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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쁘게 의를 행하여 주님 맞을 준비를 하자 (사 64:1-9, 막 13:32-37, 고전 01:3-9)

첨부 1


인생을 가리켜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어떤 이는 ‘고해(苦海)’라고 말했습니다. 욥기5:7말씀을 보면 ‘인생은 고난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인생은 허무한 존재다’라고 했습니다. 시편89:47에서, 시인은 ‘주께서 모든 인생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라고 노래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인생은 나그네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우리는 하늘에 고향을 둔 이 땅의 나그네들이다(2:11)’라고 했습니다.
그밖에도, 사람들은 제각기 나름대로 인생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인생은 기다림이다’라 풀이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뭔가 좋은 일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서 오늘과 내일, 그리고 영원한 미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혼의 젊은이들은 좋은 짝이 나타나기를 기다릴 것이고, 경제 사정이 어려운 분들은 그 형편이 나아질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는 공통적인 기다림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기다림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에는 ‘우리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상으로 받게 된다(벧전5:4)’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천년 동안 왕 노릇을 하게 된다(계20:6)’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이 있어서, 우리는 그 집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고후5:1)’고 했으니, 어찌 그 날이 기다려지지 않겠습니까 그뿐만 아닙니다. 그 날이 되어 주님과 함께 천국에 들어가면, 눈물과 고통이 없고 서로 헤어지거나 나뉘는 일도 없이, 오직 기쁨과 평화가 가득한 세상에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밧모섬’에 있는 요한 사도에게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계22:20)』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요한 사도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응답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 살기가 힘들거나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주의 오심을 기다리게 됩니다.
‘사랑의 원자탄’ 주인공이신 손양원 목사님은 일제의 쇠사슬에서 신음하던 중에 이런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 오마 하신 예수님, 오-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우리는 이 노래에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손양원 목사님의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토록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지만, 그러나 그 날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주님은 생전에 말씀하시기를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막13:32)』고 하셨습니다. 다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으니,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께서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주님이 분부하신 말씀을 열심히 지켜 살아야 합니다. 고전1:7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그분의 뜻을 이루는 데 필요한 모든 은총의 선물과 능력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주께서 일러주신 진리 말씀을 실천하기 위하여 힘써야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 맞을 준비를 소홀히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서 ‘설마, 금방 오시려나 다음에 오시겠지!’하면서 게으름을 피우거나 잠이나 자고 있다고 합시다. 그 때에 갑자기 주께서 오신다면,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이들은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문밖에서 땅을 치며 통곡을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구원해달라고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엄청난 일을 하셨다(64:4)’고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쁘게 의를 행하고 주의 명령대로 순종하며 사는 사람을 구원해 주신다(5)’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주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말씀 따라 의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모든 시대 상황을 볼 때에 마지막 때가 가깝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과연 얼마나 주님 맞을 준비를 성실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까
어느 신학교에서 한 젊은이가 교수에게 찾아가 질문했습니다. “교수님, 사람이 죽기 얼마 전쯤이면 내세를 위해 준비하는 것이 좋을까요” “그야 몇 시간의 여유만 있어도 충분하겠지” 교수는 쉬운 듯이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젊은이는 “그거 참 좋군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속으로 자기 앞에 놓여진 수십 년의 세월을 만끽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교수실을 막 나가려 할 때 그 교수가 젊은이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언제쯤 죽을 것인지 알고 있나” “그거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 젊은이는 마음내키지 않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이에,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준비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모든 사람들은 자신도 언젠가는 죽게 되리라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언제 죽게 될는지, 그 때와 그 시간을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을 따름입니다. 물론 그 기대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속셈을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를 알려주시지 않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우리는 내일이라도 당장 주님께서 오시면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항상 만반 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성도들이
①‘항상 깨어 있어라’는 경고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때가 오면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은 다시 살아나서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가고, 악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은 다시 살아나서 심판을 받게 되리라(요5:29)』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계20:13의 말씀을 보면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 맞을 준비를 하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기를 ‘우리는 불의와 죄악으로 더러워졌다(64:6)’고 하면서, ‘죄악에 찌든 우리는 심판의 폭풍에 휘말리어 사라지고 있다’고 멸망을 앞둔 동족을 바라보면서 한탄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돌아와 구원해달라고 호소하는 이도 없고, 스스로 뉘우치면서 주님께 매달리는 이도 없다(7)’고 통탄스러운 듯이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떻습니까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이사야 선지자가 다시 나타난다면 뭐라고 말씀하겠습니까
②주님 맞을 준비를 하지 않고 정신 없이 잠만 자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이사야 선지자는 과연 무슨 말을 할까요
주님 맞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씀하겠습니까 아니면, 한숨만 푹푹 쉬고 있을까요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외면한 채, 육신의 안일과 자신의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한 사람들을 보고, 그는 어떻게 말씀하겠습니까 물론 그런 사람들도 옛날 아담과 하와처럼 변명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처럼, 자신의 책임을 성실하게 감당하지 않고 이런 핑계 저런 이유로 주님 맞을 준비를 소홀히 했던 사람들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날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어두운 곳에서 땅을 치고 통곡하면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한 소년이 자동차에 치였습니다. 운전사는 피 흘리는 소년을 놔둔 채 뺑소니쳤습니다. 다행히 뺑소니 차량번호를 본 사람이 있어서, 그가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경찰은 그 차량번호를 추적하여 그 날로 범인을 검거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범인은 피해자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니까, 운전 기사는 피해자가 자기 아들인 줄도 모르고 사고를 낸 후 뺑소니쳤던 것입니다.
만일 오늘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일을 회피하거나 자신의 책임을 외면하고 도망쳤다고 합시다. 그렇게 되면, 심판 날에 이르렀을 때에야 그런 도피가 우리를 멸망의 길로 이끌고 간 올무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즉, 양심은 무엇이 옳은 일인지 잘 알고 있건만, 우리가 그 양심을 버리고 도망칠 경우, 그 비양심이 우리를 심판하는 도끼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주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까

2.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예수님은 우리가 진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해주셨다(고전1:5)’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도의 사명이 무엇인지 잘 몰라서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노라고 핑계 댈 수 없을 것입니다. 주일이면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몰라서 불참하는 게 아닙니다. 심판 날이 가깝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자기 형편과 의지에 따라 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주께서 다시 오실 날이 가깝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어떤 일보다 우선적으로 주님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임을 깨달아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이 ‘깨어 있는 자’라 할 수 있습니다.
①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요행수를 바라면 안 됩니다. 우리가 마침 깨어 있을 때에 주님이 오시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유심히 바라보듯이, 하나님은 그가 일러주신 대로 바르게살기를 기대하면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만 면하려는 소극적인 생각을 버리고, 주의 뜻대로 살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합니다. 부모가 시키니까 억지로 행하는 자녀보다는, 본인이 스스로 알아서 하는 자녀가, 부모 된 입장에서 볼 때에 훨씬 더 기특하고 사랑스러울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성도 된 본분인지를 스스로 깨달아서 ‘늘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스럽게 여기실 것입니다.
②‘깨어 있는 삶’이란, 주님의 뜻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늘 깨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요컨대, 주의 뜻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형편과 사정에 따라 주의 뜻을 거역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와 허물이 없는 자로 바르게 설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을 져주신다’고 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내 뜻과 감정에 따라 살지 아니하고 주님의 뜻을 따를 때에,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복을 베풀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오늘을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불안을 느끼게 되면, 오늘 내게 주어진 인생을 값지게 살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산다는 것은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잠을 자면서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는 주님 맞을 자격이 없습니다. 편안히 예수 믿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마치 감나무 밑에 서 있다가 감이 저절로 떨어져 입안에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맞을 준비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 살아야 합니다.
③그럴 때에, 우리는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천국에 들어가게 되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그 날이 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면서 주님 맞을 준비를 부지런히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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