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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형상 (창 01: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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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서는 사람은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실상 하느님의 형상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존 웨슬리는 성서 속에 담겨 있는 하느님의 형상의 본질에 대해 세가지 차원에서 이해하 였다.

 여러분은 모든 세속적인 욕망을 죽이십시오. 여러분은 옛 생활을 청산하여 낡은 인간을 벗어 버렸고 새 인간으로 갈아 입었기 때문 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와지면서 참된 지식을 가지게 됩니다(골로새 3:5-10/공동번역) 하느님의 형상은 참된 지식이다. 이것을 웨슬리는 인간에게 있는 하느 님의 자연적 형상이라고 정의했다. 참된 지식이란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하느님을 알만한 영안(영안)을 지니고 있다. 바울은 이 점에 대해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 원하신 능력과 신성(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 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로마 1:20-/공동번역) 1979년 5월에 있었던 일이다. 한국의 남북대화가 중단되어 이를 재개 토록 노력하던 당시의 UN총회 사무총장 발트하임(Baltheim)박사가 평양으로 김일성 주석을 찾아 갔었다. 그러나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채 돌아오게 되었다. 그를 환송하는 자리에서 김일성 주석은 평양에 대한 인상을 물었 다. 그는 심사가 편치도 않던 차라 김 주석을 골려 줄 생각에서였던지 대 답하기를 김 주석 덕분에 평양의 날씨가 좋아서 구경 잘 했다고 응수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김 주석은 평양 날씨가 좋았던 것은 내 덕이 아니라 하느님의 덕이라고 수정하더라는 것이다. 세상에 알려진 바로는 북한에서는 일기도 주석의 영향 아래 있다고 믿었는데 김 주석의 입에서 일기는 하느 님의 주관 아래 있다는 증언을 들은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고질은 하느님을 알면서도 하느님으로 영화롭게도 하 지 아니하고 감사치도 않는 것(로마 1:21)이다. 인간에게는 하느님을 알만 한 지혜와 능력이 있다. 이것을 일컬어 영성(영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하 느님으로 섬기지도, 감사치도 않는데 인간의 죄악성이 있는 것이다. 그 결 과 인간은 하느님 대신에 우상을 섬기게 되었고(로마 1:23), 성적으로 타 락하게 되었고(로마 1:26), 서로 분쟁하다가 망하게 되었다.(로마 1:30)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다.

(2)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당신의 모습대로 지어 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 어 내시고 그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다스리라(창세기 1:27/공동번역) 하느님의 형상은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다. 이것을 웨슬리는 인간에 게 있는 하느님의 정치적 형상이라고 정의했다. 인간은 만물을 다스릴 권세 를 하느님에게서 부여받았다. 그런데 이것이 현대 사회에서는 큰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성서의 이 귀절 때문에 인간의 환경파괴가 정당화되었다 는 것이다. 생태계의 파괴의 주범은 성서라는 강열한 비판과 항거를 제기 하고 있다.

다스린다는 말은 만물을 사용한다는 뜻도 지니고 관리한다는 뜻도 지 닌다. 사용하는 것은 특권이지만 관리하는 것은 책임이다. 인간에게는 만물 을 다스리는 권리와 함께 만물을 잘 보전할 책임도 있다. 다스린다고 하 여 사용하기만 하면 결국 사용할 것이 없어지게 마련이다. 계속 사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계속 잘 관리하고 보전해야 한다. 인간은 사용하기만 했지 관리하고 보전하지는 못했다. 이것이 인간의 과오요 착각이다.

T. 샤르땡은 인간에게는 만물통치의 세가지 윤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랑과 순결 그리고 극기이다. 만물을 다스리는 사람은 만물을 사랑해야 하고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하며 스스로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 다. 그렇지 않고 독점과 무한욕망의 정복은 독재요 전쟁이요 파괴행위가 된다. 독재와 전쟁과 파괴행위의 종말은 멸망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자원고갈, 인구의 팽창, 핵무기, 환경오염의 위협에 시달리게 된 원인이 되고 있다.

(3)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진리가 있을 따름인데 여러분이 그의 가르침을 그대로 듣고 배웠다면 옛 생활을 청산하고 정욕에 말려 들어 썩어져 가는 낡은 인간성을 벗어 버리고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갈아 입어야 합니다. 새 사람은 정의와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에베소 4:21-24/공동번역) 하느님의 형상은 정의와 진리의 생활이다. 이것을 웨슬리는 인간에게 있는 하느님의 도덕적 형상이라 정의했다. 정의를 외면한 사람을 불의한 사람이라 일컫는다. 불의한 사람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경원되는 기피인물이 다. 그는 하느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진리를 거스리는 사람은 거 짓된 사람이다. 거짓된 사람은 아무에게서도 신뢰와 존경을 받지 못한다.

그는 하느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 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 며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 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 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이사야 42:1-4)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 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 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예레미야 5:1) 나라와 인류를 구하는데 있어 하느님께서 믿어 주시는 사람, 하느님께 서 택하신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찾는 사람이다.

인류가 신뢰하고 존경하며 따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진리로 공의를 베푸는 사람이다.

성서는 인간은 죄인이라고 고발한다. 죄인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형상 을 잃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죄에서 벗어나는 길, 자유해지는 길이 무엇 인가 진리 안에 사는 것이다. 사람이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 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 8:31-32) 이 자유는 죄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요한 8:34) 사람들은 성령체험을 갈망한다. 그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보내시는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다.(요한 14:17) 진리의 성령 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한 16:13) 진리의 성령(보혜사)이 오시면 죄와 정의 그리고 하느님의 심판에 대한 올바른 인 식을 주신다.(요한 16:7-11)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을 성도라 일컫는다. 사람이 거룩하게 되는 길이 무엇인가 그 몸을 정의의 도구로 바치는 사람이다. 여러분이 전에는 온 몸을 더러운 일과 불법의 종으로 내맡기어 불법을 일삼았지만 이제는 온 몸을 정의의 종으로 바쳐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로마 6:19-20/공동번역) 실존주의자들은 지금의 인간을 일컬어 비본래적인 인간이라 한다. 그 러므로 본래의 인간으로 회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New Being)이라고 한다. 새로운 피조물은 잃어버렸던 하느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이다.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영화 롭게 하며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부단히 자신의 영성(영성)을 함 양해야 한다.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인간은 우주와 그 안에 만물을 올바르게 다스려 야 한다. 필요한 만큼 사용하며 자손의 자손의 세대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잘 관리하고 보전해야 한다. 권리와 책임에 있어 균형을 잃지 않아야 인간 은 우주의 중심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우주와 함께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이다.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인간은 정의와 거룩한 진리의 생활에 힘써야 한 다. 그것은 하느님의 신임을 받는 길이기도 하고 세계와 자기 조국을 구원 하는 길이기도 하다. 인류는 정의와 진리의 거룩한 생활을 하는 사람을 믿 고 따른다. 불의한 사람, 거짓된 사람에게서 배우며 지혜를 구하지 않는 다. 이것이 예언자 이사야의 신앙이요 예레미야의 경험이었다.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이다. 자연의 아들이요 딸이다. 그 흙으 로 만들어진 존재가 하느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느 님의 형상을 잃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흙으로 돌아가고 티끌로 돌아가고 먼지가 되어 끝나는 존재에 불과하다. 사람은 만물을 잘 다스려야 자신이 생육한 자손들이 번성할 수 있다.

사람은 정의를 실천하고 진리를 탐구함으로써 하느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다. 불의와 거짓에 굴복하거나 타협할 때 사람은 스스로 인간되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영혼포기이다.(솔제니친) 영혼을 포기하고 인간되 기를 포기한 인간은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에 불과하다. 모든 육체는 풀 이요 그 영화는 풀의 꽃과 같다.(시 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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