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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행 03: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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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문 말씀은 하나의 사건을 주제로 행한 사도 베드로의 귀한 설교 말씀으로, 초대교회의 대표적 설교 말씀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이미 공부한 대로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다음, 초대교회 사람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다가 그 성전 미문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된 사람을 만납니다. 그전 같았으면 그저 보고 지나치거나 얼마간 적선이나 해주거나 묵기도를 올려주거나 하는 정도이지, 그 이상의 무슨 특별한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두가 그렇듯이 말입니다. 사실 그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된 사람입니다. 사십 년 동안 한 번도 걸어본 역사가 없는 사람입니다. 배고픈 사람은 먹이면 되지만, 그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입니다. 그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전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보세요. 성령에 충만하고 보니 베드로와 요한의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앉은뱅이가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순간, 베드로와 요한은 엄청난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작용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그대로 불붙듯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향하여 당당하게 명령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순간, 앉은뱅이는 벌떡 일어섰습니다. 굉장한 사건입니다. 그 사건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집니다.
오늘의 본문이 바로 그 사건을 두고 펼치는 베드로의 설교 말씀입니다. 이것은 바로 헬라식이 아니고 히브리식 설교입니다.
베드로의 이 설교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사건을 중심으로 설교가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결코, 추상적 진리나 유명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생활경험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순수한 역사적 사건을 놓고 설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증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의견이 아닙니다. 내 생각은 이렇고 내 뜻은 이렇고 논리적으로 어떻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건을 증거하고 있을뿐입니다. 보세요. 사십년 된 앉은뱅이가 일어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계시적 사건으로 그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건으로 계시된 말씀인 것입니다. 나아가 그 사건은 앉은뱅이 한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관계된 사건입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된 자가 믿음으로 벌떡 일어서는 이 사건은 단순히 옛날에 있었던 하나의 사건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관계된 사건인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그것을 증거하고 잇습니다.
세 번째는, 그 사건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에 연계된다는 점입니다.
그 사건은 거저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그대로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오늘 이 자리에서 그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오늘 공부할 베드로의 설교는 그것을 증거합니다.
우선, 그 사건과 베드로와 요한과의 관계를 살펴봅시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 병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았다고 합니다. 놓치지 않을 생각으로 단단히 붙잡았습니다. 어떻게 놓칠 수 있겠습니까 사십 년이 지나도록 앉은뱅이로 지냈기에 평생을 그렇게 살다 죽을 줄 알았는데 베드로와 요한이 자신을 선한 사람으로, 건강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는데 저들을 따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전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에 한 번 놓치면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꼭 붙드는 것입니다. 이 사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병은 나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벌덕 일어서기는 했지만, 베드로가 누군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릅니다. 어떤 이유로 자신이 낫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 계시적 의미를, 그 말씀의 뜻을, 그 사건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몰라요. 다만 사건이 있을 뿐입니다. 여기에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도 보면 생활 속에서 시간시간 많은 사건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적 말씀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을 보면 감사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저를 찾아와서는 아이고, 목사님. 저는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면 별거 아니더라구요. 전에도 늘 있던 일입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마는, 그분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옛날에는 이런 일을 당하면 그냥 흘려버렸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이것이 다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감격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성령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말씀에 나오는 앉은뱅이는 이적을 통하여 병은 나았지만 아직 성령을 받지는 못했고 말씀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을 잔뜩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향하여 설명을 합니다. 설교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미 경험했고 앞으로도 경험할 것입니다. 평범하게 경험해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경험한 그 사건에 대한 신학적 성서적 해석은, 신령한 해석은 설교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설교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당한 현실의 의미를 하나하나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설교입니다.
본문말씀을 보세요.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11절)-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럴 수밖에요. 오늘날에도 이런 이적의 사건이 일어났다면 비행기 타고 기차 타고 다들 모여들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보통 사건입니까 사십 년 된 앉은뱅이가 걷는 그 놀라운 사건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것이 있습니다. 그 모인 사람들은 그 사건을 보고 호기심은 있었지만,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앉은뱅이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어떻게 해서 이루어졌는지 그 의미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두에게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성서적 해석이, 영적 interpretation이 필요합니다. 지금 베드로가 그 해석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설교입니다.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이 일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라고 설교합니다.
설교하는 가운데 베드로가 두 가지 질문을 합니다. 왜 기이히 여기느냐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상당한 의미가 있는 질문입니다. 왜 이상하게 보느냐, 이상할 것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설명합니다. 그것은 내가 한일이 아니기에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를 주목할 것, 이상히 여길 것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시고자 하는 일은 다 이루십니다. 전지전능하십니다. 죽은 사람도 살려내시는데 그까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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