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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한 지체로 아름답게 성장하자! (삼하 07:1-14, 엡 02:11-22, 막 06: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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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광림교회 문제로 교계 안팎이 시끄럽습니다. 김선도 목사님이 그 아들에게 담임목사직을 승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세습행위는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교회 안에서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가뜩이나 교회와 목사에 대해서 헐뜯기를 좋아하는 세상 사람들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공격의 화살을 마구 쏘아대고 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광림교회 일부 장로와 부목사님들이 방어하고 나섰습니다. 특히 장 장로님이라는 분은 기독교타임즈에 담임목사직 세습의 타당성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분들은 그런 논리가 전혀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부족한 제가 보기에도 장 장로님의 논리는 조금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교회는 어느 목사의 개인 소유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어느 장로의 것도 될 수 없습니다. 그런고로, 목사나 장로가 어느 한 교회를 좌지우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성도들의 것이라 할 수 있나요 그래서, 다수 성도들이 찬성하면 그대로 이끌어가야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목사나 장로의 것도 성도들의 것도 아닙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께서 피 값을 주고 세우신 교회입니다(행20:28). 그런고로, 교회는 주의 뜻에 따라 운영되어야 합니다. 담임목사직을 세습하는 것도 주의 뜻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들이니까 안 된다고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합니다.
다만, 그 동기와 방법, 목적이 순수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께서 보실 때에 합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세습 형태들을 보면 인간적인 냄새가 물신 풍기고 있습니다. 차라리 북한처럼 노골적으로 ‘대(代)를 이어 충성하련다’ 하거나, ‘내가 성장시킨 교회를 타인에게 주기가 아까워 아들에게 물려준다’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좋을 듯 싶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교회를 진정 어떤 식으로 섬기고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까’ 하고, 참으로 신중하고도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머지않아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서구의 교회들처럼 텅텅 비고 마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저를 비롯한 목사들과 교회 직분자들은 ‘내 교회는 내 맘대로 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항상 우리는 주의 뜻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감정에 치우치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교회 일을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더군다나, ‘내가 반대하는 일은 결단코 할 수 없다’는 태도는, 죽을 때까지 주의 겸손을 배워 살아야 할 우리 믿는 자가 취할 자세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혹 무슨 잘못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책임을 크게 따져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일은 많은 사람에게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엄히 물으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일은 개인적인 감정이나 유익에 따라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오랜 기도와 신앙 양심에 따라 결정해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2장에서 교회의 기원과 주체, 그리고 구성과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교회의 기초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입니다. 그 기초 위에 교회는 세워졌고, 그 머릿돌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 교회를 이루는 한 부분이 되어 아름답게 점점 성장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엡2:21).
‘폴 틸리히’라고 하는 유명한 신학자는 말하기를 “나는 교회를 떠나서는 기독교를 생각할 수 없다. 비록 교회에 문제가 많다고 하더라도, 기독교가 교회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교회를 교회답게 하려면, 우리 모두가 개인적인 감정이나 목적을 버리고 주님의 거룩한 뜻만을 세워가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여행 중에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통순경에게 교회를 좀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순경은 멀리 보이는 한 교회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가까운 곳에도 교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순경에게 “왜 가까운 곳에도 교회가 있는데, 저 먼데 있는 교회를 가르쳐 주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순경은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이 근처에 있는 교회들보다도 저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훨씬 기쁘고 즐겁게 보이더군요. 나는 비록 불신자이지만, 그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이고 참된 교회인 것 같아서 소개합니다”라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비쳐지고 있을까요 아니, 우리 자신은 우리의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진정 주님께서 기뻐하실 아름다운 교회라고 생각하십니까 인간 그 아무개가 주장하는 교회가 아니라, 예수께서 그 주인이 되시는 교회라고 생각하시는지요

1.만일 주님의 교회다운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다면, 그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로 계획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만 좋은 집에서 편안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 미안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적들을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와주셨을 뿐만 아니라, 항상 그 은혜로 살아가고 있건만, 하나님의 법궤는 아직도 천막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모실 성전을 짓기로 맘먹고 나단 선지자와 상의했던 것입니다.
이런 다윗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자신의 일신이 편안해지면 다른 사람의 형편을 돌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지위가 높아지면 교만에 빠져서 하나님까지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이 왕이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적들을 물리칠 수 있게 된 것도 하나님의 도우심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께서 복을 베풀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다윗은 물론이요, 그 아들과 후손들까지, 그리고 그가 다스리는 백성들에게도 복을 베푸셨습니다. 다윗이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면서 성전 짓기를 도모했을 때,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돌아보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위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께서 그 머리가 되시는 교회의 진정한 발전과 부흥을 도모해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가정과 생업을 돌보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 후손과 그의 나라를 돌보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이런 믿음이 부족합니다. 교회에서는 자신의 권리만 주장할 뿐, 교회의 한 부분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는 열성이 희박합니다. 그저 내 일신만 편안하면 그뿐이라는 세속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①다시 말하면, 주님의 보호의 손길에서 벗어나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돌보심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는 주의 백성들이 한 몸을 이룬 공동체입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너희도 성령에 의해 주와 연합하고 서로 연합하여 하나님 집의 한 부분을 이룬다(엡2:22)』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교회의 한 부분으로서 서로 연합하고 하나되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윗처럼 주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주의 보호의 손길에서 벗어나 산다는 말은, 자기 멋대로 사는 것을 뜻합니다. 목자 되시는 주의 인도함을 받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주의 시야에서 벗어나게 되고, 나중엔 이리나 늑대에게 물려죽게 마련입니다.
②그런 사람들이 교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할 리가 만무합니다.
육신의 병자들이 모여드는 곳이 병원이라면, 영적 병자들이 모여드는 곳은 교회입니다. 그런고로, 교회는 치료받아야 할 죄인들로 구성된 단체입니다. 그래도, 먼저 치료받기 시작한 사람들이 좀 건강해졌다고 해서 그들에게 일정한 직책을 주고, 나중에 온 병자들을 돌보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조직에서 중추 역할을 감당해야 할 이런 책임자들이 마비 증세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들도 계속 치료받아야 하는데, 완전히 고침 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치료받기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의사를 치료해야겠다고 억지 주장을 펼 때도 있습니다. 물론 의사들도 병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의사들은 주님께서만 고칠 자격이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자신의 형편과 신분을 망각하고 그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③그런 사람은 결코 주님 마음에 들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무슨 대수냐고 한다면 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은 하나님 마음에 들도록 살아야 다윗이 누렸던 그 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쯤은 다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런 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개인이 교회의 머리가 되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신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주인 되시는 예수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한 지체가 되고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한 부분이 되어, 주어진 본분을 다하고자 애써야 합니다.
만일 주님의 지체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거나, 교회의 머리가 되려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지 못할 경우, 교회 안에서 다툼의 원인이 되거나 부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늘 불만과 불평을 갖게 되어 기쁨도 없고 희망도 없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는, 저를 돕는 천사들의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천사는 교회 안에서 화평을 도모하고 하나되게 하며 상처 입은 영혼을 위로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런 천사 역할을 저와 여러분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천사의 반대되는 역할을 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사탄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마음에 들게끔 살려면, 우리 모두가 천사가 되어야 합니다. 나누는 일보다는 하나되는 일에 힘써야 하고, 다툼을 일으키기보다는 화목케 하는 일에 힘써야 하고, 불평과 불만을 말하기보다는 칭찬과 격려하는 일에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이 원하는

2.아름다운 교회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물론,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려면 많은 아픔을 겪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희생을 요구하기 전, 내가 먼저 희생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자존심 상하는 것도 이겨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기도해야 합니다. 감정이나 나의 이익을 멀리하면서 주의 뜻을 따르려면, 꼭 기도하는 일이 앞서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말을 먼저 하게 되면 다툼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우리는 성전의 한 부분이 되어 아름답게 커가면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다(엡2:21)』고 했습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도 성전의 한 부분이 되어 아름답게 성장하려면, 그래서 우리 모두가 원하는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려면,
①우리의 지난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전에는 하나님도 모르고 희망도 없는, 그야말로 멸망할 존재였다고, 바울은 에베소서 2장 12절에서 밝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의 공로로 말미암아 의인의 반열에 서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저버리게 되면, 우리 모두가 다시금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내 공로를 내세우거나 자랑을 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공로와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고, 우리는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드러내고 찬양해야 합니다. 그 은혜를 받을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모르고 자신의 허물도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춰내는 법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다른 사람의 허물을 따지기보다는 덮어주고 이해해야 합니다. 어느 교수에 의하면, 교회와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대개 그 영혼이 상처 입은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말썽부리는 교인을 보면, 그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병든 영혼의 치유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이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주게 될 때에, 우리는 모두 건강한 교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상대방을 허물을 들춰내는 병든 교인이 아니라, 그 죄와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해줄 수 있는 건강한 교인이 될 때에
②우리는 모두 주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란, 주님의 지체 역할을 온전하게 잘 감당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자기 혼자서 아무리 잘해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손과 발과 눈과 귀를 비롯한 모든 지체가 하나가 되어, 머리가 되시는 주님의 지시대로 움직일 때에 무슨 일이든지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눈은 앞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 발이 다른 곳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떤 시골의 한 청년이, 교회에 나가서 예배드리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거부하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가 내세우는 것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예배를 잘 드릴 수 있거니와, 신앙생활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겨울 저녁, 목사가 그 고집 센 청년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 집에는 벽난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그 앞에 앉아서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회 출석 문제를 화제에 올리는 것 은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목사가 벽난로 옆에 있던 부젓가락을 집어 불 속에서 타고 있는 석탄 덩어리 하나를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난로 밖에 꺼내놓았습니다. 그러자, 그 석탄 불은 이내 꺼져버렸습니다. 그러나, 벽난로 속에 있는 석탄 덩어리들은 여전히 붉은빛을 내며 활활 타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청년은 “목사님, 이번 주일부터 교회 예배에 꼭 참석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란 다른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겸손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자기 주장이나 고집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무엇일까 하고, 늘 말씀을 보고 기도하는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믿음을 가진 성도란 기도하면서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다른 성도들과 연합하여 아름다운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③그렇게 될 때에, 하나님의 돌보심과 은혜 안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후손들과 이웃 사람들에게도 덕을 끼치게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주님의 한 지체로서 그 역할을 잘 감당하는 일이 참 중요합니다. 우리는 나 홀로 설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주님을 머리로 해서 우리 모두가 연합하여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자신은 물론이요 후손들과 이웃들에게도 복을 나눠주는 귀한 인생들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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