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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은 행동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창 14:1-16)

첨부 1


전쟁은 이 지구상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전쟁을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싫어하는 전쟁은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무섭고 잔인하고 파괴적인 그 수많은 전쟁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도 그런 전쟁을 겪었던 나라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전쟁은 우리 가정 안에서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부부간의 전쟁, 자녀들과의 전쟁, 자신들이 원하지 않지만 끊임없이 서로 부딪히고 상처 주고 괴롭히는 전쟁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더 깊은 전쟁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전쟁입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내 안에서 여러 마음이 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 마음에 있든지, 가정에 있든지, 민족이나 국가간에 있든지 그 전쟁의 패턴은 모두 똑같습니다.
이 전쟁의 뿌리는 죄입니다. 죄가 있기에 전쟁이 쉬지 않고 계속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4절에 보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합니다. 인간 속에 있는 욕망과 욕심, 갖고 싶고 소유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남을 이용하고 조종하며, 그래서 당을 짓고 서로 투쟁하는 것입니다.

배반한 자와 배반당한 자
아브람 당시에도 잔인하고 살벌한 전쟁이 있었습니다.
먼저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당시에 시날왕 아므라벨과 엘라살왕 아리옥과 엘람왕 그돌라오멜과 고임왕 디달이
여기에 나오는 네명의 왕들이 한 그룹이 되어 있습니다.
현대의 모든 전쟁은 단독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동맹군이나 팀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누구와 싸우고 있습니까 바로 2절부터 나오는 왕들입니다.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왕 시납과 스보임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이들이 다 싯딤 골짜기 곧 지금 염해에 모였더라
커다란 두 개의 그룹이 싸우고 있습니다. 이들의 전쟁터는 싯딤 골짜기인데 지금 말하자면 염해 곧 사해라고 하는 곳입니다.
전쟁의 뿌리는 죄에서부터 옵니다. 죄의 깊은 곳에는 인간의 탐욕, 즉 남을 이기고자 빼앗고 지배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급기야는 이것이 집단적으로 나타나 다른 이들을 착취하고 싸우는 전쟁의 모습으로 인류사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전쟁의 형태는 동맹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는 패거리싸움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골목에서 돌멩이를 들고 싸운 경험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별로 가지고 놀 것이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공기놀이, 땅따먹기, 고무줄 놀이 등을 하면서 놀던 중에 아마도 제일 신났던 것이 바로 동네 패싸움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머리가 터지거나 얻어맞아 집에 돌아오기도 하였습니다.
동네 골목 싸움을 하다가 조금 발전하면 학교에 들어가서 패싸움을 하게 되며, 어른이 되면 바로 그것이 깡패 조직 싸움이 됩니다. 한 조직과 다른 조직이 서로 격전을 벌여서 누가 더 많은 영역을 차지하는가를 가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깡패의 조직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 이런 패거리 집단이 악을 조장하고 서로 그룹을 지어 싸우고 있습니다. 그것이 문화나 정치나 경제의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한 전쟁의 형태는 일대일의 싸움이 아니라 집안 싸움으로 변합니다. 집안과 집안, 가문과 가문 사이의 싸움이 됩니다. 지역의 싸움이 되기도 합니다. 어느 지역과 지역 사람들의 감정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당파싸움이나 정당 싸움으로 변하며 이것이 좀 더 커지면 부족끼리, 나라끼리 피투성이가 되게 싸웁니다. 이것이 전쟁입니다. 우리는 이 전쟁의 한 복판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배우는 또 하나의 사실은 아브람의 시대에도 똑같은 형태의 싸움이 있었는데 그들의 싸움의 원인은 무엇 인가하는 것입니다. 바로 4절에 그 질문에 대한 힌트가 있습니다.
4절을 읽겠습니다.
이들이 십 이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 십삼년에 배반 한지라
이 싸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돌라오멜이 이끄는 그룹은 굉장히 군사력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소돔의 왕 그룹들은 항상 이 그돌라오멜의 그룹에 조공을 바치고 그들을 섬겨 왔습니다. 그것이 12년간이나 되었습니다.
그들이 감사해서 섬겼을까요 할 수 없어서 섬긴 것입니다.
이를 갈면서 고개 숙이고 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내가 힘만 생겨 봐라. 반드시 복수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내 말을 잘 듣는다고 정말 잘 듣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으로는 칼을 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소돔 왕들은 12년동안 칼을 갈았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힘과 세력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13년이 되던 해 드디어 고개를 들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것을 성경에서 배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배반이라고 할 때 약속을 지키지 않고 신의를 잃어버린 것을 의미하지만 배반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12년동안 억울한 일을 당해 온 것입니다. 그래서 때가 되면 복수하려고 하며 때가 되면 그들을 정복하고 이겨 보려고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사실 배반을 당했다는 뜻은 내가 배반을 했다는 뜻과 동일한 것입니다. 이 사람이 가만히 있는데 배신을 했을까요 그만큼 당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보는 전쟁입니다.
배반한 자와 배반을 당한 자가 서로 입장이 다릅니다. 두 사람의 입장은 누가 잘못했고 누가 잘했다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배신을 당한 그돌라오멜의 입장에서는 내가 12년동안 봐주고 키워 났더니 이제 감히 네가 나를 물어하며 화가 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돌라오멜 동맹군들이 이대로 볼 수 없다며 혼내 줄 생각을 했습니다. 드디어 그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파죽지세의 그돌라오멜 동맹군
5-7절입니다.
제 십 사년에 그돌라오멜과 그와 동맹한 왕들이 나와서 아스드롯 가르나임에서 르바 족속을, 함에서 수스 족속을, 사웨 기랴다임에서 엠 족속을 치고 호리 족속을 그 산 세일에서 쳐서 광야 근방 엘바란까지 이르렀으며 그들이 돌이켜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
그돌라오멜의 동맹군들은 파죽지세의 힘으로 르바 족소, 수스 족속, 엠 족속, 호리 족속, 아말렉 족속과 아모리 족속들을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다섯 동맹 왕들을 치려 하고 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소돔 왕과 고모라 왕과 아드마왕과 스보임왕과 벨라 곧 소알왕이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서 그들과 접전하였으니
일대 대(大)접전이 일어났습니다.
왜 전쟁이 일어났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소돔 왕 그룹에서는 12년동안 억울하게 당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그돌라오멜의 입장에서는 이제 좀 네가 컸다고 나에게 반항하는구나. 이 못된 놈!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양쪽 논리에는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전쟁입니다.
가정의 불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편 말을 들으면 그 말이 맞고, 부인 말을 들으면 그 말도 맞습니다. 자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소리지르며 가출하는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부모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 나름대로 자식 때문에 가슴앓이 하는 속 깊은 사연이 있습니다.
이 모든 투쟁, 싸움, 상처의 깊은 곳에는 죄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전쟁은 내가 살면 너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권력을 갖게 되면 그 권력에 대항하는 사람은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질서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곧 그 다섯 왕이 엘람왕 그돌라오멜과 고임왕 디달과 시날왕 아므라벨과 엘라살왕 아리옥 네 왕과 교전하였더라
드디어 접전에서 교전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죽거나 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전쟁의 비참한 결과입니다.

소돔의 패배와 잡혀가는 롯
10절을 보십시오.
싯딤 골짜기에는 역청구덩이가 많은지라 소돔 왕과 고모라 왕이 달아날 때에 군사가 거기 빠지고 그 나머지는 산으로 도망하매
이제 전쟁의 결과가 드러났습니다. 그돌라오멜 동맹군이 승리했고 소돔 왕 동맹군은 패하게 되었습니다. 소돔 왕 동맹군의 군사들은 싯딤골짜기 구덩이에 빠졌으며 나머지 군사들은 패잔병이 되어 산으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도망하는 사람, 패잔병들의 신세를 아십니까 전쟁에서 졌다는 것은 자신의 어느 일부를 잃어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나라나 땅이나 집, 인권과 자유까지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이런 패잔병이나 포로, 피난민의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원래 소돔과 고모라는 어떤 땅이었습니까 성경에 보면 화려하고 멋있고 매력 있는 도시였습니다. 13장에서는 이 소돔과 고모라를 가리켜 물댄 동산 같고 여호와의 동산같고 애굽같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아름답던지 롯이 홀딱 빠져 버려서 값없이 뛰어든 땅이 바로 소돔과 고모라 땅이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그곳에는 부족함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소돔과 고모라를 가리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3장 13절입니다.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그렇게 아름답고 화려하고 살 만한 도시인 소돔과 고모라가 겉보기엔 아름다웠을지 모르나 그 안에 사는 사람은 악했습니다.
얼마나 악했냐 하면 성적이나 도덕적으로 너무나 타락해서 하나님이 불과 유황으로 진멸해 버리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화려함을 보지 그들의 도덕성을 보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멋있는 껍데기를 중요시하며 삽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소돔에 거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
소돔과 고모라의 패배는 그 안에 살고 있던 롯의 패배와 파멸을 의미했습니다.
아브람이 자기를 떠난 롯이 소돔과 함께 집과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노략질 당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의 고민은 여기부터 시작됩니다.
롯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람에게 신세를 지고 그와 동행했지만 늘 그를 불편하게 하며 고통을 주고 손해를 끼쳤던 사람이었습니다.
롯이 떠난 후에 아브람은 얼마간 속이 시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고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리라고 믿음으로 조카에게 양보해서 떠나 보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떠난 롯이 계속해서 잘 살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우리는 가끔 이런 경험을 합니다. 나를 괴롭히고 사업을 망하게 하고 힘들게 하던 어떤 한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렇게 나를 망신 주고 떠나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잘 살기는 커녕 암에 걸려 다 죽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괴롭힘을 당했던 사람의 마음이 어떨까요 속 시원하군, 참 잘 당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세상의 질서 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비록 나를 힘들게 하고 어려움을 주고 떠났더라도 그가 위기에 부딪혀 어려워 할 때 같이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이 아브람이었습니다.

믿음으로 행동하는 아브람
13절을 보십시오.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고하니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자더라
믿음의 사람 아브람은 조카 롯이 소돔을 선택했다가 절대적인 위기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무관심할 수 없었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위기에 빠졌을 때 행동하는 것입니다. 설령 그 사람이 나에게 해코지를 했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믿음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여기서 보게 됩니다.
형제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방관할 수도 있으며 모른 척 할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외교적인 사람은 걱정하고 염려해 주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고소해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그렇지 않았고 진정으로 가슴아파 했습니다. 조카 롯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의 행동입니다.
아브람은 머리로만 생각하거나 고민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행동했습니다.
14-15절을 보겠습니다.
아브람이 그 조카의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삼백 십 팔 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 가신을 나누어 밤을 타서 그들을 쳐서 파하고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쫓아가서
아브람은 롯이 소돔으로 떠난 후에 가신, 즉 군대를 키웠습니다. 그에게는 가신이 318명이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여기서 이렇게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들을 동원해서라도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믿음은 무엇인가를 행합니다. 믿음 있는 사람들은 그냥 주저앉아 있지 않습니다.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불가능에 도전해 보고 없는 것을 있게 만들고 안되는 것을 되게 만들며 자기에게 주신 그 모든 것을 동원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브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람은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즉시 모종의 행동을 취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기회만 있으면 복수하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10년이고 20년이고 계속 묵상하고 기억하고 있다가 기회가 오면 보복을 합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많이 씁니다. 저 놈 혼 좀 내 줘야겠다., 버릇 좀 고쳐 줘야겠다.그러나 혼내거나 버릇을 고쳐 주려고 시도하면 결국에는 상처만 남게 됩니다.
남편 버릇 고치려 들지 말고, 부인 혼내 주려 하지 말고, 자식들 혼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혼내는 것으로는 절대 고칠 수가 없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을 믿고 나서부터 누군가를 혼줄을 내주거나 버릇을 고치려 거나 복수하려는 태도가 없어졌습니다.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아브람이 롯을 도와주었다고 해서 롯이 아브람에게 감사하고 보상해 줍니까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롯은 결국 롯에 불과했습니다. 아무리 도와주어도 롯은 롯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남을 도와주었을 때 보상받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냥 도와주는 것뿐입니다. 내가 용서하고 도와주면 그 사람이 나에게 잘 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은 오히려 상처만 받게 하는 것입니다.

계산하지 않는 믿음
14-15절에서 한 가지 더 배울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람이 자기 자신의 군사적 힘이 얼마나 큰 지 계산하지 않은 채로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소돔과 고모라 왕도 패배했습니다. 그돌라오멜의 군대가 모든 족속들의 군대를 진멸했습니다. 그런데 고작 족장에 불과한 아브람이 군대가 있으면 얼마나 있으며 능력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습니까 기껏해야 318명의 가신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계산했을 것입니다. 이 숫자 가지고는 어림도 없고 이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라는 생각으로 자기를 설득했을 것입니다.
똑똑한 사람들의 특징은 너무나 계산이 빠르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상식으로 앞뒤를 전부 재서 모든 것을 시도하기 때문에 결국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과연 상식과 이성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이성으로 따졌으면 이스라엘 민족은 홍해를 건너지 못했을 것입니다. 상식으로 따지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질 수 없으셨습니다.
믿음으로 행한 것만이 남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주머니 사정이 좋으냐 나쁘냐는 그 다음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혹은 믿음의 사람이 선택할 길인가 입니다.
손해보는 일이거나 내 힘으로는 역부족일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하는 것입니다. 하다가 쓰러질지라도, 가다가 포기할지라도 나는 그 길을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기에 가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도 이런 믿음의 모습이 있기를 바랍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했던 사람이 위기에 빠졌을 때 손을 펴서 도와주고 나에게 상처 주었던 사람을 용서하는 믿음을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감당하기에 불가능한 일이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318명의 가신이라도 끌고 가서 조카를 구원하고자 하는 그런 믿음의 행동이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 그가 구원에 실패했다면 아브람도 롯과 똑같이 모든 것을 잃고 망하게 됩니다. 그런 모든 위험을 알면서도 아브람은 318명을 데리고 달려갔습니다.
믿음의 행동을 합니다.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을 가지고 행동합니다.
그래서 그는 밤을 선택합니다. 수적으로 열세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밤에 습격을 해서 그돌라오멜의 동맹군들을 순식간에 쳐서 파하고 다메섹 좌편 호박까지 몰아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 왔더라
할렐루야!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안되는 일이 되었고 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빼앗겼던 모든 재물과 자기 조카 롯과 부녀, 그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을 다 데려왔습니다.
무엇이 이런 일을 했습니까 믿음입니다. 상식이 이런 일을 이루지 못합니다. 아브람의 믿음과 하나님의 도우심이 이런 일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를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믿음이 없는 자를 어떻게 도우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돕고 싶어도 어떤 근거나 계기, 연결 고리가 있어야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한 것만 관심 있게 보고 계십니다. 당신의 능력과 상식과 경험과 이론으로 임할 때는 하나님이 개입할 이유가 없으신 것입니다. 기도를 안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을 하며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응답하시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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