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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 (창 11:1-9)

첨부 1


대홍수 사건 이후에 노아의 세 자녀는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여러 곳에서 자녀를 낳았고 그 자녀들은 또 자녀를 낳아서 오늘의 인류를 만들었습니다.
창세기 10장 32절을 보십시오.
이들은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그 세계와 나라 대로라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이 나뉘었더라
인류는 노아의 세 자녀를 중심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런데 11장에서는 피부와 언어와 문화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으로 인류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사는 누구든지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고 경외하는 사람과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고 무시하며 물질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11장 1절부터 10절까지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그룹에 대해 말합니다. 바로 그들이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는 11절부터 32절까지로 셈의 후예들인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룹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던 그룹은 함과 야벳 족속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룹으로는 셈에서부터 아브라함까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러분에게서 아브라함과 같은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들이 나오기를 원합니다.
로마서 1장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그룹들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썩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썩는 금수와 버러지의 형상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세상은 잘못된 신을 섬기고 있는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그룹들 가운데 함의 자녀인 구스의 계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계보 안에는 니므롯이라는 영웅이 있었습니다. 고대 역사를 보면 위대한 전사들이 세계를 지배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틀러나 스탈린과 같은 독재자를 통해 역사는 지배되어 왔고 오늘날도 동일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10장 9-10절을 살펴보면 구스의 아들인 영웅 니므롯은 시날 땅에 살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땅은 역사의 기원이었던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주변이며 바벨의 문화가 꽃피었던 장소입니다.
11장 1절을 보십시오.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노아 홍수 이전에는 언어가 하나였습니다. 단어와 문법이 하나였습니다. 아마 그들은 셈족의 언어인 히브리어를 썼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홍수 이전의 지명이나 인명이 모두 히브리어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특성 중에 하나가 언어입니다. 언어는 하나의 사상과 생각을 만듭니다. 사상이 없는 언어는 없습니다. 진화론자들은 아직도 이 인간의 언어와 동물의 짖는 소리의 차이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겨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하나님을 떠나 찾은 시날 땅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은 끊임없이 동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동쪽으로 이동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멀리 떠났다는 말입니다.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를 거부합니다. 자꾸만 하나님을 떠납니다. 무신론자들이 하나님은 없다고 말하며 하나님을 믿지 않는 까닭은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잘못한 것이 있는 자녀는 부모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부모에게 가까이 가기를 꺼려합니다. 그러나 잘못한 것이 없는 자녀는 부모를 좋아합니다. 부모를 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마찬가지로 죄가 없는 인간은 하나님을 피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말날수록 좋습니다. 만나면 만날수록 더 만나고 싶어집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가까이 가고 싶고 호흡을 함께 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이 두렵고 무섭습니다. 그가 심판하실 것 같고 비밀을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멀찍이 쫓아갔던 것처럼 예수님을 믿어도 멀찍이 믿습니다. 교회에도 가끔 나오고 예배가 끝나기도 전에 일찍 갑니다.
저는 여러분이 교회를 가깝게 하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는 친구가 좋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는 친구가 부담스럽고 오히려 세상 친구가 더 편하고 좋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좋아합니다.
가인의 후예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기 위해 에덴 동산에서부터 동쪽으로 가다가 만난 곳이 시날땅입니다. 처음으로 사람이 살 만한 곳을 만난 것입니다. 그들은 시날땅에 머무르기로 하고 그곳에서 그들의 이상 사회를 세우려는 야망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 없이도 인간은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여기고 살기 시작했던 곳이 바로 시날땅입니다. 바벨론 문화가 만들어 졌던 곳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하나님을 피해서 살 수 없습니다. 하늘 끝에서도, 바다 끝에서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피해 숨어 있는 그곳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3절을 보십시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바벨론 문화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벽돌을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토기 문화에서 벽돌을 만들어 낸 것은 천지개벽할 만큼 놀라운 사건입니다. 요즘 우리 시대의 위대한 발견은 바로 컴퓨터의 제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싫든 좋든 컴퓨터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컴퓨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광범위하게 우리의 삶과 사고 구조를 바꾸어 줍니다.
벽돌을 만들게 된 사람
이 컴퓨터의 발견과 같이 그 당시에는 벽돌을 발견한 것처럼 놀라운 일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벽돌이 없었을 때의 사람들은 동굴 속이나 나무 위에 살거나 돌을 옮겨와서 지은 집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돌은 운반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돌집에 산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날 땅에서 많은 흙을 만나게 되었고 그 흙을 불에 구웠더니 아주 단단하고 쓸 만한 물건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벽돌로 돌을 대신하고 역청을 발견해서 누구든지 집을 견고하게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대혁명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점토로 벽돌뿐만 아니라 그릇도, 항아리도 만들어서 쓰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시대에 흙으로 무엇을 만든다는 사건은 문화적인 발전과 기술이었습니다.
아마 그들은 자기들의 지혜와 기술로 인간의 위대함을 예찬했을 것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벽돌을 만든 것은 당시의 문화적인 혁명이었고 그들의 사고 구조를 변화시키는 엄청난 발견이었습니다. 벽돌을 구워 집을 짓고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고 항아리를 만들어 사용하는 일은 삶의 질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인간은 핵을 만들었습니다. 핵은 전력을 공급하고 인류의 복지와 평안을 위해 사용할 수 있어서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는 좋은 도구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전쟁을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습니다. 지금 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핵무기의 위협 아래 놓여졌습니다. 북한에게 미국이 벌벌 떠는 이유도 무식한 사람들이 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술 문명의 한계입니다. 마치 사람들이 벽돌 문화를 단순히 생활의 편리한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벽돌 문화를 현대적으로 적용시켜 보면 과학기술 문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즘 생명에 도전하는 복제 인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과학기술은 엄청나게 발전되었습니다. 많은 기술들이 인간의 복지와 행복과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습니다. 핵이 인간을 위협하는 무기가 되었듯이 모든 과학기술 문명은 인간을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인간을 종으로 만들고 비인간화하며 행복을 앗아갑니다. 자동차가 편리하고 좋지만 자동차 때문에 생기는 공해와 스트레스는 엄청납니다.
문명의 이기는 이기가 아니라 악기입니다. 오히려 인간을 빨리 죽게 합니다.
4절의 말씀을 통해서 인간의 본질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벽돌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바벨탑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간은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고상하고 위대한 존재가 아니고 이론대로 되는 존재도 아닙니다.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론대로 라면 그 사회가 잘 될 것 같아 보이지만 실패했습니다. 그 이론들은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질이 악하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제도와 방법일지라도 인간은 그것을 결국 악하게 사용합니다.
탑을 쌓는 이유
그들은 벽돌로 탑을 쌓기로 했습니다. 인간이 편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탑을 쌓은 이유는 첫째, 하늘 끝까지 가기 위하여 쌓자고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반항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생각입니다.
처음 뱀이 인간에게 네가 이것을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며 유혹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이 되는 수단이라고 마귀는 인간에게 계속해서 하나님께 반항하기를 종용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반항할 때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자식이 대들 때이기는 부모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열매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하나님께 대들라 그러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라고 속입니다. 이것이 바벨탑 사건에서 보여주는 영적 진리입니다.
인간의 최대 유혹은 신이 되려는 유혹입니다. 신이 되려는 유혹은 지배욕으로 나타납니다. 인간은 사람들을 친구로 삼고 섬기는 대상으로 보지 않고 종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 위에 군림하고 싶고, 명령하고 싶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위기의 인간이 됩니다. 왜냐하면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권력이 있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갔을 때 조심하고 사람을 부리지 말고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치입니다. 사람의 정치는 사람을 부리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정치는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벽돌을 발견한 사람들은 인간이 위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처럼 되자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그들이 바벨탑을 쌓은 동기는 우리 이름을 내고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내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의 이름을 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명해지자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능 중에는 신이 되려는 속성이 있고 자기가 높아지려는 죄인의 속성이 있습니다.
며칠 전 정주영회장이 북한에 다녀왔습니다만, 아름다운 금강산에는 김일성 주체 사상이니 하는 글들로 도배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에 인간의 이름을 붙여 놓았습니다. 이것이 바벨탑입니다. 어디든지 자기 이름을 내고 책상 위에도 회장이라는 직합을 드러내 놓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본능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자는 것이 아니라 내 이름을 내자는 것이 바로 바벨탑을 쌓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좋은 말로 자신의 마음을 잘 감추고 있지만 모두 욕망을 채우기 위해 갈등합니다. 모두 자기 실속 채우기에 바쁩니다. 정의를 말하지만 자기가 권력을 갖기 위한 방법일 뿐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세 번째,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없는 고독함과 외로움이 있는 무서운 사회를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시날땅에 왔을 때 그들이 발견한 구호가 있습니다. 바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입니다.
인간이 발견한 구호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잘 뭉치는 사람들로 유명합니다. 무조건 뭉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 뭉쳤는지, 무엇을 위해 뭉쳤는지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하여 집단과 세력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좋은 동기로 그룹이나 세력을 만듭니다. 그렇게 만든 것이 EC공동체이고 G7이며 UN입니다. 그런데 그 모임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 나라의 이익만을 보호합니다. 전세계를 보호하지 않습니다. 다른 나라를 도와주는 것은 자기의 나라가 살기 위한 방편입니다. 이것이 바로 흩어짐을 면하고 우리끼리 잘 살아보자는 인간의 본질인 죄인의 모습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시편을 보면 하나님이 웃으시리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벨탑을 쌓는 인간들을 보고 하나님은 웃으십니다. 정당을 만들고 단체를 만드는 인간의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은 웃으십니다.
바벨탑을 쌓는 일은 심각했습니다. 바벨탑을 쌓는 것을 그대로 놔두면 구원의 길을 막아 버리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바벨탑 쌓는 일을 막으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 시대의 죄를 홍수로 심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시는 물로 인류를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모두를 심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인간의 죄는 막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강림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죄가 관영했을 때 유황불을 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찾아왔던 것처럼 하나님이 오신 것은 기쁜 일이 아니라 죽음의 소식을 가져오는 슬픈 일이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복은 한 언어와 한 발음입니다. 홍수로 세상이 심판을 받은 후에도 언어의 복은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언어의 복은 곧 의사 소통의 복입니다. 의사 소통이 되지 않으면 서로의 생각이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언어의 분열은 저주
부부가 싸우는 이유는 대화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은 동기를 가지고 대화를 시작하지만 의사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싸우게 됩니다. 부부는 대화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말하는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언어는 하나님이 주신 복이었는데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이 복마저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언어의 복을 좋은데 쓰지 않고 하나님께 반항하고 자기 이름을 내고 하나님 없이 이상 사회를 만드는데 쓰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언어를 분열시켰습니다.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바벨‘은 곧혼잡케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혼돈한 존재입니다. 역사는 혼돈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까지 우리는 혼돈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면 질서가 생기며 대화가 생기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하나님은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에는 언제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 이렇게 삼위 하나님이 함께 의논하십니다. 사람을 만들 때에도 우리형상을 따라 우리모양대로 만들자고 했습니다. 7절에서도 자, 우리가 내려가서 라고 말씀하십니다.
언어가 혼잡케 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많은 고생을 합니다.
그러나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바벨탑 대신 한 장소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다락방입니다. 오순절 날 다락방에 홀연히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들에게 나타나서 사람들의 위에 임하여 있더니 성령의 충만함이 있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새로운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언과 천국의 말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천국은 언어와 말이 하나입니다. 천국의 말은 곧 사랑이며 방언이며 기도입니다. 이것으로 하나를 만들어 주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백인이나, 황인이 하나이며 무식한 사람이나, 유식한 사람이 하나입니다. 야만인이나 헬라인이나 하나입니다. 이방인이나 이스라엘 백성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한 언어, 한 영, 한 몸, 한 지체되는 것이 하나님을 믿으면 받는 복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마음에 갈등이 사라집니다. 부부와의 갈등, 친구와의 갈등이 사라집니다. 이 세상은 이기주의적인 집단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공동체만이 진정한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한 주간을 하나님의 공동체와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의 공동체와 다른 점과, 우리는 이 세상의 나라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갈 수 있는가를 집중적으로 기도하고 생각해 보기 위해 공동체 축제를 엽니다.
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결국 그들은 성 쌓기를 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벨탑을 쌓는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바벨탑 안에서는 자신의 기술과 예술, 철학, 능력만을 믿습니다. 우리가 이 물질 세계 속에서 살면 돈과 기술과 쾌락만 보입니다. 거기에서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보고 싶다면 그곳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만드신 창공과 넓은 세계를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바벨탑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바벨탑을 쌓고 있기 때문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인간이 가야 할 길은 바벨탑이 아니라 성령이 임했던 다락방으로 옮겨져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나라와 언어와 천국이 회복될 줄 믿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바벨탑을 쌓는 어리석은
사람들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제 저희들이 바벨탑을 버리고
내 마음의 지성소에 성령님을 모시고
성령이 임했던 오순절 다락방으로
돌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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