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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바로 알아감(16) (시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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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우리는 한나가 최초로 불렀던 ‘만군의 여호와’라는 이름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라고 부르면서 도움을 구하여 대적 브닌나의 멸시에서 건짐을 받았고, 그 후에 소년 다윗도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서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리셋의 억압에서 건져낼 수 있었던 사건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시23편에서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로 믿고 의지하였던 다윗의 입에서 또 다른 이름이 불려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로만 아니라, ‘목자되신 여호와’로 믿고 의지했습니다.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첫째, ‘목자되신 여호와’라는 이름이 불려지게된 역사적 배경과 그 의미
‘여호와 로이’(목자되신 여호와)라는 이름은 다윗이 지은 노래 시23편에서 최초로 불려지고 있으며, 그 이후에 여러 곳에서 하나님을 ‘목자되신 여호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여호와 로이’(목자되신 여호와)라는 이름이 불려지는 여러 역사적인 배경을 살피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1. 다윗에 의해서 불려진 ‘목자되신 여호와’의 모습(시23편)
아마 이 시는 다윗이 파란만장한 인생의 세월을 보내고서 인생의 뒤안길에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떻게 먹이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해 오셨는지 과거를 회상하면서 장차도 평생토록 그렇게 인도하실 것을 확신하며 지은 시로 생각이 됩니다.
다윗도 뿌리깊은 대적 사울에 의해 그의 생명이 위협을 당하며 쫓겼던 그 파란만장한 세월을 되돌아봅니다. 그 무수한 전쟁의 날들과 자식 압살롬의 반역, 밧세바와 우리에 대한 쓰라린 범죄와 그 슬픔의 뒤안길을 회상해 보면서 그는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항상 선한 목자되신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인도하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자신이 어린 시절과 청년기에 아버지의 양떼를 돌보았던 목동이었음을 회상해 봅니다. 그때 그는 자신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관계가 양에 대한 목자의 관계보다 더 아름답고 적절하게 표현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까지의 그의 모든 인생의 폭풍과 압력 속에서 여호와께서 그를 그토록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이끌어 주셨기에 이제 그는 확신과 담대함을 가지고 앞으로의 남은 생애도 그분을 바라보며 이렇게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23:6)
이제 우리는 다윗이 그의 생애를 회상하면서 하나님의 어떠한 점을 들어서 ‘목자되신 여호와’로 노래하고 있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다윗은 크게 세 가지 점을 들어서 목자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1) 먹이시고 기르시는 분(2절)
2절에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다고 했습니다. 양의 생태를 잘아는 분들의 글에 의하면 양이 꼴과 물을 마음껏 먹고 마셔서 배가 부르면 누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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