야합니다 이런 말씀의 깊은 뜻을 가질 때에 비로서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 다. 지혜로운 사람만이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의 길로 갈수 있습니다.

한국의 교회들은 교회성장, 부흥운동에만 주력하다 보니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교회 본래의 모습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인위적 권위, 인위적 방법, 인위적 목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성취되면 성공했다고 크게 떠들고 있 는데결코 그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 다.성경대로 순종하는 교회가 되려면 성경에서 교회 성장의 모델을 찾아 야 합니다. 성경의 기록을 신뢰하고 그 기록되어 있는 교회의 참 모습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의 모범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은 교회행전 이라고도 합니다. 사도행전에서 초대교회의 모습 을 채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주로 오늘의 교회가 간과하고 있는 부분들 을 채아내어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신앙을 올바르게 가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1.초대교회의 특색은 평신도 활동이 컸다는 사실입니다.

영국의 역사가 칼라일은 역사는 위인의 전기라고 했습니다. 세상역사 는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성경의 역사는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몇사람의 위인들, 즉 사도들보다 평신도의 활동이 매우 활발하고 컸습니다.

역사는 몇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역사상 우뚝 서있는 거봉들이야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산맥을 이루는 것은 거봉이 아 니라 무수한 줄기들입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교회에서 지도자란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도 자의 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회중이라는 토양이 없이 지도자라는 나무는 설 수 없습니다.

현대교회는 회중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평신도의 말이나 활동은 봉쇄 당하고 성직자의 소리만 큽니다. 회중이 소멸된 메마른 대지 위에 성직자 라는 그늘만 무성합니다. 그 그늘 아래에서 너도 속고 나도 속는 알맹이 없는 맹목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신도라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성속의 개념이 없습니다.

그냥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다 같은 제사장이요 같은 자격으 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입니다.

성직 계급과 평신도 분리는 천주교의 유물입니다. 종교개혁의 햇불이 열 화와 같이 타오를 수 있었던 것도 권위적 분리주의로부터 그리스도인 인 격을 회복하고자 하는 만인 제사장 사상이 그 뿌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 엄연한 사실을 빤히 알면서도 성직자연하여 권위를 부추기는 것은 무슨 도깨비 장난인지 모르겠습니다. 더우기 슬픈 일은 목사라면 왕처럼 모시 고 그 발밑에서 허리를 굽신 거려야만 직성이 풀리고, 목사의 명령이 아니 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만큼 무기력한 자신들이 정당한 것처럼 인식되는 회중 자신들입니다.

이 말은 제자화가 잘 될수록 말 잘 듣는 로봇 교인이 되고 성직계급은 더 욱 군림하는 그릇된 교회를 나무라고 싶은 것입니다. 지도자의 권위를 무 시하고 무식한 회중을 선동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회중이 살아있는 교회, 그래서 회중에 의하여 성령님의 역사가 날마다 창 출되는 초대교회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교회를 향한 그들의 활동을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 개척적 사업이었습니다. 대개는 이방전도의 공로를 사도바울 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실상은 바울 보다도 먼저 이방 전도의 문을 열고 교회를 개척한 이들은 무명의 그리스도인들 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을 전 도자로파송한 안디옥 교회가 그렇고, 바울 자신이 그토록 가보기를 열망했 던 로마교회도 그렇습니다. 물론 사도바울 이야말로 이방전도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분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예루살렘 밖에서 최초로 세워진 사마리아 교회는 사도들 이 아닌 무명의 성도들의 활동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1 장 이후에 보면 베니게와 구브로와 그래서 안디옥까지 이르러 전도하고 교회를 세웁니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일은 주의 종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구원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해야할 일입니다.

또 하나는 보조 사업입니다. 사도들은 참으로 위대 했습니다. 그러나 사 도들의 사역의 그늘에는 말없이 봉사하는 성도들의 수고가 거름이 되었습 니다. 성도들의 자발적인 봉사가 없었다면 혁혁한 복음사업, 고도의 교 회성장은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교인이란 시간되면 교회에 나와서 예배나 드리고 잽싸게 되돌아 가는 기 계가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성도는 그 몸의 각 지체들 입니다. 지체의 자발적인 봉사에 의한 교회 참여야 말로 진정한 교회성 장의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는 회중이 살 아서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그것은 기계의 밸트처럼 프로그램에 의한 로 봇교인이 아닙니다. 인격적 그리스도인들의 자발적인 봉사에 의한 참여야 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미덕인 것입니다.

 2.초대교회의 특색은 여자들의 활동이 컸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계신 주님을 섬기며 그림자와 같이 따라다닌 사람들은 여자들이 었습니다. 주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여 향유를 머리에 붓고 눈물로 발을 딴은이는 여인 이었습니다. 주님 십자가의 기둥 뿌리를 붙잡고 그 뚝뚝 떨 어지는 선혈로 온 몸을 적시며 주님의 임종을 지킨 것도 여인들이었습니다 그 어둡고 긴밤이 지나고 부활의 아침이 다가왔을 때, 무섭고도 으시시한 무덤을 먼저 채아간 이들도 여자였습니다. 물론 주님의 부활을 맨 처음 목 격한 이도 여인이었습니다.

여자들은 가진 것을 투자하여 주님을 수발 하였습니다. 지성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이러한 여인들이였기에 주님의 교회가 창립되자 마자 어떻게 활동 했습니까.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는 자신의 집을 개방 했습니다.

모든 교우들이 모여서 예배하며 기도하게 했습니다. 이 집은 예루살렘 교 회의 회집과 활동의 중심적인 근거가 되었습니다.

수리아의 교회는 욥바에 다비다라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무산자와 과부들의 어머니였습니다. 사회를 향한 교회의 가장 큰 관심이 무엇이었 는가를 잘 아는 여자였습니다.

유럽 교회는 첫성인 빌립보로부터 복음전도가 시작 되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기초를 이룬 공로자는 다름아닌 여인이었습니다. 루디아의 가정은 사도를 영접하고 복음의 문을 열도록 한것입니다.

겐그리아의 뵈뵈는 교회 안에서 누구보다도 봉사에 투철했습니다. 사도 들과 심지어는 이방의 다른 교회들까지도 그의 봉사를 필요로 했습니다.

로마교회에는 브리스가와 루포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브리스가는 독 신의 바울에게 마치 마누라와 같이 봉사 했습니다. 루포의 어머니는 바울 이 나의 어머니라 하였으니 그들의 봉사가 얼마나 훌륭 했던가를 알만합 니다.

신약성경 시대의 여인들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습니다. 매우 활동적이 며 섬세 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 역시 여인들의 활동이 눈부십니다. 교회 의 3분의 2 이상이 여자들의 자리로 메꾸어 집니다. 이런 열심된 교인들 이 있는 한국교회는 참으로 복받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요란하고 잘못된 것 중에 여자문제도 빼놓을 수 없습 니다. 콧대가 거세어 지는 여자 문제는 성경에 귀 기울여 성경이 요구하 는 신앙과 자질을 가지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염치와 정절로 단장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순응하여 순전히 주님만을 기쁘게 하려는 신앙 에서 떠나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여인들은 숫자로 교회의 세력을 형성하려 합니다. 그래서 교 회를 좌지우지 하려고 합니다. 심지어는 여자 목사. 여자 장로까지 되려 고 아우성입니다. 이런 경우는 신약 성경의 기록에 없습니다. 이것은 하 나님의창조 질서를 깨뜨리고 교회의 기본권까지 흔드는 무서운 독소인 것 입니다.성경의 여자들을 본받아야 신약교회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3.초대교회의 특색은 자급전도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복음에 종사하는 사람은 자비량으로 수고 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자급 전도의 모범자였습니다. 그는 데살로니가전서 2장 9절에서 말했습니다.형 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 를 끼치지 아니 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하였습니다.

전도인이 교회에서 사례를 받는 것은 당연 합니다. 일하는 소에게 망을 씌워서는 안됩니다. 제단에서 일하는 자는 제단에서 나는 것으로 먹어야합 니다. 그러나 일꾼이 봉급을 받지 아니 하려는 자세로 일하려는 것은 더욱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회중과 소위 주의 종과의 잦은 마찰은 피차간에 누를 끼치지 아 니 하려는 신앙의 자세가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성직 계급이 직업화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삯을 요구할 때에 그만 삯군 목 자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말씀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같이 나누려는 존경의 마음에서 울어난 사례가 되어야 교회에는 평화가 있습니다. 의무 를 강요하거나 의무 이상을 기대하는 심리들이 교회에 문제를 만들어 냅 니다.

오늘의 교회는 경제적으로 윤택합니다. 교회성장 이라는 놀라운 수치를 보여 줍니다.그러면서도 주는 교회가 되지 못하여 사회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가 유료 직원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는 자급전도로 종사 했습니다. 제 것으로 주님을 섬길 때 교회는 크게 발전 했습니다. 그러나 삯이나 댓가를 바랄 때 교회는 부패하기 시작 했습니다.

 4.초대교회는 가정교회 운동이 컸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천국의 명사들을 가정 용어를 빌려서 사용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였습니다. 성도들을 형제 자매라고 했습니다. 신자들은 하나님 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형님은 높임 말이 되고 형제는 낮추는 말 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공동체의 공식적인 회원 명칭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이보다 더 아름다운말이 어디 있을까요.

초대교회의 모습은 어쩌면 한 가정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중심으 로 형제 자매가 오순 도순 살아가는 가정 이었습니다. 아기자기한 맛이 절 절 흘러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 시절엔 가정 모임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가버나움 에서는 베드 로의 집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베다니에서는 마리아의 집이 중심이 되어 마리아집 교회가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주님 의 최후의 만찬도 마가의 다락방이었습니다. 주님 승천후 제자들이 모여 힘써 기도하며 사도의 보궐선거를 하였던 곳도 마가의 다락방 입니다. 베 드로가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풀려나 채아갔던 곳도 마가의 다락방 입 니다. 과연 그 집에서 남녀 노유의 성도들이 늘 회집해 있었던 것입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에베소에 있을 때 그의 집에서 교회를 시작했습 니다. 로마로 이사한 후에도 역시 그의 거처에서부터 교회가모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은 눔바의 집에서 모였습니다. 아킵보의 집에 서도 교회가 모였습니다. 초대교회의 특징은 성도의 가정에서 시작되고 모 였습니다.

언제부터 교회가 거대한 건물과 다양한 조직을 필요로 했는지는 모르겠 으나 분명히 성경 기록시대 이후인 것은 사실입니다. 교회는 대형 건물과 교인 숫자의 우열을 다투는 경쟁에서부터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성경에서 는 어디에서도 대형교회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창 립되던 당시 예루살렘은 인구 8만 정도의 작은 도시였습니다. 그 속에 수 천명 이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으나 대형 교회의 모습은 없습니다. 그 들은 전도집회를 위하여서는 성전에 모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를 위하여서는 집에서 모였습니다.

<결론> 초대교회는 회중이 중심되어 활동하는 교회였습니다. 여성들이 말없이 봉 사하는 교회였습니다. 자급전도를 신앙정신으로 삼은 교회였습니다. 가정 에서부터 모이는 교회였습니다.

시기나 다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과욕이나 부패의 소지가 없습니다. 뜨 거운 사랑으로 서로를 존경하고 질서를 세우는 교회가 초대교회의 모습이 었습니다.

이것이 주님께로부터 배운 사도들이 지도하던 교회였습니다. 오늘날의 교 회도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교회의 모습을 유지 하려면 초대교회와 같이 되 어야 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