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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교회가 애매히 받은 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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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 후였다. 4월도 중순에 들어섰을 때, 일제가 가장 잔인무도 하게 횡포를 부린 ‘수원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한국 겨레의 자유를 찾으려는 항거에 터무니없이 화가치민 일본 경찰과 헌병이 더욱 무도하게 탄압을 가하는 중에, 4월 15일에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에 일본군 중위가 인솔하는 일본 군대가 나타나서, 주로 동네의 젊은 남자 약 30명을 강제로 제암리 교회에 몰아넣고 출입문을 모조리 굳게 잠근 후, 살려 달라고 아우성치는 청년들에게 일제 사격을 퍼부은 사건이다. 일본군은 그것으로도 모자라 문틈으로 기어 나오는 어린이들을 총검으로 찔러 죽이고, 그러고 나서는 교회 건물과 그 주위의 민가에 석유를 끼얹어 불을 질러 버린 것이다. 이것만으로 끝내지 않고, 그들을 학살한 일본군은 그 외에도 제암리 근처의 곳곳에서 많은 사람을 죽이고, 민가를 불태우는 등 만행을 감행했다. 이것은 직접 한국인의 벗으로 알려지는 영국의 의료 선교사 스코필드 박사가 사진을 찍어 전한 사실이다. 교회는 때로 이런 애매한 박해를 옛날부터 받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박해는 그렇다고 교회를 없이하지는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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