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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심은대로 거둔다 (갈 0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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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심는대로 거두는 법칙을 좋아하신다. 그런데 신자들은 자신들이 심은 것을 근거로 육체적인 것만을 구한다. 그러나 성경은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거둔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이따금 ‘육체로 심는 자는 아무 것도 못얻고 신령한 것을 심는 자만 얻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육체로 심어야 육체를 거두는 법’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투자도 하고, 또 일도 해야 한다.
‘신령한 것으로 심고’ 즉 하나님께 요구를 하면 하나님은 신령한 것으로 답해 주신다. ‘신령한 것으로 심으면’ 영생을 거두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자녀를 위해서 기도를 하면 공부를 잘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심 속에서 그 은혜를 입는 자로써 크게 된다는 말이다. 공부를 잘할지 못할지는 ‘공부에 관한 문제일 뿐 신령한 문제는 아니다’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신앙 풍토는 이렇다. 예수를 잘 믿으면 물질 축복받고 물질 축복을 받지 못하면 신앙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좀 더 깊은 신앙의 경지인 하나님이 우리를 신령한대로 쓰시고 신령한 것으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들을 물질적인 축복이 병행되지 않으면 믿음이 없다는 식의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많이 시험받고 낙심과 좌절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육체로 거두고 싶으면 육체를 위하여 심으라. 그러면 틀림없이 거두게 될 것이다. 신령한 것으로 거두고 싶으면, 즉 성령으로 심으면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 우리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그런데 이 일이 정당하고 성경이 약속한 옳은 것이며 그것이 세상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뒤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
라 그러므로 너희는 기회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9-10)”
신자가 ‘교만한 것’과 ‘낙심하는 것’ 중에 어느 쪽이 시험이 더 많은가 막상막하이다. 우리는 늘 교만하다. 교만한 이유는 무지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아무에게나 그 공식을 갖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신앙 생활이란 단순하지 않다. 단순하지 않다는 것은 우리가 다 알지 못할만큼 신앙은 깊고 풍성하다는 말이다. 실제로 예수를 믿자마자 닥치는 어려움이 무엇인가 그것은 ‘낙심’이다. 신앙 생활은 어렵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기도 하다. 신자란 참 외롭다. 서로 격려하고 돌아 보라는 명령을 받고 실은 그렇게 해주어야 설 수 있는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이 신자이다. 여기에 관한 근거 구절이 고린도전서 15장에 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
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
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
:50-58)”
이 말씀은 부활 신앙의 핵심이다. 우리는 죽어서 땅속에 묻히고 썩을 것이다. 이것을 주 안에서 ‘잠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대로 있지 않고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다 부활할 것이니라’ 진술한다. 이것을 우리는 믿는다. 그리고 이 부활 신앙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우리가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썩은 시체는 일어날 수 없다. 만일 일어났다면 그것은 누군가에 의해서 일으켜짐을 받은 것이다. 57절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했다. ‘이김을 주는 것’이다. 사망을 어떻게 이기는가 그가 ‘이김’을 주시는 것이다. 곧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그것이 부활신앙의 중심이다.
본문은 우리가 좌절하고 넘어질 때마다 이 생각을 하자고 권면한다. 우리는 이 일에서 절대로 넘어지지 않는다. 바로 하나님께서 하시기 때문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
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
니라(고전 15:57-58)”
신자끼리는 서로 권면하여야 한다. 좌절이란 결국은 자신의 일로 생기는 것이다.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 바로 이 대 명제를 소홀히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좌절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좌절하지 않도록 서로를 격려하며, 위 명제를 각자가 내적인 힘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며, 바로 이것이 끊임없이 성령 안에서 씨를 뿌려야 하는 우리의 일에 힘을 주는 근거라는 것을 알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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