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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장 강해8 (고전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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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영적인 사랑에 대해 증거하면서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라는 말씀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어서 오늘은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에 관한 말씀을 증거하 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온전히 양식삼아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범사에 성내지 아니하는 영적인 사랑을 베푸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유익'의 사전적인 의미는 이익 또는 이로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 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다고 하니까 자기를 위해서는 일용할 양식도 구 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는 자기의 몸도 돌보지 말 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려고 무리한 금식을 한다거나 쉴새없이 충성만 한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뜻을 이 루기도 전에 이미 몸이 상하고 말 것입니다. 사람이 완전한 부활체의 몸을 입기 전에는 육의 질서를 지킨다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지요.

물론 사람이육신의 한계에 부딪힐 만큼 분에 넘치게 충성할 수만 있 다면 이는 참으로 복된 중심이지만 그러한 충성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마만한 능력도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영으로 들 어가면 영육간에 강건함이 오기 때문에 그만큼 육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으며, 능력의 차원으로 들어간 만큼 점점 육의 한계가 없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영혼이 잘된 만큼 영적인 육도 온전해지니 다 른 사람이 하기 힘든 일도 쉽게 해 낼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능력 이 안 되는데도 남들이 그렇게 하면 좋다니까 무리하게 따라 행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이 능력을 받기까지는 절제할 것은 절제하고, 아낄 것은 아끼며, 진리 안에 합당한 자기 유익도 절충해 나가야 자기 보존이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충성이라는 것도 쉼이 있는 충성이 되어야만 중간중간에 활력을 되찾아 지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힘있게 나갈 수 있는 법입니다. 무조 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절제한 충성을 하는 것이 능수가 아니라 보 다 더 온전한 충성을 하기 위해 적절한 자기 보존을 하는 것은 더욱 바 람직한 일이지요.

그러므로 자기 보존을 위해 필요에 따라 먹어 주고 채워 주며 쉬어 주 는 것까지 자기 유익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더 온전한 충성을 위해 재충 전할 줄도 아는 지혜를 터득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또한 자기 유익을 구하지 말라는 말씀은 진리의 말씀도 양보하고 기도하는 것이나 충성하는 것도 절제하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 다. 혹여 금식하고 기도하며 충성하는 것을 절제하려다가 그 뜨거움마 저 식어진다면 이는 오히려 어릭석은 일이지요.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갈 줄 알면서도 오히려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쉬지 않고 기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 나님의 뜻에 위배된다면 왕의 명령일지라도 좇지 않아야 하며, 하나님 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 유익한 일이라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기본적으 로 구할 것은 구하고 지킬 것은 지켜 나가야 합니다. 즉 개인적인 유익 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면 얼마든지 필요한 것이며, 다만 상대방을 해롭게 하면서까지 자기의 유익을 구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말씀에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했다고 해서 한밤중 에 크게 부르짖어 기도하여 이웃 사람들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면 이는 무례한 일이요,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일이 됩니다. 진리 안에서의 선한 욕심이나 유익은 발전시켜 나갈수록 좋은 일이겠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 리지 않고 행함으로 이웃에게 피해를 주거나 실례를 범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서 내 주변과 내 이 웃부터 살필 줄 알아야 하겠고, 위로는 하나님과 교회, 하나님의 종, 믿 음의 형제, 내 부모, 내 남편, 내 아내부터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씀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항상 자기 자신을 맨 마지막에 두고 행하는 사람이 바로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오직 영적인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35을 보면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말씀합니다. 이처 럼 영적인 사랑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셨던 우리 주 님의 미쁘신 마음처럼 내가 먼저 썩어지는 것이요, 내가 먼저 베풀고 섬기며 희생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은 취할 줄 모르는 바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 믿음의 형제에 대해, 그리고 이웃에 대해 넘쳐나는 영적인 사랑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 을 돌아보아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 욕심이 없는 합한 중심이 되기에 부 족됨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2.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성낸다는 것은 노여움을 말하는데, 흔히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 를 입거나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에 쉽게 분노를 터뜨립니다. 사 람이 흥분하여 감정이 복받쳐 오르면 금세 눈이 붉어지기도 하고, 혈압 이 오르기도 하며, 얼굴이 굳어지거나 일그러지기도 하고, 몸을 부르르 떨기도 하며, 욕설이나 큰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다 성내 는 것에 속하지요.

그런데 우리가 분노하여 성내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없고, 영 적인 성장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성 내려는 감정이 생기면 성내기 전에 일단 시간적인 여유를 좀 갖는 것이 좋습니다.왜냐하면 다음날 그 일을 조용히 생각해 본다거나 시간이 지 나 분이 다 가라앉은 후에 그 일을 다시 떠올려 보면 오히려 부끄러울 때가 많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화를 내거나 성내는 일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마음이 있는 이상 영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앞으로 후회할 일 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도 온전히 벗어 버려야 하겠습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 안에 성전삼고 계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보시 며 그 마음의 생각과 뜻까지도 꿰뚫어 보신다는 사실을 안다면 내 생각 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혈기를 낼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정 녕히 하나님께서 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마음 중심에서 믿는다면 우리가 가정이나 일터, 사업터, 학교, 어디에 있든 동일한 모습으로 지 낼 것이며 화를 내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입니다.

잠언 14:17을 보면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궤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했고, 잠언 22:24-25에는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 행위를 본받아서 네 영혼을 올무에 빠질까 두려움이니라 말씀합니다. 여기에 서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고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라고 하신 이 유는 그런 사람과 친구로 지내며 동행하면 자신도 은연중에 닮아 가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화를 내고 혈기를 부리며 성내는 것은 우리의 뼈를 썩게 하는 악이요, 우리 하나님 보시기에도 참으로 민망한 모습입니다. 그런 데 이런 악은 단순히 내 의지만으로 버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 리가 살아 오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과정을 통해 자기를 만들어 온 본 성 속에는 진리와 비진리가 함께 섞여 있는데, 이 본성 가운데 내 자신 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곧 양심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이 양심 을 통해 우리가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 편에서의 선과 일치되 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선하게 산 것 같고, 비진리는 다 버린 것 같은데 왜 아직도 혈 기가 남아 있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지는 것일까 이렇게 의아해하 시는 분들은 이러한 자신의 본성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마음의 의를 계속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본성은 진리의 빛이 비춰지기까지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욥도 하나 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기 본성 속에 있는 악을 알지 못했으나 하나님을 만남으로 인해 모든 것을 통회자복하며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었고, 비 로소 본성 속에 잠재한 악이 빠져 나가니 하나님께서 갑절의 축복을 주 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의지만으로 마음의 악을 온전히 버릴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해 나가야 합니다. 즉 나의 노력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 속에 나날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지요.

모세는 온 집에 충성했고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했기 때문 에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소한 일에 성내는 옹졸한 사람이 아니라 항상 선을 사모하고 선한 생각과 선한 행 실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과 소망을 안겨주는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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