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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바로 알아감(14) (삿 06: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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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하나님의 성호와 관련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배우며, 그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우리의 신앙은 어떠해야 하겠는지 배워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평강의 여호와”(여호와 샬롬)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평강의 여호와‘라고 부르게 된 역사적 배경

1. 이미 계시하신 하나님을 저버렸을 때입니다.
여호와는 거룩케 하시는 분이라는 ‘여호와 메카디쉬’로 여호와께서 자신을 백성들에게 계시하신지도 어언 200여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그때는 이미 여호수아가 죽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점령하여 각 지파별로 그 땅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와 그들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시작했고, 그들 주위에 있는 이방 백성들의 신들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으로서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크고 능한 이적으로 그들을 애굽의 속박 가운데서 구속을 예비하셨던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더이상 그들에게 닥쳐오는 모든 질병을 치료하셨던 ‘여호와 라파’이신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제 그들의 모든 시련과 싸움에서 능히 승리케 하시는 깃발되신 ‘여호와 닛시’로서의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렸기 때문에 패배를 경험케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라는 그분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들을 거룩케 하시는 ‘여호와 메카디쉬’이신 하나님을 저버리고 그들 자신을 거룩케 하지 않고 도리어 그들의 가증한 것들과 우상숭배로 스스로를 부패케 하였습니다.

2. 사명에 대한 자각이 없이 구차한 안일에 빠져 있을 때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그들의 여호와를 섬기며 그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열국 가운데서 구별된 성민이요 특별한 소유로서 불리움받은 그 사명을 거의 깨닫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물질적인 번영과 일상 생활의 만족에서 뛰어 일어나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향해 일어설 수 없게 보였습니다. 그 땅에서 살고 번창하고 물려받는 것으로 그들의 기능을 다한 것인냥 그들 스스로를 만족히 여기며 구차한 안일 가운데 빠져 있었습니다. 이때에 그글 가운데는 물질적 야망을 채워줄 이방 신들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사명에 대한 자각 없이는 이스라엘을 하나로 결속시킬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사명에 대한 영적인 각성이 없는 그들은 곧바로 육체의 정욕과 식욕을 채우고자 하는 안일한 삶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3. 여호와의 징계로 평화를 잃고 두려움 가운데 있을 때입니다.
그같은 모든 배교는 그들을 그들의 거룩한 영적인 부르심으로 일깨우시기 위한 여호와의 징계를 초래했고, 그 결과 그들은 심판과 비참함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들이 돌이키면 하나님은 사사를 일으키심으로 그들을 그 곤경에서 구속하셨습니다. 계속 잇따른 배교는 한층 더 심한 징계를 유발하게 하였고, 주변 이방 국가들로부터 징계를 받아 그들의 딸과 노동의 열매들을 다 빼앗기게 되었으며, 급기야 그들은 노예상태가 되었습니다.
여호와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실상 그들은 그 땅을 누릴 권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그 땅을 가꾸고 곡식을 심었지만 거두지 못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심령 가운데서 영적인 씨를 뿌리셨지만 그들은 그들 주위 이방의 우상숭배를 허용함으로 인해 그 부패한 우상숭배가 그들 심령에 있는 영적인 씨를 짓밟고 찢도록 했습니다.
그와 같이 이제 그 똑같은 이방인들이 육체적인 이스라엘의 생존마저도 고통스럽게 하며 위험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 적들은 실상 이스라엘이 완전히 진멸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함으로 인해 도리어 그 적들이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그 땅을 휩쓸며 이스라엘을 광야와 산으로 내몰아 버린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마치 카타콤(로마 박해묘지)처럼 공기 구멍을 만들어 놓은 지하 굴을 파야 했고 적으로부터의 공격을 피할 수 있도록 파수꾼을 계속 세워야만 했습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이 미디안에 의해 극심한 압제를 받는 때에 살았던 한 청년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고 하나님은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7년간 붙이셨습니다. 기드온 당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로 미디안 사람들에게 쫒겨 평화를 잃고 얼마나 두려움 가운데 지냈는지 하는 것을 다음과 같은 기록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삿6:2)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으며(삿6:3)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이 치러 올라와서(삿6:4)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삿6:5) 이는 그들이 그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서 메뚜기 떼같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약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삿6:6)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인하여 미약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이스라엘은 미디안 사람들에게 쫒겨서 산으로 내몰렸습니다. 산으로 구멍과 굴을 파놓고 숨어서 살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산성에 갖혀서 살아야 했습니다. 미디안과 아말렉을 포함한 그 동맹국들이 메뚜기떼 같이 쳐들어 와서 진을 치고 토지 소산을 약탈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두지 아니했으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고 약탈해 갔습니다. 그들은 미디안의 약탈을 막아내는데 역부족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평화를 잃고 두려움 가운데 지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징계로 미디안에게 짓밟히면서 죄를 통회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있을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징계로 미디안에게 짓밟히고서야 두려워하며 죄를 통회 자복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부르짖었습니다. 바로 그때에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통해서 ‘평강의 여호와,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이 다 삼키는 종에 그들을 두려워 하여 약간의 밀을 얻고자 은밀하게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여 그들을 구원할 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삿6: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러자 기드온은 반문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께신다면 어찌하여 미디안 사람들에게 이렇게 짋히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이렇게 기드온은 여호와께서 배도하는 백성들을 징계하셔서 미디안에게 짓밟히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잇엇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기드온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미디안의 손에서 건져내라고 하시지만, 기드온은 자기 같이 극히 약하고 작은 자가 어찌 미디안의 손에서 건져낼 수 있겠느냐고 대답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다시 기드온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하리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기드온은 지금 자기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염소 새끼 하나를 잡아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가루로 무교전병을 만들고 국을 양푼에 담아서 상수리나무 아래 있는 여호와의 사자에게 가져가서 반석위에 고기와 무교전병을 올려 놓고 그 위에 국을 부었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를 내미니까 불이 반석에서 나와서 태웠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드온은 그때서야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슬프도 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하고 통화자복 했습니다. 기드온은 죄 가운데 있는 인생이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여 뵈면 진노를 받아 죽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말씀은 기드온에게 이중적인 약속의 말씀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직접적으로는 죄 가운데 있는 기드온이 거룩하신 여호와를 대면하여 뵈었는데도 통회자복하는 그에게 진노를 내리지 아니하시겠다는 약속이요, 더 넓게는 지금 이스라엘에게 내려지고 있는 징계를 통회자복하며 부르짖는 그들에게서 거두시겠다는 약속으로 들려졌을 것입니다. 기드온이 지금 죄가운데 있는 자신이 거룩하신 여호와를 대면하여 뵈었기에 진노를 받아 죽게 되었다고 두려워 하며 통회자복하고 있는데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마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미디안에게 약탈을 당하며 두려워하며 통회자복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으로 들려졌을 것입니다. 기드온은 이 여호와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중요한 한 부분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로 두려워 하며 통회자복하고 있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평화를 주시는 분’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인상깊은 사건과 말씀 계시를 접한 후에 기드온은 그곳에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그 단의 이름을 ‘여호와 샬롬’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단은 사사기 기자가 기록으로 남길 때까지도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기념비가 되어서 후대에 까지도 알려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와 같은 유사한 기념비가 많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입니다(예, ‘여호와 이레).
이런 사실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그토록 혼돈하며 정처없이 환란 가운데 두려워하고 있었던 시기에 여호와께서 그분 자신을 평강의 여호와로 가장 현저하게 계시하신 것입니다. 기드온 때에는 이스라엘의 극한 배도로 인하여 미디안의 침공을 받아 평화를 잃고 두려움 가운데 있었던 시기였기에 그때는 여호와에 대한 새롭고 한층 더 선명한 계시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방 나라에서 성별해 내신 직후에 시내산 아래에서 주신 거룩한 규례들로 되어 있는 출31:12-18이나 레위기에서는 ‘거룩케 하시는 여호와’ 즉 ‘여호와 메카디쉬’로 계시된 것이 가장 적절했던 것처럼, ‘여호와는 평강’ 즉 여호와 샬롬‘이라는 계시는 사사기에서 가장 적절하고도 때에 맞게 나타난 것입니다. 가나안을 정복한 후 이스라엘은 반드시 그 평안 가운데로 들어가야 했습니다(신12:9).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그들은 심지어 그 모형적인 안식도 얻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혼돈스러운 불안정‘이란 말보다 더 사사기 특징을 잘 나타내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거듭되는 속박과 곤경으로부터의 구원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그 땅이 다만 잠시 동안의 안식만 가졌을 뿐임을 알게 됩니다. 기드온 시대보다 더 불안과 두려움이 컸던 때는 없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평안을 주시는 여호와’로 계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한 징계로 두려움 가운데 있던 당신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다시 찾아 오셔서 ‘평안을 주시는 여호와’이십니다.
▣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진노 가운데 있는 인생들에게 화목제물을 보내신 ‘평강의 여호와’ 이십니다!
모든 인생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었습니다(롬1:18).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진노 아래 있어서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던’(롬3:17) 인생들을 위해서 화목제물을 보내셔서 평화를 주신 분이십니다.
(롬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따라서 하나님께서 화목제물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만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롬5:1, 10-11).
(롬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롬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5:11)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그리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된 자들만이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둘째, ‘평강의 여호와’를 모신자의 신앙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케 하시는 사역의 공효를 덧입어 ‘평강의 여호와’를 모신 자는 온갖 두려움 가운데서 평안을 얻게 됩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 아래서 두려워 하였었는데, 이제는 평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물론 주님 안에서 살아가면서 때때로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길을 가다가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두려움 가운데 빠지기도 하지만, ‘평강의 여호와’께 자신의 죄를 자복하며 그 길을 돌이킴으로 다시 평안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은 죄에 대한 징계로 오는 두려움 외에도 여러 가지의 요인으로 인하여 두려움 가운데 빠지게 되는 것인데, 그러한 지경에서도 ‘평강의 여호와’를 모시고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1. 평안을 얻거나 잃은 경우들
사람이 평안을 잃거나 누릴 수 있는 경우는 크게 둘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1)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게 될 때 평안을 잃습니다.
우선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경우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게 될 때입니다. 일반 사회에서도 죄 지은 사람은 늘 쫒기고 불안해서 살 수 없는 것인데,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의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죄 가운데 있을 때 징계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죄지은 것이 없이 선량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두려워 하지 않고 평온함이 있듯이, 하나님의 말슴에 순종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 여러 곳에서는 하나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여 살면 안전히 거하고 평안을 누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평안을 누리며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48:18)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
(레26:2)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의 성소를 공경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26:3)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레26:4) 내가 너희 비를 그 시후에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수목은 열매를 맺을지라(레26:5)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 땅에 안전히 거하리라 (레26:6)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우나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시119: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빌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2)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 염려에 붙들릴 때 평안을 잃습니다.
평안을 잃고 두려워 하게 되는 또 하나의 경우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 염려에 붙들릴 때입니다. 사람에게는 능력의 한계가 있어서 자기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을 당했는데도 의지할 분이 없이 자기의 힘으로 해결해야 할 때에 두려움이 생깁니다. 아무리 자기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당해도 능히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 분이 곁에 있다면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밤중에 어린 아이가 공동 묘지를 지나가더라도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간다면 두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사 가운데서 당하는 크고 작은 어려움을 온전히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여호와이십니다. 따라서 그 하나님을 늘 의지해서 살아갈 때에 두려움이 없고 평안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자기의 힘을 의지해서 무엇이든 해결하려고 할 때에 여러 면에서 역부족을 느끼고 염려와 불안과 두려움에 붙들리게 됩니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고 의지하는 자만이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성만찬을 나누시면서 당신의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베드로가 세번이나 주님을 부인하고 떠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에게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자기들이 의지하고 따르던 주님이 잡혀 죽으신다면 자기들은 어떻게 되겠나를 생각하면서 두려워 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다음과 같이 안심시키셨습니다.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날 저녁에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며 문을 잠그고 모여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 21)라고 말씀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면서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드레를 지나서 다시 의심 많은 도마도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26) 하시고, 도마에게 못자국 난 손과 창자국 난 옆구리를 보여주셔서 부활하심을 믿을 수 있게 하심으로 평안을 주셨습니다. 도마를 포함한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서 주님을 의지할 수 있었고, 주님을 의지함으로 평안을 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평강을 주시는 여호와, 승리하신 주님,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세상에서 당하는 여로 환난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심지가 견고하지 못하여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하기에 조그만 어려움 앞에서도 두려워하고, 염려하며, 불안해 합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 같으면 불안해 하고 염려하고 두려워 해야 할 상항에서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심지가 견고한 성도는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 세상이 주는 거짓 평안에 속아서 구안(苟安) 가운데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꼭 한 가지 잊지 않고 생각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참된 평안이 아니라 거짓 평안을 가지고 “평안하다, 평안하다!”며 스스로 속고 구안(苟安) 가운데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죄악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도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거짓 평안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한 거짓 평안 가운데 있었습니다. 당시의 많은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죄악 가운데서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으며, 징계의 잔이 곧 쏟아질 지경에 있었던 유다 백성을 향하여 “확실한 평강을 주시리라!”며 거짓 평안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백성들도 거짓선지자의 외침을 받아들이고, 예레미야와 같은 참 선지자가 외치는 징계에 대한 예고는 귀담아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징계의 잔을 받아 이방나라 바벨론에게 망하여 평화를 잃게 되었습니다.
(렘14:13) 이에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이 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시리라 하나이다(렘14: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렘14:15)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렘14:16)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인하여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입을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 아내와 그 아들과 그 딸도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
이러한 일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은 더 말할 나위 없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죄악 가운데 살고 있는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주는 평안’을 잠시 동안 누리면서 ‘평안하다, 평안하다!’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기에 평안이 아닙니다. 잠시후 인생의 막이 내리고 심판대 앞에 서는 날에는 “화로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외치게 될 것입니다. 지금 그들은 세상이 주는 거짓 평안에 속아서 안주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것들을 보고 조금도 부러워할 것 없습니다. 불쌍히 여겨야 마땅합니다.
(롬3: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롬3: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3: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롬3: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롬3: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롬3: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롬3: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롬3:18) 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그런데 믿는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 중에서도 거짓 평안에 안주해서 살아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의 잔이 곧 내려질 지경에 있으면서도 ‘세상이 주는 평안’에 안주해 있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확실한 평강을 주시리라!”는 거짓 확신 속에서 하나님의 징계를 재촉하는 삶을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제 멋대로 인생을 낭비하며 살아간다면, 현실적으로는 가정적으로나 생업과 관련해서 아무런 어려움이 없고 순탄대로가 펼쳐지는 순간에라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현실적이고 세상적인 평안이 꼭 참된 평안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는 현실적인 평안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징계가 임박한 두려움의 시간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렘2:19)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맺 는 말
세상이 주는 평안은 거짓 평안입니다. 거짓 평안에 속지 마십시요! 참된 평안은 오직 “평강의 여호와”(여호와 샬롬)께로서만 옵니다.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롬5:1).
(롬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이미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게 되었을지라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가야 계속적인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혹시 여기 모인 성도들 중에 늘 마음에 평안이 없고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하다면, 두 가지 점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길을 걷고 있어서 징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고 자기의 힘으로 인생을 경영해 가려는데서 오는 염려는 아닌지, 살피시기 바랍니다. 불순종의 길에서 회개하고 돌이킬 때에 평안이 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며 살아갈 때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안심이 됩니다.
특별히 우리 신약의 성도들에게 익숙한 신약적인 표현으로 말씀드리면, 성령님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심으로 주시는 거룩한 소원을 따라서 살아가며,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자에게 참된 평안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우리가 누리게 되는 하나님 나라의 은혜의 실질들 가운데 하나로 ‘성령 안에서 누리는 평강’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여러분에게 ‘성령 안에서 누리는 평강’이 충만하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민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민6:25)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민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롬15:33)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담임교역자 라황용
전북 김제 송상교회 /☏(0658) 542-5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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