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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트리지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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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지 윤리’(Ethics of Trige)라는 것이 있다. 1차 세계대전 때 수많은 부상자가 야전병원에 실려 들어왔는데 의약품이 부족해서 그들을 다 치료할 수 없었다. 그럼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게 내버려둘 것인가? 그리하여 약간의 처치로 살 만한 사람은 치료해주고 살지 못할 것 같거나 애매한 사람은 아예 치료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도움을 줄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선택을 ‘트리지’라고 불렀다.

예수 그리스도의 윤리는 강자 생존의 ‘구명보트 윤리’도 배격한다. 또한 생명의 가능성을 선택하는 ‘트리지 윤리’도 배격한다. 예수님께서는 굶주린 민중 5000명을 앞에 놓고 빵 5개로 어떻게 하셨는가. 5000명중 가장 강하고 우수하고 장래성이 있는 5명만 골라서 그들에게 빵을 먹이고 4995명은 내버려두었는가. 아니면 제비뽑기를 해서 공평하게 빵의 수혜자를 가려냈는가. 그것도 아니면 투표를 통해 빵을 먹을 5명을 선발했는가?

예수님은 그런 방법을 쓰지 않았다. 똑똑한 사람이든, 바보든, 건강한 남자든, 장애 여성이든 굶고 있는 것은 똑같다고 보셨다. 학식과 권력의 높고 낮음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을 동일하고 공평하게 바라본 것이다.

예수는 빵 5개라는 작은 희생과 사랑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즉,사랑의 기적을 보여주신 것이다.떡을 놓고 기도할 때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고도 남을 수 있는 사랑의 기적을 보여주신 것이다. ‘모두를 살릴 수는 없다 ’는 말은 인간의 계산이며 강자의 사고방식이다. 예수는 ‘모두를 살릴 수 있다’는 사랑의 낙관주의를 가진 분이다. 문제는 작은 사랑이 가장 중요한 천국의 씨앗이 된다는 사실이다. 빵 5개가 5000명을 먹인 것처럼 작은 사랑이 무서운 핵폭발을 가져온다는 것을 예수님은 몸소 보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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