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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란노 서원의 사역2 (행 19: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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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중요한 관심을 갖는 것이 바로 성령세례입니다. 에베소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성도들에게 ‘너희들이 예수를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질문을 합니다. 이것은 성령세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주는 말입니다. 전도의 최우선의 과제는 능력받는 일입니다. 성령세례를 통하여 능력을 받지 않고서는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운다 할지라도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없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힘있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도 성령의 능력이 있어야 평안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에 인도함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을 때에만이 기쁨이 있고 승리함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그는 전도방법을 바꾸었습니다. 새로운 전략을 시도합니다. 그것은 바로 두란노 서원 전략입니다. 은혜받은 12명의 사람들과 함께 일을 시작했습니다. 모함하고 방해하는 무리들이 있을 때에 그들을 떠납니다. 제자들을 따로 세웁니다. 그리고 날마다 2년 동안 말씀을 강론하며 말씀을 가르칩니다. 이것은 독특한 형태입니다. 날마다 2년 동안을 헌신한 것은 일종의 시간투자입니다. 여러분의 시간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아낌없이 드리십시오. 인색함이 없이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최선을 다해는 모습으로 드리시기를 즐겨한다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한가지의 일을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기 시작합니다. 포기가 없이는 헌신이 없습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방법으로 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방법을 바꾸지 않는 한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건강을 생각해 봅시다. 내가 먹는 음식을 바꾸지 않는 한 내 건강은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을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건강을 바꿀려고 하면 음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옛날 음식을 그냥 먹으면서, 그 환경속에 계속 있으면서 내가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방법을 바꾸지 않는 한 여러분의 고민과 갈등은 계속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다른 방법으로 살고 싶다면 여러분의 생활을 바꾸어야 합니다.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한다면 앞으로 10년 후도 별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변화가 오기 위해서는 결정을 하고 포기해야 합니다. 뭔가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뭔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바울과 제자들은 2년이라는 시간을 투자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그들은 헌신을 했습니다.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변화가 온 것입니다. 내 삶의 모든 방법, 스타일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두란노 서원 사역은 어떤 열매를 맺습니까 10절을 봅시다.
모든 사람들이 복음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상하죠 돌아다녀야 복음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한곳에서 2년동안 집중해서 그들이 헌신하며 말씀 앞에 서니 아시아에 있는 헬라인이나 유댜인이 전부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선교란 말씀사역에 결과입니다. 기도하면 일이 생깁니다. 말씀 앞에 서면 전도의 열매들이 엄청나게 쏟아집니다. 우리교회에도 이런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11-12절,
능력이 나타납니다. 포기해 보십시오. 그러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포기하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포기하면 거기에 능력이 나타납니다. 결단을 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축복이 옵니다. 이들이 2년동안 집중해서 함께 살면서 하루종일 말씀을 보고 하나님 앞에 구별된 모습으로 살았더니 언젠가부터인지 모르지만 능력이 몸에서 나타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붙어있기만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능력이 자기 몸에 채워진다고 하는 사실이 11절과 12절에 나와 있습니다.
얼마나 능력이 놀랍던지 성경은 ‘희귀한’ 일이라고 합니다. 얼나마 희귀한지 사도바울에게 있는 손수건, 이 손수건을 또는 사도바울이 가지고 있는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한테 얹으면 병든 사람이 낫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도바울이 직접 손을 댓으면 얼마나 능력이 쎄게 나타나겠습니까 능력이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말씀 안에,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이런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결심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희귀한 능력을 두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귀신이 나갑니다. 이것은 영적능력입니다. 두 번째는 병이 낫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적인 능력입니다. 이런 영적인 능력과 육적인 능력이 동시에 나타났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가만 보면 어떤 사람과 이야기만 해도 내가 깨끗해진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따뜻해져요. 생각만 해도 좋아요. 이것이 바로 놀라운 영적인 능력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런 은혜가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여기에 한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13-16절,
사도바울과 그와 함께 한 사람들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아다니면서 마술을 하는 유대인이 있었습니다. 이사람도 점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이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들도 흉내를 내게 되었습니다.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우리가 귀신을 좇을 때는 내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좇는건데 이들은 바울에게 있는 예수의 이름을 잠간 빌려가지고 ‘귀신아 나가라’ 하니 귀신이 나가겠어요. 악귀들린 사람이 ‘야 내가 바울도 알고 예수도 알지만 너는 누구냐’ 그리고 그 사람한테 뛰어들었어요. 옷을 벗기고 때리고, 그래서 이 사람이 도망을 갔다하는 얘기가 여기에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발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진짜와 가짜입니다. 진짜가 나타나면 가짜는 다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마술하는 유대인들. 이들은 가짜였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모방되지 않습니다. 가짜 꽃은 모양은 같을 수 있지만 향기는 낼 수 없습니다. 가짜 꽃은 진짜 꽃처럼 보이게는 할 수 있어도 열매는 없습니다. 교회를 나오면서 가짜 그리스도인이 많습니다. 가짜 그리스도인이 누굽니까 비슷한 사람입니다. 교회 오는 것도 비슷하고, 찬송하는 것도 비슷하고, 헌금하는 것도 다 비슷하고, 봉사하는 것도 비슷해요. 그런데 아무 것도 없어요. 그사람들은 귀신의 조롱을 받는 것입니다.
15절, 이런 조롱을 받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16절, 가짜는 귀신의 조롱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귀신을 이기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이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수치를 주는 것입니다. 현대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영적 상태가 이와 비슷합니다. 교회는 많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영적 능력을 가진 교회가 없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 병자를 고쳤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교회에 은과 금은 있는데 예수가 없어요. 그러니 이젠 이렇게 말합니다. ‘은과 금은 이제 가졌으나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걸어라’하는 능력은 잃어버렸습니다.
지금 교회가 다시 찾아야 하는 것은 건물이 아닙니다. 방법이 아닙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능력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습니다. 여러분 소수의 사람이 중요합니다. 다수가 큰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수의 하나님의 부름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기드온의 300명의 용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99% 헌신된 사람 100명 보다는 100% 헌신된 사람 하나가 필요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적당히 예수믿고, 적당히 헌신한 사람들, 적당히 교회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아무리 많아도 그 안에서는 아무일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사도행전과 같은 능력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합니다. 이것도 생각하고 저것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정을 해야 합니다. 시간을 바쳐야 합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중요한 것은 마음을 주라는 말이 없습니다. 우리 생각 같아서는 마음 주는 것이 더 중요하가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몸을 달라’, 네 몸을 드리는 것이 헌신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음으로는 헌금 다했지요. 마음으로는 건물 다 지었죠. 그러나 그것은 헌신이 아닙니다. 진짜 헌신은 시간을 드리는 것입니다. 손과 발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짜 헌신입니다. 몸을 드리는 사람을 통하여 기적과 능력과 역사들이 나타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입으로 예수를 믿습니다. 생각으로 예수를 믿습니다. 몸으로 예수를 믿을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몸으로 우리의 삶을 하나님 앞에 드리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아시아에 있는 유대인이나 헬라인 모두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살고자하는 일들이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런 사람들이 세계를 변화시킵니다. 교회를 10년동안 왔다갔다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뭔가 이루어야 합니다.
17-18절,
에베소에 있는 유대인과 헬라인 사이에 큰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몇가지 반응이 나타났는데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영적 분위기가 생겼습니다. 영적 사건이 일어나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이 만약 눈에 안보인다면 뒤죽박죽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떨림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기에 계시다는 떨림이 있어야 합니다. 교히들어오자 말자 가슴이 떨리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보면서부터 가슴이 떨리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영적 분위기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들 사이에 이런 분위기가 생겼습니다. 둘째는 두려워하면서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오늘 우리 안에 예수님에 대한 찬양과 그 이름을 높이는 그 이름을 선포하는 그런 감격과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18절, 예수를 믿으면서 통회자복이 있습니다. 진정한 부흥에는 진정한 회개가 있습니다. 회개가 없이 교회가 부흥하면 소용없습니다. 회개 없이 축복이 오고, 회개 없이 부자가 되고 회개 없이 만사 형통 되는 것은 축복이 아닙니다. 정말 축복은 어떤 물질이 많이 생기고, 이익이 많이 생기고, 좋은 일이 많이 생기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축복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자기는 한참 잘해 나가는 삶 같은데 가만히 자신을 보니 형편이 없어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어요. 이것을 깨우칠 때가 가난해진 상태입니다. 마치 인새의 부도가 난 사람처럼.
자기가 한참 무엇인 줄 알다가 아무것도 아님을 느낄 때, 하나님 앞에 깡통임을 느낄 때 그것이 애통입니다. 너무 기가 박혀요. 그래서 애통합니다.
회개 없는 영적 부흥은 없습니다. 진정으로 회개운동이 일어나면 누가 누구에게 충고할 필요가 없어요. 그들이 2년 동안 말씀으로 훈련을 받았더니 아시아에 있는 모든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주의 복음을 듣더라는 말씀처럼 정말 영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기만 하면 내 주변이 변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뽕나무에 올라가서 그가 예수님과 눈동자가 마주치는 순간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삭개오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주여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사오며, 내가 뉘것을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습니다.” 이것이 진짜입니다. 은혜받은 증거도 회개요, 성령받은 증거도 회개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접촉하는 순간에 우리는 스스로 죄인인 것을 깨닫고 고백하게 됩니다. 이런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영적인 부흥은 회개를 의미합니다. 주님 내모습 이대로 주님앞에 나아갑니다.
그러면 그들이 회개한 내용이 무엇이겠습니까 19절,
한마디로 점치고 미신적인 행동을 한 것을 회개한 겁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마귀의 짓이구나. 이게 사탄의 역사였구나.’ 그리고는 자기들이 점을 치기 위해 사용하던 모든 책들을 가져왔습니다. 은 5만이란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그 가치가 굉장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값으로 계산할 수 없을 만큼 굉장히 많은 분량의 액수와 같은 것이다. 그 액수에 해당하는 책들을 불살랐습니다.
우리의 삶에 있는 마귀적인 것들이 다 예수의 이름으로 불살라지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 속에 있는 사탄적인 것들이 모두 예수의 이름으로 활활 태워지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음악 속에서 사탄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활발히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더 힘차게 찬양하지 않으면 사탄에게 먹혀들고 말 것입니다.
능력받아야 이길 수 있습니다. 몰라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알고서도 그냥 빨려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는 이길 수 없습니다.
성령의 사건 앞에서 모여서 두려워 했고 예수님의 이름을 높였고, 통회자복하면서 자기들이 점하던 모든 책들을 가지고 와서 불태웠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혹시 집에 부적이 있는 사람들은 불태우십시오. 여러분 집에 폭력을 조장하고 음란을 조장하는 비디오 테이프를 깨부수십시오. 다른 사람 주면 안되요. 여러분의 집에 이런 것들을 두지 마세요. 다 꺼내세요. 그리고 다 불태우세요. 여러분을 타락시키고 오염시키는 모든 음악테잎 불태우세요. 그것은 여러분의 영혼을 좀먹게 될 것입니다.
순결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능력을 주십이다. 은사를 받아 능력이 아닙니다. 순결이 능력입니다. 거룩이 능력입니다. 무엇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거룩하고 깨끗하고 순결하기를 원하십니다.
20절,
주의 말씀이 힘이 있고, 흥황하여 세력을 얻느니라. 아멘.
이것이 바로 두란노 서원 사역입니다. 사도바울은 돌아 다니는 일을 그만두고 한 곳에서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했던 것입니다.
선교가 일어났습니다.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세상의 악한 모든 문화가 없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3차 전도여행에서 행했던 사역입니다.
지금은 영적인 비상사태에서 살고 있습니다. 안심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조금 잘못하면 낭떨어지에 빠지는 어쩌면 지뢰밭을 걸어가는 그런 상황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깨어 기도하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말씀으로 지키십시오. 겸손하십시오. 그리고 주의 복음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에게 있었던 상령사역이 우리들에게도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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