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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 (마 2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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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유는 천국을 혼인잔치로 비유하고 잔치에 초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이고 이들의 거부로 사거리 길에 나가서 만나는 대로 악한자나 선한자나 모두 데려다가 잔치에 가득하게 채운 것은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로 들어온 것을 보이며, 들어온 손중에 예복을 입지 않은 손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비유의 결론은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이다.
이 비유에서도 천국이 계시되는데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로 비유된다. 보통 사람들의 혼인 잔치도 풍성하고 즐거운데 왕의 아들의 혼인 잔치는 얼마나 풍성하겠는가 4절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눅14:15 함께 먹는 자 중에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사람은 복되도다 하니.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하셨다.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예하는 것이 얼마나 복되며 영광스러우며 모든 음식이 풍성한가 잔치집은 먹을 것이 풍부하고 기쁨과 유쾌함이 있다. 이것은 천국이 인생들이 추구하는 모든 것보다도 더 풍성한 하나님 나라임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런 복되고 영광스럽고 풍성한 잔치에 초청을 받고 한결같이 거부했다는데 문제가 있다. 더우기 3절에 오기를 싫어하고, 5절에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자기 밭으로, 자기 사업처로 갔고, 눅14:18에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보아야 하겠고,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고, 장가들었으니 못가겠노라. 마22:6 심지어 심부름 온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기까지 했다. 여기서 유대인들의 사악함이 얼마나 깊은가를 볼 수 있다. 그토록 영광스럽고 복된 왕의 혼인 잔치에 청함 받은 그 영광을 그렇게 거부할 수 있는가 그들의 핑계가 정당화 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돌아보지도 않는 무관심과 무례를 행할 수 있겠는가 청함을 거절한 것만도 왕을 경멸하는 태도인데 거기다 종들을 어쩌자고 능욕하고 죽이는가 상식적으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상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부르심을 경멸하고 거부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들(앞장의 악한 농부 비유)을 핍박하고 죽이고 했던 것이 역사적인 현실이다. 유대인 뿐만이 아니고 모든 이방인들도 하나님이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역시 동일하게 천국의 부르심을 경멸히 여기던지 또는 무관심하고 어떤 자들은 모욕, 능욕하고 핍박하고 화를 내는게 사실이다.
이 비유의 결론같이 택함을 입지 않고서는 복음의 부름에 순종하지 않게 되고 혹은 잔치집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택함을 입지 않은 자는 결박당하여 바깥 어두운데 쫒겨나 슬피울며 이를 갊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 비유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선택에 기인하나 택함을 입지 못한 자들은 스스로 은혜의 초대를 거부함으로서 하나님 나라에 참예함에 합당치 못하게 된 것이다.
인류가 끊임없이 구원의 초청을 거부하는 다양한 면이 본 비유 가운데 나타나는데
① 오기를 싫어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마음을 매혹하지 못했다.
② 돌아보지도 않았다. 무관심주의. 천국과 내세에 관심이 없는 자들.
③ 자기 밭으로 갔고
④ 자기 사업처로 갔다.
⑤ 장가들은 것 핑계. 토지, 사업 즉 소유물에 더 열정. 간접적 행복 추구.
임금의 궁전으로 가지 않고 또 복음의 부르심 앞에 적의를 품고 노하는 자들도 많다. 그러나 임금은 또다른 종을 보내며 반복하여 청한다. 왕의 호의와 은총을 거부한 것 만으로도 그들은 왕을 경멸하고 무시하고 멸시했으니 벌받아 마땅한데 종들을 죽이기 까지 한 것은 완전히 왕께 대한 반역이다. 여러분이 선택받은 자라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렇게 대하지 않게 된다. 순종하는 것 같으면서도 예복을 입지 않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도 있으니 우리 자신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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