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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과 피 (요 0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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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복음의 피가 흐릅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는 죄와 저주라고 합니다. 반대로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복음과 축복이라는 단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현대인들의 사고는 커다란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복음과 죄라는 단어는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복음이 있고, 복음이라는 말은 죄가 있을 때 성립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별은 좋은데 밤은 싫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눈은 좋으나 겨울이 싫다는 식입니다. 이는 동전에 양면과도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 세상 사람들은 네 가지가 왔다고 했습니다. 제가 만일 외국에 나갔다고 돌아온다면 성도님들은 목사님이 돌아왔다고 하실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이 돌아왔다고 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아빠가 왔다고 할 것입니다. 저희 부모님들은 아들이 돌아왔다고 하실 것입니다. 한 사람이 온 것을 가지고 이렇게 여러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말이 옳은 것입니까 다 옳은 말입니다. 예수님 한분이 오신 것이지만 세상은 그를 네 가지로 말했습니다. 보는 각도에서 달리 말했을 뿐 다 맞는 말입니다. 어떻게 사람들이 말했는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①천국이 왔다고 했습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마 4:17)” 예수님은 천국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오신 분이십니다. 그가 오신 것은 이미 천국이 온 것입니다.
②말씀이 왔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로마의 황제가 전쟁에 나가 있는 장군들에게 병사를 통해서 서신을 보내면 번번히 적군에게 포로가 되어 편지를 빼앗겼습니다. 급기야 이런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황제는 병사를 데려다 머리를 깍았습니다. 바늘로 병사의 머리에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서너달을 길렀습니다. 병사를 장군에게 보냅니다. 포로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뒤져보아도 편지가 없습니다. 그대로 보냅니다. 황제의 병사가 왔다는 말을 들은 장군은 나가서 그를 맞이하여 머리를 깍았습니다. 머리 속에 쓰인 편지를 읽습니다. 황제의 글을 장군은 엄중히 듣습니다. 황제의 말씀은 곧 황제가 온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③빛이 왔다고 했습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
④복음이 왔다고 했습니다.
“가라사대 때가 찾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5)”
예수 그리스도는 천국으로, 말씀으로, 빛으로, 복음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오셨을까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1.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틈만 있으면 예수님을 잡아 죽이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자신들이 백성들의 신망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는 백성들의 관심이 예수님께 완전히 기울어 버렸습니다. 시기심이 생긴 이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이고자 했습니다. 이때 동원된 방법이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로, 어느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합니까” 물었습니다. 가이사는 당시 로마의 황제입니다. 이는 참으로 애매한 질문입니다. “바치라”하면 예수님은 “매국노”가 됩니다. “바치지 말라”하면 로마에게 대항한 것이 되어 잡혀갈 것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이 말씀은 바치라는 것도 바치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너희가 믿는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애매한 대답으로 빠져 나가셨습니다.
둘째로, 다음에는 현장에서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데리고 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상숭배, 살인, 간음을 가장 큰 죄로 취급하였습니다. 신명기 22:13-24까지를 보면 이와 같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돌로 쳐 죽이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은 돌로 쳐 죽이라 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돌로 쳐 죽이라”하면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말씀하셨던 사랑의 말씀이 틀려집니다. “용서하라”하면 모세의 율법을 어긴 것이 되기에 유대인이 예수님을 죽일 판이었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을 돌로 치라” 그리고는 땅 바닥에 주저앉아 뭐라고 글씨를 쓰셨습니다. 한참 후에 일어나셔서 여인에게 물으십니다. “너를 돌로 치려던 자들이 어디에 있느냐” “주여, 아무도 없나이다”“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예수님 곁에는 간음한 죄인과 도망간 죄인만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틀킨 죄인과 들키지 않은 죄인이 있을 뿐 죄인 아닌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을 구원하시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현재 병원에서 사용하는 마취약은 미국의 에딘버러 대학의 심프슨 박사가 발명한 것입니다. 그는 수백 종류의 약을 발명해서 인류 건강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어느날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박사님, 지금까지 박사님이 발명한 약중에 가장 위대한 약은 어떤 약입니까” 그때 심프슨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만든 약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의 최대의 발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내가 발명한 약들과는 비교가 되지않는 인류가 살 수 있는 복음을 주셨습니다.”

2.죄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후손에게는 선악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인간의 내면에 흐르는 악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씻겨집니다. 영혼의 세탁제는 예수의 피밖에 없습니다. 유명한 전도자인 조지 휫필드는 교수대로 끌려가는 사형수를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었다면 나도 저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거스틴에게 레라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으로 언제나 어거스틴의 말에 겸손히 순종했습니다. 어느날 어거스틴이 아무리 불러도 레라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어거스틴이 레라의 방문을 열어 제켰습니다. 레라는 방안에서 깊은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경건하고 아름다웠는지 모릅니다. 충격을 받은 어거스틴은 기도가 끝나자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레라, 교만한 내 목을 세번만 밟아다오” 그리고 어거스틴은 여기서 유명한 말은 하게 됩니다. “기독교인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세쩨도 겸손이다” 그렇습니다. 죄인인 우리에게는 끝임없이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제정 러시아 황제 중 가장 훌륭했던 황제는 니콜라스였습니다. 그는 이따금 평민의 복장을 하고 민정시찰을 나갔습니다. 어느날 밖에 나갔다가 길을 잃어 지나가는 장교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장교는 대답을 해주기는 하는데 무척 교만한 말투였습니다. “계급이 어떻게 되십니까” “자네가 한번 맞춰 보게” “소위십니까” “그보다 윌세” “중위이십니까” “그보다 윌세” “대위이십니까” “그렇다네” 대위는 거만하게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제 계급을 맞춰 보시겠습니까” “일병인가” “그보 위입니다” “병장인가” “그보다 위입니다” “소위인가” “그보다 위입니다” “그럼 대위인가” “그보다 윌세” 니콜라스는 말을 바꾸었습니다. “그럼 소령이십니까” “그보다 윌세” 이렇게 묻고 대답해서 황제임을 알자 대위는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때 니콜라스는 그를 잡아 일으키며 “자네와 나는 다같이 죄인일세.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네” 말했습니다. 우리는 다같이 죄인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3.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죄인만이 구원받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예수님은 죄는 미워하지만 죄인은 사랑합니다. 가난은 미워하시지만 가난한 자는 사랑하십니다. 절망은 미워하시지만 절망한 자는 사랑하십니다. 실패는 미워하시지만 실패한 자는 사랑하십니다. 병은 미워하시지만 병든 자는 사랑하십니다. 죄인을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리셨습니다. 간음이라는 죄는 미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만은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서산 팔봉교회에 강문호 목사님이 부흥회를 가셨을 때의 일입니다. 85세 된 할머니로 혼자 사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평양에서 월남한 분으로 매월 면에서 주는 쌀 한 말과 보리쌀 두 되, 그리고 10,000원 용돈으로 살았습니다. 목사님이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성경에 대하여 아십니까” “나는 성경은 몰라, 그러나 예수님이 내 죄를 다 용서하셨다는 것은 알아.” 그 할머니에게는 누구도 지금까지 평양 할머니라고만 불렀지 이름을 물어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강사 목사님이 자기 이름을 물어봐 준 것이 너무 고마워서 이 할머니는 양말을 한 켤레를 사가지고 찾아와 건네 주었습니다. 아무 것도 몰라도 예수님이 나를 위해 피흘려 대신 죽으신 것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습니다.
미국 해군 함정이 풍랑을 만나 배가 깨어지고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습니다. 너무 널판 하나씩을 가지고 바다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중에 한 병사만 널판이 없어 허우적 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군목이 병사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예수를 믿나” “믿지 않습니다.” “그럼 이 널판을 받게. 나는 죽어도 지금 구원을 받을 수 있네만 자네는 구원받을 수 없네. 꼭 살아서 예수를 믿고 구원받게나.” 군목은 죽고 병사는 살았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행입니다. 예수만이 구원이십니다.. 사
당신이 죄인임을 아십시오. 당신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그를 믿고 영접하십시오. 그러면 구원받습니다. 천국시민이 됩니다. 구원의 은혜가 당신과 당신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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