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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브라함 때문에 구원받은 롯 (창 19:24-38)

첨부 1


24-2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 로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 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이 부분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사실은 죄는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죄를 지어도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죄를 쉽게 짓습니다.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의 죄를 들켰든 그렇지 않든 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한번 죄를 지으면 그 죄는 계속 남아 있습니다. 죄가 쌓이면 어느 날 그것은 심판으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가 그랬습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은 죄가 관영하여 심판을 받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너무나 심각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물로 세상을 다 쓸어버리시기로 결심을 하셨습니다. 그들의 죄가 얼마나 깊고 광범위 하던지 모든 것을 쓸어버리지 않으면 안될 만큼 죄가 관영 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8절을 보면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그냥 넘어가지 않으십니다. 죄에 대해서는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을 하십니다.
두 번째 발견하는 또 하나의 사실은 심판은 우연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심판은 죄에 대한 단순한 응답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심판자의 의지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은 반드시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을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한번은 꼭 죽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죽게 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불길한 이야기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지만 언젠가는 죽습니다. 사람에게 한 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세 번째 24-25절에서 발견하게 되는 또 하나의 진리는 심판은 개인적인 심판도 있지만 집단적인 심판도 있다는 것입니다. 유황불의 심판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게 되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내릴 때 개인적으로 아무리 착하고 하나님을 믿어도 그 도시 안에 있으면 심판을 한꺼번에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억울한 일이지만 도시가 망하게 되니까 개인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25절을 보면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게 되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불의 심판으로 그 성만 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이 멸망을 받게 되고 거기에 사는 백성들과 그 땅에 나는 모든 것이 멸망을 받게 됩니다.
개인이 잘못했으면 개인이 회개하면 됩니다. 그러나 집단이 심판을 받게 됐을 때는 개인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그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을 받을 때 살아남는 방법은 착하게 살고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기 위해서는 그 도성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뿐이 없습니다.
깡패가 그 집단 속에 있으면 착하게 살고 싶어도 착하게 살 수 없습니다. 매일 죄를 짓고 주일날 와서 하나님 잘못했어요 기도한들 끝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곳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고 그 도시에서 빠져 나오는 것입니다.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
26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롯의 아내는 롯과 함께 아브라함을 좇아 갈대아 우르를 떠났던 사람이고 그와 함께 오래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떤 기회가 있을 때 아브라함을 떠나 소돔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소돔이 멸망할 때 롯으로 인해 은혜를 받아서 천사의 도움을 받아 성밖으로 빠져나오는 축복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26절을 보면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보아서 소금기둥이 되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 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천사가 롯과 그의 아내 그리고 딸들을 소돔성 밖으로 끌어 내었습니다. 일단 위기는 극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소돔성 밖으로 끌어 냈다고 구원이 완성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는 돌아보거나 머뭇거리지 말고 저기 보이는 성을 향하여 가라고 말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구원받았다고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푯대를 향하여 계속 앞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갈 때 위기가 있습니다. 뒤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입니다. 우리는 이미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과거가 아무리 좋았고 화려했고 미련이 있다고 해도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면 죽습니다. 우리는 죄에서, 사탄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하나님 없는 세계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우리가 갈 길은 푯대를 향하여 앞으로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과거로 돌아가려 합니다. 과거로 돌아가지 마십시오. 뒤를 돌아보면 죽습니다.
롯의 아내는 왜 뒤를 돌아다 봤을까요. 우리는 두 가지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생각하고 농담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생각하다가 멸망한 사람이 바로 롯의 사위들입니다. 심판을 받게 됐으니 빨리 그 곳에서 빠져 나오라 했지만 그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뒤돌아 본다고 무슨 일이 생길까라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뒤를 돌아봐서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된 것입니다.
뒤를 돌아다보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소돔에 대한 미련입니다. 물질이 많은 곳에는 미련이 많습니다. 물질을 포기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없을 때 우리에게는 과거로 돌아가려는 미련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 롯의 아내는 그 미련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뒤돌아보지 마십시오. 과거로 돌아가지 마십시오. 미래를 향해 가십시오. 이런 사람은 소망이 있습니다.
27-28절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의 앞에 섰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들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치밀음을 보았더라
한 도시가 통째로 멸망하여 사라지는 모습입니다. 그것은 옹기점에서 치밀어 오르는 연기와 같았다고 합니다. 아마 현대식으로 표현한다면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심판은 순식간이라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죽음도 순식간입니다. 돈이 빠져나가는 것, 명예를 잃어버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은 멀리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는 것을 봅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요 불 구경하는 그런 심정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최소한 두 가지를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머무르는 것은 화려한 소돔 성에 머무르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약속의 땅은 고통스러운 땅입니다. 기근이 있고 그렇게 화려하지 않으며 용기가 필요한 곳입니다. 누구도 환영해 주지 않는 곳이며 외롭고 고독한 곳입니다. 옳은 일은 언제나 그렇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그것이 옳기 때문에 묵묵히 합니다.
소돔 성은 화려했고 문화적 도시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안겨 줄것 같은 무지개같은 도시였습니다. 롯과 그의 아내는 그런 곳을 택했습니다.
반면에 아브라함과 사라는 우직하게도 매력 없고 기근이 있으며 갈등이 있고 척박한 그 땅을 선택했습니다. 결과는 무엇입니까 매력 있는 도시는 잿더미가 되어 버립니다.
약속의 땅에 머무는 것이 축복입니다. 인생은 전체를 봐야 합니다. 단면을 보면 실수하기가 쉽습니다. 여러분의 성공이 계속적인 성공이 될 지는 가 봐야 합니다. 지금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단면으로 잘라 놓고 보면 복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자기가 택하신 백성은 의롭게 보상하십니다. 지는 것 같지만 이기고, 안 되는 것 같지만 되고, 망하는 것 같지만 사는 것이 하나님의 길입니다.
넓은 길이라고 다 택하지 마십시오. 좁은 길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택하신 길이라면 그 길을 가십시오. 사람의 명예와 박수 소리가 있는 직장을 갖는 것이 성공은 아닙니다. 돈을 적게 받고 명예는 없다 할 지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이라면 그 곳이 당신의 직장이 되어야 합니다.
소돔 성이 멸망하는 그 현장을 목격한 아브라함은 또 이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롯은 어떻게 되었을까 죽었을까 살았을까 그는 롯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붙들고 간절하게 중보기도 했던 사람입니다. 과연 롯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하는 안타까움, 그리고 기다림과 같은 마음이 롯에게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믿는 사람의 마음이고 아브라함의 마음입니다.

심판 중에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
2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 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생각 하사 그 성을 엎으시는 중에 롯을 내어보내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소식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닫는 것이 두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위기와 심판이라고 다 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망할 때 다 망하는 것 같으나 망하지 않습니다. 피할 길을 주십니다. 축복의 길을 예비해 주십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완전히 초토화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로 아브라함을 생각 하사 그 엎으시는 중에 롯을 끌어 냈다는 것입니다.
29절에서 또 한가지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중보 기도의 능력입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8장에서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하나님의 옷을 꼭 붙듭니다. 마치 야곱이 천사를 붙든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논쟁을 시작합니다. 50명에서 시작한 의인 논쟁은 10명에 이르기까지의 필사적인 기도로 아브라함은 계속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모든 것을 양보했지만 처음에는 수포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29절을 보면 그 기도가 결코 허공을 치는 기도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듣지 않으시는 것 같고 응답이 없어 보이는 것 같은 기도도 하나님은 응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기도를 결코 땅에 흩어 버리시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되고 기억하시는 바 되는 것입니다.
롯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없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를 기억 하사 롯을 구원해 주십니다. 여러분이 이 자리까지 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믿음이 좋아서 이 자리까지 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 당신을 위하여 기도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기적이 일어납니다. 친구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도는 이렇게 능력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무얼 하시고 계실까요. 로마서 8장 34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 하시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당신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는 것을 믿습니다. 성령 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대신 기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7절을 보면 성도를 위하여 성령께서 기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게 된 까닭은 누군가 여러분을 위하여 아브라함처럼 기도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을 때에도 그 영혼을 위해 새벽마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던 까닭에 당신이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메시지는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줍니까 우리가 기도하면 다른 사람이 살고 한 나라가 변하며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30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롯이 소알에 거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 거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하였더니
롯은 아브라함의 기도 덕분에 살아나기는 했지만 롯 자체는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간신히 구원받은 사람이며 창피하게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롯은 소알로 도망갔지만 불안합니다. 그래서 두 딸들과 함께 거처를 옮겨서 하나님이 처음에 도망가라고 했던 그 산으로 갑니다. 롯은 항상 인간적이었고 인간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소알을 선택했던 까닭도 두려움 때문이었고 산으로 도망간 이유도 하나님이 가라고 해서 믿음으로 간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극복하고 이 위기를 피해 보려는 생각이었습니다.
두려움이나 인간적인 생각으로 선택한 것은 가면 갈수록 위기를 만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한 것은 위기를 막습니다.
인간적인 선택을 한 롯은 자기가 상상할 수 없는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자기 딸들과 동침하게 된 사건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선택한 롯의 딸들
31-33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큰딸이 작은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배필될 사람이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 그 밤에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큰딸이 들어가서 그아비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믿음을 잃어버리고 두려움으로 가득한 롯에게는 항상 실수할 구멍이 있었습니다. 위기의 구멍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그 위기의 가능성이 다 막혀집니다. 저는 여러분이 믿음으로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들이 아버지와 동침하게 된 동기가 나쁜 동기는 아닙니다. 자손을 번식시키자는 동기였습니다. 남자들이 없었기 때문에 다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적이 옳다고 수단과 방법을 바꿔도 괜찮은 것은 아닙니다. 목적이 옳으면 방법도 옳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은 더 큰 재앙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들이 그런 발상을 했을까요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했더라면 자손을 낳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방법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전통적인 방법이나 문화적인 방법이나 그들이 늘 살아왔던 소돔과 고모라의 사고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아버지와 동침하는 그런 위험스러운 상황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34-35절을 보십시오.
이튿날에 큰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 이 밤에도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비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합니다.
첫째, 성경은 이런 부끄러운 일을 감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실입니다. 진실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일이 자기 가정의 일이라면 드러내겠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부끄러운 일들을 그냥 드러냅니다.
두 번째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이 딸들에게는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이 없다는 것입니다. 죄가 깊으면 양심이 마비됩니다. 그들은 소돔과 고모라성에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에 그것을 죄라고 느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기준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을 따라가면 바로 심판이 옵니다.
36-37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롯의 두 딸이 아비로 말미암아 잉태하고 큰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 족속의 조상이요 작은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족속의 조상이었더라
두 딸이 임신하여 낳은 아들은 이스라엘 백성과 늘 갈등 관계를 가져온 모압과 암몬 족속의 조상이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노아 시대의 물의 심판이 지나가고 유황과 불의 심판이 지나가도 죄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심판이 오면 죄는 숨죽이듯 죽지만 심판이 지나가면 죄는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그 죄가 오늘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러면 이 무서운 죄의 파도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물의 심판도 불의 심판도 아닙니다. 죄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입니다. 여러분 안에 흐르고 있는 죄의 피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채찍이 아니오, 심판도 아니오,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의 보혈을 의지하십시오. 그 때부터 이 무서운 죄의 파도에서부터 여러분은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 보혈의 피로
우리 속에 도도히 흐르고 있는
이 죄악을 주님께서 막아 주시고
주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인쳐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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