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그물 비유 (마 13:47-50)

첨부 1


오늘 본문에서는 그물의 비유를 통하여 천국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 라는 이와 같으니 하심으로 하늘의 이치를 땅의 이치로 설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비유의 말씀은 아마도 갈릴리 바닷가에서 어부들이 그물을 치며 고기 를 잡는 모습을 직접보시면서 하신 말씀이라 생각되어 집니다. 이는 예수님의 비 유이 소재는 언제나 가장 평범하고 보편적이며 시각적이고 현재적이는 점에서 더 룩 그렇습니다. 그물의 비유는 가라지 비유와 같은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라 지의 비유에서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는 말씀인데 이는 마지막 때에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에 비해 오늘 그물의 비유는 한 그물 속의 물고기를 물가로 끌어내어 좋은 물고기와 못된 물고리를 구별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비 유는 다 종말론적입니다. 알곡과 가라지, 좋은 고기와 못된 물고기를 구별하다는 점에서 이 두 비유는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가라지 비유는가만 주어라 때가 올 때까지 기다 리자는 이야기입니다. 손쓰지 않고도 기다리기만 하면 자연적으로 가라지는 제 모습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물의 비유는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아 니라 끌어옵니다. 그리고 구별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가라지 비유가 소극 적임에 비해 그물 비유는 적극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편에서 그물을 치시고 잡아 끌어당기시어 또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판이 좀더 강권적이고 급하게 이루어지는 장면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물로 고기를 잡는데는 두 가 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원추형으로 된 그물을 홱 던져서 고기를 잡는 것 이고, 다른 하나는 소위 후리질이라는 방법입니다. 즉 배 두 척이 양끝을 가지고 둘래를 둘아서 그물을 조여 당기는 방법입니다. 후자의 방법으로 고기를 잡게 되 면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똘똘 말려 함께 엉켜있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아뭏든 이헐게하여 잡은 물고기를 큰 것은 이쪽으로 작은 것은 저쪽으로,그리고 쓸모없 는 것은 내버리게 되는데 예수님은 이런한 장면을 보시면서 천국은 마치 이와 같 다로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바닷 속에는 여러가지의 물고기가 마음대로 자유롭게 헤 엄치고 다닙니다. 그러나 일단 그물을 치고나서 그 그물 속에 든 물고기는 이 제 세계가 좁아집니다. 잡아당기면 당길수록 좁아지다가 결국은 자기의 세계인 물의 세계가 없어지고 물의 세계에서 자기의 모습을 들어냅니다. 다시 말씀드리 면 심판날이 가까와올수록 더 극악해지는 것은 선한 자나 악한 자가 다같이 자기 의 모습을 들어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얼굴 그대로를 나타내놓고 심판을 받게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사관입니다. 그러므 로 악한 자는 점점 더 악해지고 선한 자는 점점 더 선해지며 구원얻은 자는 하나 님을 더 가까이 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고 구원받지 못할 사람 은 점점 더 교만해지고 극악해져서 사람의 눈으로도 마귀의 자식임을 식별할 수 있을 만큼 가자의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심판은 분명하게 이 루어진 다는 것입니다.

 1.던져진 그물로 인하여 갇혀진 세계가 된 그 그물의 세계는 그물을 던진 사람의 손에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단 그물 속에 들어갔으면 이제는 별 수 없이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분간은 그물친 안에 서도 물고기는 마음대로 헤엄칠 수 있습니다. 세계는 한정되고 운명은 정해졌지 만 그물이 당겨지고 끌어올려 질 때까지는 성분대로의 활동이 가능합니다. 그래 서 그 속에서 악한 자는 악한 대로 선한 자는 선한 대로 또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대로, 마귀의 자식은 마귀의 자식대로 그대로 섞여 돌아간다는 말 씀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는 엄격하게 구분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며, 구 분되지 않는 가운데 혼합성을 인정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교회가 성결하고 거룩 한 것이 되기를 바라며 소원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우리의 판단대로 순결이나 거 룩, 아니면 부정을 그렇게 쉽게 식별할 수 있는 것이 못됩니다. 교회는 거룩한 곳입니다. 뿐만 아니라 거룩해야할 곳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거룩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다고 요13:10절에서 말씀하 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에 그 무리 중에서 사실은 똑똑한 애굽 사람들도 많이 끼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다름 아닌 고라의 무리입니다. 이 들은 조금만 어렵거나 고통스러운 일이 생기면 그 본색을 들어내어 소위 반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그 은혜를 역이용하여 그 은혜를 가로채려는 악의 무리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연유에서 사랑할 때 사랑의 위선자가 생기고 귀한 것일수록 가짜 모조품의 기술 이 뛰어 납니다. 이러나 저러나 우리의 판단으로 그 진부를 가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만의 영역이요 하나님만이 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러므로 모든 종 류. 모든 모습의 사람들이 다 모이는 곳입니다. 신학자 오리겐은 교회는 영혼의 병워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스스로 치유할 수 없는 영혼의 불치병 환자들이 모인 곳이니 병원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고침받아야 할 사 람이며, 구원받아야 할 죄인들입니다. 따라서 이런 저런 사람이 있는 곳이 교회 이며 그래서 여러가지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혹시 어떤 사람이나 사건 으로 인해서 마음 상한 일이 있다고 하여 쉽게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본 래 그런 곳이니까요.(마22장의 아들을 위한 혼인잔치비유=예복입으면 됨 예복 = 예수님의 이름)

2.두번째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제 심판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활동 이 자유롭다고 이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닙니다. 점점 그 범위를 좁혀가다가 마지막에는 끌어내어 면양과 산양의 비유에서 처럼 종말적 심판이 있다는 말씀입 니다. 종말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어 있으며, 거기에서 어 느 편으로든 분명하게 가려질 것입니다. 양과 염소, 진실과 거짓, 하나님의 자녀 와 마귀의 자녀, 이렇게 구분되어지는 종말적 심판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이르기 전에 또 하나 현재적인 심판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악한 자 는 환란을 당하게 될 때 악한 자는 반드시 자신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백난준박사는 한국교회가 처음 시작을 할 때에는 개화교인과 기독교인들이 있었 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제 하에서 105인 사건으로 핍박을 받게 되자 개화교인 들은 모두 세상으로 돌아가고 기독교인들 만 남더랍니다. 이처럼 핍박과 환란, 고통이 생기는 날에는 가짜는 다 도망가고 맙니다.

 3.세번째 생각할 것은 나쁜 고기중에서 좋은 고기를 골라내는 것이 아니라 좋은 고기 중에서 나쁜 고기를 골라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악인이 의인 의 기업에 함께 참여 하지 못하게 의인 속에서 악한 사람을 강제로 끌어내어 지 옥에 던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악한 자의 위선을 벗기겠다는 것입니 다. 악한 자가 선한 자처럼, 불의한 자가 의인인 것처럼, 이리가 양의 가죽을 입고 아무리 숨겨 보아도 그 결절적인 심판의 때에 가서는 제 모습 그대로 다 나 타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심판은 강권적입니다. 그래서 의인의 기업에 악인 이 함께 참여하지 못하도록 옮겨놓 겠다는것이비다. 그런데 그 옮겨지는 장소, 버려지는 곳은 풀무불, 지옥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장면은 울며 이를 갊이 있 으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옥은 우는 곳입니다. 슬픈 일도 많고 후회함도 많습니다. 답답한 일, 원통한 일이 쌓이고 쌓였으니 울지 않을 수 없는 눈물의 곳입니다. 이것이 지옥입니다. 게다가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이를 간 다는 것은 원망인데 밀톤의 실락원에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지옥에 간 영 혼들이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며 니내는데 거가에는 마귀 사탄도 함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너무 고통 스러우니까 슬피 울면서 이 럴 줄 알았으면 나도 예수 믿을 걸하고 자꾸 울었습니다. 그러니까 듣고 있던 마귀의 괴수인 사탄이 무엇이라고 호령하느냐 하면 이놈아 울이 말아라 이를 갈 아라 네가 눈물을 흘리면 하나님이 기뻐한다.라면서 호통을 치는 것입니다. 지 옥인란 후회의 눈물도 참회의 눈물도 없는 곳입니다. 그 곳은 이를 갈며 원망하 는 곳입니다. 한과 원망과 증오로 마음을 부글 부글 끓이면서 이를 가는 곳이 바 로 지옥입니다. 영국이 2차대전 말기에 폭격을 당하게 되었을 때 불타는 장소에 서 어느 교인이 목사님 께 이것이 정말 지옥과 같습니다.했더니 목사님은 껄껄 웃으면서 고생은 되지만 이 곳은 지옥이 아니요 왜냐하면 여기에 예수 믿는 사 람이 있지 않소 지옥에는 예수 믿는 사람이 없거든요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그리스도인이 있고, 믿음이 있으며, 복음이 있는 곳이라면 그 곳은 지옥이 아닙니다.

그물같은 천국, 그 천국은 심판적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 또한 심판적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말씀이 선포될 때마다 받아들이는 자가 있는가 하면 받아들이지 않는 자도 있습니다. 아멘으로 믿고 감사하게 받아 감격하면 받 아들이는 자가 있는 가 하면, 의심하고 비방하며 다른 사람을 위한 말씀으로 돌 리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떠한 반을 보이든지 그 선택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환란과 핍박이 오게 되면 그 분체를 드러내게 될 것이고 마지막 주 님이 심판하실 때에 가서는 알곡과 쭉정이,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로 숨김없이 밝히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자기의 실체를 그대로 나타낼 수밖에 없는 그 피 할 수 없는 심판의 날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가 남아 있을 때에 그 정하신 시간이 다하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세워져서 어느 때에 주님께서 그물을 잡아당기시더라도 좋은 것을 원하 시는 주님 앞에 좋은 물고기, 좋은 하나님의 자녀로 나타날 수 있어야 하겠습니 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