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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권념하사 (창 0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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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줄 때 행복을 느낍니다. 사람들 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기억시키려 애씁니다. 현대는 자기를 선전하는 사회라고도 말합니다. 그래서 명함 한 장에 자신이 소속 한 단체와 직위를 다 적어 놓습니다. 그러한 의식 속에는 자기 존재를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한국 사람은 심지어 낙서에도 자신의 이름을 남깁니다. 우리는 이름 난 산의 큰 바위마다 이름을 새겨 놓은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 버릇은 해외에 나가서도 여전한 걸 보았습니다. 또한 남이 자신 의 이름을 잘못 쓰거나 부르면 난리가 납니다. 그만큼 자신을 알 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는 증거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기를 간절히 열망합니다. 그렇다면 그 누구보다 중요한 하나님께서 나를 아실까에 대해서도 신경을 씁니까?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는 정 도와 비교도 안 되게 우리를 잘 아시고 기억하십니다. 그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음이로다(시 105:42).

또한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5).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 참된 그리 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이 우리를 아시고 기억하십니다. 이 사실이 얼 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아십니까? 본문 1절 말씀에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권념하사라고되어 있습니다. 권념(眷念)이란 단어는 보살피어 생각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느 날 갑자기 노아를 생각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노아는 언제나 하나님의 기억 속에 있던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그를 기억 하심으로 세 가지 놀라운 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환란 중에 보호하심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위험한 형편에 빠집니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가는 위기의 순간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특별한 보호를 입습니다. 험악한 세상을 사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하나님 의 특별한 보호가 있습니다. 이사야서 43장 1-3절 말씀을 보 십시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이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 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 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우리가 이 약속을 믿는다면 환란 중에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마치 노아가 홍수 때 방주를 타고 안전하 게 그 환란을 이겨 냈던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도 이 험악한 세 상에서 걱정 없이 살 수 있습니다. 당당하고 힘 있게 어려움을 극복하며 생활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은 전혀 아무 어려움도 당하지 않고 산다 는 뜻은 아닙니다. 아프리카 선교사였던 리빙스턴의 전기를 읽어보 면, 그가 아주 용기 있던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그는 위험이 와도 도무지 겁을 먹지 않는 아주 당당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친구가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는 일이 무섭거나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리빙스턴은 솔직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내게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이 므로 나의 유익을 위한 것이네. 또한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 달 려 있네. 내가 죽는다면 그때가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때이고 본향으로 돌아가는 때이지. 저 하늘나라에 가는 순간까지 하나님은 나를 보호하실 줄 믿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善)을 이루느니라(롬 8:28)는 말씀 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떤 고난이나 역경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노아를 기억하시는 하나님이 당신도 기억하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복된 미래를 예비하심

사람들은 누구나 미래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일을 모 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내 일생을 책임져 주실 분임을 믿는다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분의 인도하심에 우리 를 맡기기만 하면 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노아를 방주에서 나오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방 주에서 노아와 그 식구들과 짐승들이 나오기 전에 그들이 살 만한 환경을 조성하십니다. 우선 땅 위에 가득 찼던 물을 다 마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 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9:1)고 말씀하 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죄 때문에 그 세대를 심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지는 심판이 아니라 복 주심이었 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의도는 저주가 아닙니다. 복을 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도 세상 모든 만물을 다 지으신 뒤에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모든 것이 완비된 에덴 동산에 인간을 살 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시고 복을 주기 원하는 분입니다. 날마다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키십니다. 이런 분이 우 리 하나님이시라면, 미래에 대해 어떤 두려움도 가질 필요가 없습 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심

하나님이 노아를 알고 기억하셨기 때문에 환난 중에 돌보아주셨습니 다. 그리고 복된 미래를 준비하셨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 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갈 수 있 는 은혜를 내리셨습니다. 8장 20절 말씀을 보십시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노아는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단을 쌓았습니다. 홍수가 나서 지면에 있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심판을 받았는데, 오직 노아 자신 과 가족들만 살아 남았음을 볼 때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노 아는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 단은 고백의 제단이 고 찬양의 제단입니다. 노아의 삶은 이 제단에서 새롭게 시작됩니 다.

교회와 주일 예배가 필요한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지나간 한 주간 의 삶을 돌이켜보며 감사와 찬양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은 극한 상황에 닥치면 하나님을 찾지만 고난을 극복하고 나 면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단을 쌓았 다는 것은 환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겠다는 헌 신의 모습입니다. 나를 보호하시고 복 내려 주신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우리는 주일날만 예배를 드려서는 안 됩니다. 가정에는 가정 제단 이 필요합니다. 가족들과 한 자리에 모여 앉아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개인으로도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조용히 혼자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과 긴밀한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는 순간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과 찬양과 감사를 드려야 합니 다. 하나님과 나누는 교제가 복의 근원이 됩니다.

예수께서는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7:21 참조). 진정으로 성령으로 거듭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과 교제를 나눌 때, 하나님께서 그를 마치 아브라함을 기억하셨던 것처럼 기억하고 복 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이러한 하나님의 축 복을 누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에 내린 최대의 저주는 네가 다시 기억되지 못할 것이니 (겔 21:32)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 께 원컨대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권고하사(렘 15:15)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복 주심을 기대하고 그분과 교제 나누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잊지 않고 기억하시기를 간구하며 주님 말씀대로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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