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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덴에서의 바울의 설교2 (행 17: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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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은 아덴에서의 설교를 보통 때 하던 것과는 완전히 바꾸어 버립니다. 왜냐면 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신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철학들이 있었습니다. 또 모든 것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범신론적 종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잡신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많은 우상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우상들이 많던지 알 수 없는 신에게 까지라는 문패까지 있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종교성이 많은 아덴사람들에게 참 하나님, 우주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만드시고, 인간을 만드신, 그리고 통치하시고 지배하시는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계신 그 하나님을 이들에게 소개하기로 합니다.
아덴에는 많은 신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곧 신이 없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잡다한 신들, 이러한 거짓된 신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24-25절,
사도바울이 무신론자들과 범신론자들에게 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 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만유를 지으신,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다 라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인간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천지의 주권자이시다. 따라서 이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어떤 집에 계시는 이런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어떤 제단에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것보다 더 뛰어넘는 초월자이시다. 인격자이시다. 계속해서 사도바울은 우리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인간은 너무나 어리석어요. 그래서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는 이게 하나님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있어요. 그런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사람이 지은 집에 계시는 분이 아니고, 하나님은 사람이 드리는 제사에 계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필요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철학자들은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스스로 만든 신들에게 이름을 붙여 줍니다. 귀신들을 섬기는거에요. 그리이스, 로마신화를 보십시오. 그들은 한결같이 인간적이에요. 사람같이. 그들은 사람같이 연애를 하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초능력을 그들에게 주어서 자기들의 상상을 펴 나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의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두 번째로 사도바울이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26-27절에서 말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첫째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두 번째는 천지를 통치하시는 하나님, 만드신 인간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입니다. 또 하나님은 어떤 건물에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또 인간이 부는 것을 먹고사시는 분도 아닙니다. 오히려 인류에게 생명과 호흡과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6절에서 사도바울은 그 하나님을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이다. 지금은 많은 족속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는 한족속이었습니다. 한 혈통이었습니다. 원래는 인간이 이렇게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한문화와 한 언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많은 언어와 문화가 생겼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많은 혈통들이 생겨났습니다. 서로 싸우고, 물고 뜯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언어를 주셨습니다.
두 번째입니다.
인류의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시고 인간을 온 땅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아담과 이브를 만드신 하나님은 그들을 위하여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셨어요. 그리고 그들을 거기에 두셨어요.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모든 실과를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그러나 죄가 들어옴으로 이 땅에 저주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땅에는 가시와 엉겅퀴가 자라났습니다. 남자들은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오염이 되었습니다. 땅이 지옥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환경문제가 심각합니다. 이것은 죄와 욕심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이 죄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갈 때에 환경문제가 고쳐집니다.
세 번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역사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주셨는데 시간이라고 하는 연대와 공간이라고 하는 경계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팽개치신 분이 아니에요. 어떤 부모는 자식을 낳고 팽개치는 분이 있어요. 그러나 진짜 부모는 낳은 자식을 끝까지 책임을 집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주를 만드시고, 지구를 만드시고 팽개치신 분이 아니라 보호하시고 사랑하시고 지켜 주시는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역사 속에 계시는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역사를 초월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인간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본질의 문제를 이야기 할 때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마치 그것은 한 인간이 부모와 관계가 나빠졌다고 해서 부모의 존재를 무시하고, 부모의 존재를 거부하고 자신의 설명이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어떤 이유로든지 하나님을 빼놓고는 행복해질 수 있는 역사는 없습니다.
27절, 한가지 더 하나님에 대해서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모든 철학의 하나님은 거기 계시는 초월적인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여기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만 존재하는 분이 아닙니다. 현재 나와 상관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생각이 아닙니다. 실제입니다. 우리가 밥을 먹고 애기를 낳고 장가가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그래서 사름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찾도록, 발견하여서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그렇게 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다” 어떤 분은 교회를 다니면서도 예수를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너무 무서워하고, 어떤 통치자이지 나와는 상관이 없는 분으로 저기 멀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어요. 그런 사람은 찬양이 있을 수가 없어요. 저기 멀리 있는 분을 어떻게 찬양할 수 있겠어요. 그는 여기에 나와 함께, 내 안에, 나와 동행하며, 교제하며, 축복을 나누며, 내 일거수 일투족을 머리털까지 다 세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찬양하며 경배하며 노래하며 대화하며 그분에게 기도하는 겁니다. 이분이 하나님입니다.
이제 이런 하나님을 설명하고 난 다음에 이런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에게 어떻게 관계를 가져야 하는 가를 말합니다.
28절-29절,
인간이란 존재는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위치는 하나님 아래서 그분으로부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마치 태아가 어머니의 젖줄을 통해서 자라나듯이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고 자라난 존재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내것이 아닙니다. 싸우는 이유가 내 인생은 내가 사는데 왜 간섭하냐 이거죠 그러나 어떻게 태아가 혼자 존재할 수 있습니까 어머니로부터 생명의 영양분을 먹고 자라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먹고 자라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태양의 존재와 혜택을 거부하면 모든 생명은 죽게 됩니다.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태양의 존재를 거부한다고 땅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봐라 태양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그렇다고 태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태양의 혜택을 그만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는 겸손하게 태양의 존재를 인정하고 태양의 따뜻함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려면 내 주먹을 믿으라고 말합니다. 이성과 자기의 지성을 이야기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존재이며, 하나님을 위해 사는 존재이며, 우리는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존재인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28절에 보면 ‘인간은 하나님을 힘입어서 살며 기동하는 존재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설명할 때 시인의 말을 빌어서 이야기합니다. ‘인간이란 신의 소산물이다. 인간은 신으로부터 나온 존재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저주가 있을 뿐입니다.
29절,
짐승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인간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경외하지 않는 사람은 짐승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존재라고 한다면 결코 금이나 은이나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신을 새겨 넣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자기 손에 가지고 싶어해요. 부적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것이 자기를 보호해 준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믿지는 않지만 그것이 자기를 보호해 준다고 해요.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섬겨서는 안된다. 돌에다 새겨서도 안되고 금에다 새겨서도 안되고 은에다 새겨서도 안된다. 요즘 별의별 귀고리가 다 있습니다. 별의별 목거리가 다 있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하지 마세요. ‘아 모르는 말씀. 이건 예술 작품이다.’ 무슨 예술 작품이에요. 우상이 역사 하는데. 인간 속에는 이런 허망한 생각들이 있습니다. 좋은 것 가지고 있다고 존경하는 것보았습니까 부러워하지. 존경하지는 않습니다. 절대로 돌에나 금에나 은에다가 고안으로 그 신을 새겨 넣어서는 안된다.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니 네가 새겨넣은 그런 조각에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것보다 뛰어나신 분이시다. 그러는 분이 네가 새겨 놓은 그것에 계실 것 같으냐.
우주의 주인이시고 통치자이신데 어찌 네가 만든 것에 계시겠느냐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서명한 바울은 마지막으로 하나님에 대한 가장 높은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그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역사의 주인이신데 그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지어 죽게 되었을 때 자기의 하나님 됨을 포기하시고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한 일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게 하나님입니다. 이분은 초월자이시고 사랑이 끝이 없으신 영원하신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인간이 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빌립보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종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저기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에요. 인간이 죄를 지어 지옥에 가는 것을 보고 그것을 견디지 못하여 그가 스스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참하나님은 어디서 나타나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나타납니다. 그는 인간이 되기로 결정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한 난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는 겁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그럴 수 있을까 인간은 하나님이 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될 수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는 겁니다. 이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을 믿으라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두 번째 난제는 인간으로 오신 그 예수님이 어떻게 십자가에서 무참하게 죽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안죽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무참하게 십자가에서 죽었느냐는 것입니다. 통일교가 그렇습니다. 예수가 죽은 것을 보면 그는 인간이었고 실패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격해 옵니다. 그런 유혹이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까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식을 위하여 부모가 생명을 걸고 죽는 그런 사랑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가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세 번째의 나제는 죽은 자가 어떻게 살아났느냐는 것입니다. 예수가 죽은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났다. 이런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어요. 어떤 종교에도 없었던 얘기에요. 이 이야기는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엄청난 믿을 수 없는 사건,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나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나 그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났나 하는 사실을 여러분도 믿고 있고 나도 믿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이 무식한 사람들입니까 그것을 이해 못할 만큼 인생을 살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믿는 겁니다. 따라서 이러한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이 아니라 그것은 성령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어지는 것은, 여러분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이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런데 그것이 오늘 내가 믿어진다는 거에요. 하나님은 나를 위해 인간이 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그는 무덤을 깨치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그를 믿었을 때 놀랍게도 내안의 근심과 염려와 걱정이 다 떠나가고 상상할 수 없는 하늘의 기쁨이 있고, 죄의 용서함의 기쁨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이렇게 믿는 것은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 땅에 천만 명이나 있습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이 2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믿어 왔습니다. 이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그림에 그려진 하나님이 아니라, 나를 위해 고난을 겪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역사를 통치하시는 그 하나님을 여러분은 믿으십니까 이 하나님이 바로 바울이 설명하는 하나님입니다.
32절,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들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조롱을 했습니다. 그러나 또한 무리는 굉장한 충격을 받고 이 짧은 이야기를 듣고 비수같이 그들의 가슴이 찔리고 마음이 열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이 계신 것을 느끼는거에요. 찬송을 하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느껴요.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지배하고 있음을 느껴요. 불안하던 나의 마음을 잔잔하게 해주어요. 기쁨으로 나의 마음을 채워 주세요. 이런 일을 경험해 보신 일이 있습니까
여기 몇 사람 네 말을 다시 들어보자. 라고 말했던 사람, 그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선택받았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복음을 듣는다고 다 예수 믿는 줄 아세요.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설교를 해도 안 들어요. 바울을 보면 바울의 설교를 듣고도 조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러니 졸 사람은 계속 졸고요 들을 사람은 계속 들어요. 이것 알 수가 없어요. 어떤 사람은 한 번 듣고도 못과 같이 심령에 딱 박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30-31절,
설교의 결론을 내립니다.
첫째는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잘못돼 신관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내 설교를 듣지 않았을 때는 괜찮다는거에요. 알지 못하던 때에는 하나님이 별로 허물하지 않아요. 들으신 것이 화입니다. 몰랐을 때는 몰랐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겠지만, 이제는 분명하게 복음을 제시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다. 그분이 모든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리고 죽은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다시 살아나셨다. 이런 하나님에 대해서 들었으니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바꿔라. 그런 얘기입니다.
사도행전 2장의 베드로의 설교에도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두 번째는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 이 세상은 종말이 있다. 심판이 있다. 그런데 그 심판은 하나님의 공의로 심판하실 것이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무엇인 줄 아세요 안죽을줄 알고 살아요. 왜 이렇게 싸우며 사는지 아세요 다들 오래 살 줄 알아서 이렇게 사는거에요. 죽을 줄 아는 사람은 그렇게 안삽니다. 여러분 제가 분명히 예언하는데 여러분은 분명히 죽어요. 젊은 사람도 죽고 늙은 사람도 죽고 결혼 한 사람도 죽고 결혼 안한 사람도 죽어요. 꼭 죽게 되어 있어요. 이것을 거역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자기는 안죽는다나. 재수가 좋아서. 다른 삶은 다 망해도 자기는 안 망할 것 같고 그렇게 착각하고 살아요. 영원히 살 것처럼 어리석게 살아요. 여러분 언젠가는 죽습니다. 또 하나는 지구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합니다. 내 인생이 어느 날 종말을 고하듯이 역사도 종말이 옵니다. 그러면 역사의 종말은 무엇입니까 연극이나 오페라를 가보면 대단원의 종말을 내립니다. 클라이막스를 지나고 출연자들이 다 나와서 인사를 하고 박수를 받습니다. 그리고는 다 집으로 갑니다. 그러나 인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죽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이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심판이 있어요.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대한 심판이 있어요. 호리라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갚아야 해요. 여러분이 안방에서 한 말은 그때는 지붕 위에서 나팔 소리처럼 들린다고 했어요. 절대로 숨은 죄는 있을 수가 없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함을 받지 않은 죄는 반드시 그날에 계산하게 됩니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인간에게 정한 것이지만 그 후에는 심판이 있어요. 역사의 종말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이 있습니다. 그 심판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입니다.
죽는 순간부터 죄의 심판은 시작되는 겁니다. 그러니 자살하면 안 되요. 자살하면 끝나는 줄 아세요. 자살에 대한 심판이 있어요. 죽음의 끝은 대단원의 막이 아닙니다.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계산하십니다.
세 번째 바울은 마지막 메시지를 줍니다. 31절,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으로 끝났다면 우리 죄는 사함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분이 못 박혀 죽었지만 그분이 삼일만에 다시 살아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심판을 이겨 나가는 것입니다. 모든 죄가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면 우리의 구원은 확실한 겁니다. 여러분의 구원은 틀림없습니다.
파울의 설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그 말씀을 듣고 관심을 가진 사람과 그 말씀을 듣고 조롱하는 무리들이었습니다.
32-24절,
디오누시오와 다마리의 마음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 언젠가 겪을 심판에서부터 우리가 해방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계산 해야 할 죄를 다 계산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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