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한국 교회가 죽던 날

첨부 1


1938년 제 27회 장로회 총회가 평양 서문 밖 교회에서 열렸다. 실은 신의주에서 모이기로 내정되어 있었으나 경찰의 강요에 눌려 평양으로 바뀐 것이다. 이미 전국 23개 노회 중 17개 노회가 봄 노회에서 신사참배는 국가의식이니 참배할 수 있다고 가결했었다. 9월 총회에서는 총대가 이것을 결의하도록 경찰에서 압력을 준 것이다. 각 지방 경찰서장은 사전에 총대로 선출된 노회 대표들에게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그 중 한 개 이상 선택하라고 강요했고 이를 거절하면 검속 투옥시켰다.
1) 총회에 출석하면 신사참배는 죄가 아니라는 것을 동의할 것
2) 신사참배 문제가 상정되면 침묵을 지킬 것
3) 조건들을 시행할 의사가 없으면 총대를 사퇴하고 출석하지 말 것.
한편 평양 경찰서장은 신사참배 안건이 나왔을 때 결정지을 수 있는 각본을 미리 짜려고 사전에 평야. 평서. 안주 세 노회 총대대표를 불렀다. 평양 노회장 박응률에게 신사참배는 종교의식이 아니고 애국적 국가의식이므로 기독교인들은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제안하게 했다. 또 평서 노회장 박임현에게는 박응률의 제안에 동의하게 했다. 안주노회 총대 길인섭에게는 동의에 재청할 것을 강요했다. 마침내 1938년 9월 10일 오전 10시 30분 평양 경찰서장의 각본대로 총회는 신사 참배하도록 결의를 하고 말았다. 이 시간에 한국 교회는 이미 죽은 것이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