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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탕자의 형 (눅 15:2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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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탕자의 비유의 결론 부분 입니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 죄인들을 향하여 얼마나 불친절하고 못된 감정을 갖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이것이 탕자의 형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교훈입니다.

그 형은 아우가 돌아와서 아버지가 기뻐하는 것에 대하여 트집을 잡고,분노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 동생이 집에 돌아와 못되고 악한 행동을 버렸을 때 넘치는 기쁨을 나누는데 참여할 수 없었던 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마음 아픈 장면이지만 매우 교훈적인 것입니다.

본문에서의 형은 유대인을 비유한 것입니다.

동시에 형은 먼저 믿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동생격인 이방인들이 그들의 특권에 참여한다는 생각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부터 이방인을 제외 시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 그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상속자와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끝내 이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점에서 볼 때 그들은 탕자의 비유에서 형의 역할을 그대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 안에서 이같은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이 말씀에 나타나는 형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주님의 식탁에 죄인들이 참여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죄인들을 영접하고,그들과 더불어 잡수시는 것을 반대 했습니다.

세리와 창기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다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이 형은 오늘날 교회 안의 대부분의 계층에 대한 정확한 묘사입니 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되는데,많은 사람들이 서로 시기하고 질투함 으로 모든 사람을 포용 하시는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먼저 권사되고, 장로된 분들이 새롭게 임직할 분들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타교회에서 장로 혹은 권사로 봉직하다 오신분들이 일하는 것을 싫어해서 그들에게 시무의 길을 열어 주지 않습니다.

또 교회의 각분야에서 오랫동안 여러 봉사를 하신 분들이 새롭게 열심을 내는 이들을 시기해서 일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이들이 바로 본문에 나오는 형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조가 우리의 마음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되겠 습니다.

어떤 한 영혼이 회개하면 그것을 보는 모든 자들에게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버지의 말씀을 유의 하십시다.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 하니라> 이 말씀의 일차적인 대상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올바르다면 주님께서 죄인들과 창기들을 영접하실 때 결코 불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가망 없는 부랑자들이 돌아온 것을 기뻐하고,감사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자기 의의 틀에 갇혀 즐거워해야 할 때 오히려 트집을 잡고 불평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이 교훈은 우리 모두가 마음에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죄인들이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 하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서 새로운 인물들이 열심을 내는것을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나중에 오신분들이 참여하도록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된 자들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힘을 더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몰인정과 자만심이 자기를 망치는 것을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맏아들의 몰인정과 자만심,언짢음은 세리와 죄인들에게 호의를 보이시던 주님을 시비하던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마음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 경천 교회 뿐 아니라, 모든 교회는 이와같이 <풍류와 춤추는 소리>가 나는 집이 되어야 합니다.

돌아온 자들과 함께 기뻐하는 교회,나중된 자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격려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경건한 체 하면서 시기하는 사람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본문은 맏아들이 노하였다고 합니다.

<저가 노하여>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맏아들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의를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여러해 섬겨.......명을 어김이 없거늘> 그가 여러해 아버지를 섬긴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 역시 주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는 죄인입니다.

<염소새끼라도 주어....즐기게 하신 일이 없거늘> 그러나 이 맏아들은 불평하는 자식입니다.

그 마음은 악독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일만 충실히 하면 됩니다.

내가 할 일도 다 하지 못하면서 남을 시기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 아들이 창기와 함께> 돌아온 동생을 비웃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 동생이 한 일에 대하여 사실을 말하는지도 모르지만 모욕적인 언사로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지 마십시요.

다른 이들에 대하여 우리는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 만이 판단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이 이야기는 15장의 서두에 나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께서 세리와 창기를 영접하는 것을 두고,보였던 태도와 조금도 틀리지 않습니다.

31절은 아버지에 대하여 맏아들이 전혀 불평할 권리가 없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얘,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것이 다 네것이로되>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으로 감사하고,만족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중된 자와 더불어 기뻐해야 합니다.

그들을 형제애로 맞아 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아들의 자격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민족적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구원받는 것을 시기합니다.

이 말씀은 경건한 삶을 산다고 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자기 의를 내세워 죄인들을 영접하시는 주님에 대하여 불평하는 것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 먼저 된 자들이, 나중된 자들에 대하여 시기하는 것을 경고하고 지적 하시는 말씀 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이여! 우리 교회는 언제나 돌아온 자들과 더불어 기뻐하고,즐거워하며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동생을 용납하고 사랑하는 교회는 성장합니다.

그런 교회가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서로 시기하지 마십시다.

오늘 말씀을 듣는 여러분이여! 언제나 서로 격려하고,덕을 세우며,용납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new 사랑하는 아버지!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으로 감사하고, 용납된 것으로 기뻐하며,잃었다가 다시 돌아온 형제들로 더불어 기뻐하게 하옵소서.

우리는 아무것도 아버지 앞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내 세울 것이 없습니다.

겸손한 마음을 주옵시고,자고하는 마음이 나의 영혼을 해치는 원수임을 알아 물러가게 하시고,시기와 질투와 방해하는 마음이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그치게 하는 사탄의 도구인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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