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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심의 영성 (요 0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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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서 삶의 전환을 회심(回心:히 shub)이라 한다. 이는 본질적으로 돌아오다 혹은 돌이키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 사람의 회심은 위대한 역사를 이루기도 하며, 새로운 전환이 되어질 수 있다. 이러한 회심은 바로 인생의 암흑기에 주어진다. 그러나 이는 병리학적인 무엇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 상황에 대한 고백이며, 자신의 정서와 인식을 새롭게 전환하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 야곱은 얍복나루터에서 자기 중심적 삶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차원으로 전환되었고(창세32:22-32),사울이란 이름으로 그리스도인을 박해하였던 그가 바울로 변화됨으로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다.(사도9장) 또한 웨슬리가 회심함으로 감리교를 태동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클리블랜드 역시 삶의 변화가 일어나 대통령이 되기까지 하였다. 자신의 삶의 전환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이는 자신의 구원뿐 만 아니라 세계를 변혁시키는 힘이 된다. 우리는 회심의 영성을 통해 자신을 변혁시키는 존재가 되며,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는 삶을 실천해야 한다. (누가3:10-14) 회심의 차원은 자신의 왜곡된 내적 상황에서 출발한다. 본문에 보면 니고데모의 정신적 상황을 예수의 대화 속에서 반영되어 나타난다. 1) 밤 이란 시간적 상황은 단순히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닌 문학적인 상징을 가진 단어이다. 이는 인생의 어두움이며, 야곱의 밤이었다. 인간적 한계상황 속에서 새로운 사건을 체험하고자 자신의 내면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이다. 아버지의 품을 떠난 탕자에게 주어진 고난과 배고픔의 삶은 회심을 위한 밤 이다.(누가15:11-32) 2) 다시 라는 단어의 이중적 의미가 반영되는데 이는 두세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그리이스어 아노쎈(anothen)은 하늘로부터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예수게서는 하늘로 부터 나는 것을 말하였고, 니고데모는 다시 로 이해한 것 이었다. 즉 이해의 상충은 본질적으로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하나님 나라 이다. 이 나라의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다.(마태 6:33) 3) 니고데모는 전형적인 유대인으로 언급된다. 그는 바리새파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옛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이다. 그리스도인은 썩어져 가는 구습에서 벗어나야 한다.(에베4:22-24) 새로운 질서를 추구하는 영적인 존재이며, 새 시대의 개척자이다.

회심의 영성은 1) 하나님 나라를 향한 영성이다. 회심의 영성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투쟁에 자신을 헌신하는 길이다. 그 길은 예수께서 걸어가신 길이며(요한 14:6), 의롭고 참된 길(계시15:3)이다. 회심은 영어로 convert인데 이는-과 더불어 돌아서다 라는 합성어이다. 인생의 전환은 바로 그리스도와 더불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와 함게하시는 분 그분의 이름은 임마누엘(마태1:23)이시다. 2) 성령에 사로 잡힌 영성이다.

성령으로 난자는 바로 하나님의 영적인 감동 속에서 자신을 변혁시킨다.

곧 하나님의 자녀이다. (로마8:14) 그는 성령을 위해 심음으로 영생을 거두는 자가 되는 것이다.(갈라6:8,) 예전의 번뇌에서 벗어나 밝음과 인내 그리고 빛된 삶을 추구한다.(골로1:9-13) 3) 자유의 영성이다. 더이상 회심자를 비난할 수 없다. 그는 주님 안에서 바람처럼 자유롭다. 바람 (프뉴마;pneuma)은 동시에 영 (靈)으로도 해석되는 이중적 의미를 가진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누구도 억압할 수 없다. 주님에 대한 사랑에서 누구도 끊을 수없다. 바울은 그 자유를 사랑을 위한 자유 라고 생각하였다. (갈라5:13,로마8:35) 이재 존재의 가려움과 한계상황을 넘어 그 나라를 위한 회심을 이루어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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