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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신앙 (행 12: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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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는 성도들의 간절한 중보기도 덕분에 천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감옥에서 풀려났습니다. 베드로가 갇혀 있었던 감옥에서 탈출하기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에게는 쉬운 일이나 불가능한 일이나 똑같다는 것입니다. 감기나 암이나 하나님에게는 똑같습니다.
11절, 길거리에 나온 후에야 제정신이 들었습니다. “아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구나! 주님이 천사를 보내 주셔서 나를 이렇게 구원하셨구나” 그때야 알았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위기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지나 보니까 알게 될 때가 있어요. “하나님이 하셨구나” 알고, 지금은 몰라요. 지금 내게 일어난 일들을 다알지 못해요. 베드로 자신이 천사의 손에 이끌려서 감옥에서 길거리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지식으로 이성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보면 지식으로 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인간의 경험과 우리의 합리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하셨어요. 누가 천지가 창조된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가 있겠습니까 과학자들이 어떻게 증명할 수 있어요. 신앙은 실재입니다. 하나의 사상이나, 철학이 아닙니다. 도덕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감옥에서 풀려 나온 것처럼 도저히 사람으로는 이해할 수 없어요. 예수님이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사건이 그렇습니다. 부활이 그렇습니다. 이천 년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지금도 그를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죄가 씻겨져 가고, 우리 속의 귀신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오늘 베드로가 경험하는 것은 실재입니다.
12절
감옥에서 나온 베드로는 마가의 집에 가게 됩니다. 거기에 가보니까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잡혔을 때에 다른 방법이 없어서 기도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갔다 왔는데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중에 있다면 얼마나 흐뭇할까요 교회에 왔는데 교회가 썰렁하면 기분이 좋지않아요. 교회를 와 보니까 여기서도 기도 소리, 저기서도 기도 소리, 여기서도 성경보고 저기서도 성경보고 아침에 가도 그렇고 저녁에 가도 뭔가 살아서 움직이는 교회. 그런 교회가 살아 있는 교회입니다. 우리 만민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언제와도 기도 소리가 그치지 않고 찬송 소리가 그치지 않고,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고, 그게 참교회입니다. 여러분의 집안도 그런 집안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얼마나 가슴이 벅찼겠습니까 자기가 감옥에 있을 때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참 가슴이 벅찼을 것입니다.
똑똑똑. 문을 두드렸습니다. 심부름 하는 계집 여아이 로데가 문을 열러 왔습니다. “누구세요” “나 베드로다” 베드로의 목소리를 들은 로데가 얼마나 놀라고 기쁘고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문여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재미있지요. 소리를 듣고 너무 놀라서 그대로 뛰어들어가 버렸습니다. 문을 좀 열어 주고 들어갔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들어가서 베드로가 왔다는 거에요. 이때 사람들의 반응이 참 재미있습니다.
15절
베드로가 왔다고 하니가 미쳤다고 했습니다. 지금 누가 돌아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까 베드로가 돌아오기를 기도합니다. 베드로가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이 계집아이가 ‘아닙니다, 정말 왔어요. 내가 들었어요’ 그러니까 양보를 했습니다. ‘그러면 베드로의 천사 일거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기도하는 내용을 믿지 않는 불신앙을 여기서 본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기도를 안한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을 믿지 않는데 있습니다.
어느 한 동네에 가뭄이 극심했습니다. 온 동네가 목말라 했습니다. 기후제를 드리고 백방으로 방법을 써 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그 동네에 사는 목사님의 가정에도 비가 오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목사님이 외출할려고 나가려고 하니까 그 아들이 ‘아버지 우산’ 아버지가 ‘이게 무슨 우산이냐 이렇게 날이 청청한데’ ‘아버지 지금 비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잖아’ 그 아들이 우산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아들은 어리고 순수해서 그대로 믿은 겁니다. 우리는 비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도 안 믿습니다. 우산을 안 가지고 갑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도할 때에 어마어마한 기도를 합니다. 기도할 때 보면 자기가 모르는 것도 막합니다. 할 수 없는 것도 합니다. 사실 그것은 성령의 도우심입니다. 기도할 때에 열심히 헌신을 합니다. “부름 받아 나선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그래놓고 눈뜨면 하나도 안가요. 죽겠나이다. 순종하겠습니다. 해 놓고는 눈뜨면 하나도 안해요. 그러니 그냥 눈감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눈뜨면 다들 이상해지니까. 우리 신앙생활의 실제 모습이 여기에 있습니다. 불안하니까 기도하는 것뿐이에요. 기도가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안 믿어요. 결정적인 순간에는 돈을 믿어요. 결정적인 순간에 사람의 지식을 믿어요. 하나님을 안믿어요. 예수님께서 마 6:5-8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외식하는 기도하지 말아라. 진실성이 없는 주문 같은 중언부언 기도하지 말아라.’ (마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베드로사도가 감옥에 들어갔을 때 나오기를 얼마나 간절히 기대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의 문제는 하나님이 그렇게 빨리 응답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떤 때는 왜 기도는 응답되지 않는가 왜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는가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많이 들은 것같지만 창세기의 순서를 연결해보면 많이 들은 것도 아니에요. 10년있다가도 들었고, 이렇게 해서 들었습니다. 75세에 부름을 받아서 100세에 아이를 낳습니다. 그러니 20년이란 상황속에서 몇번이에요. 매일 황홀하게 들은 것이 아니에요. 그는 말씀 하나를 붙들고 10년을 사는거에요. 그게 믿음이에요. 오른 쪽으로 가라. 왼쪽으로 가라. 이렇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 나 뭐할까요 침뱉어서 탁! 아닙니다.
어느자리에서든지, 어느 위치에서든지 그 자리에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로데라는 여아이를 보십시오. 문을 열러 갔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문을 여는 것 까지 잊어버릴 정도입니다. “야 하나님이 이렇게 빨리 기도를 응답해 주시다니.”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여자가 발견한 기쁨을 비슷하게 발견한 여자가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수가성의 여자입니다. 전혀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살던 이 여자가 예수를 발견했습니다. “당신이 메시야군요” 그여자는 물동이를 내려두고 어디로 까습니까 지금 뭐하러 왔는데 물길러 온 여인이.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뛰어들어갔습니다. 자기를 싫어하는 동네로 들어가서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 그 여자가 얼마나 기뻤으면.
복음이라는 것이 이렇습니다. 로데라는 여자가 가진 이 기쁨과 수가성의 여인이 가졌던 이 기쁨을 우리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예수님을 만난 기쁨을 누리게 해주시옵소서. 우리가 기도한 것을 믿게 해주십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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