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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룩에 대한 경고 (마 1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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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표적 구함을 책망하심
본문 16장 1절에 보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이기를 청했습니다.지금까지 예수님은 많은 표적들을 보여주셨습니다.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은 성경에 기록된 것만 37가지나 됩니다.요한은 예수님의 행하신 것을 다 기록하면 이 세상이라도 그 기록한 책을 두기에 부족할 것이라고 했습니다(요 21:25) 그런데 이들은 또 다른 표적을 예수님께 요구했습니다.“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이시기를 청하니”라고 하였습니다.여기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라고 하는 말은 지금까지 있었던 표적이 아니라 직접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그를 보냈다는 좀 더 구체적인 증거를 요청한 것입니다.모세나 엘리야나 또 여호수아의 경우처럼 정말 누가 보아도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셨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증거할 수 있는 또 다른 표적을 이들은 요구했던 것입니다.그러나 이들의 이 요구는 동기에 불순성이 있습니다.저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되신 증거보다 고소의 조건을 찾기 위해서 이처럼 표적을 예수님에게 요구했던 것입니다.

2.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예수님에게 표적을 요구했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입니까 바리새인들은 아주 보수적인 사람들입니다.그러나 이들에게는 문제점이 있습니다.이들은 자기 도취적인 자만심과 교만심이 가득찬 사람들입니다.자기 자신을 스스로 의인이라 생각했습니다.이런 생각 때문에 이들은 남에게서 존경받기를 굉장히 원했습니다.이들은 자신의 경건을 보이기 위해서 길거리에 가다가 기도합니다.이들은 자기과시적인 구제 행위를 했습니다.구제할 때에 나팔을 불었습니다.기도할 때에도 자기들의 의로움을 나타내려고 했습니다.이들은 한 마디로 외적인 종교의식을 행했던 것입니다.마음의 깨끗함보다는 결례라고 하는 손씻는 예를 통해서 자기들이 깨끗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애를 썼던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바리새인들의 문제점입니다.이들은 교만했으며 자신들의 허물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또 예수님께 나와서 질문한 사람들은 사두개인들입니다.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은 서로 라이벌입니다.바리새파들은 굉장히 종교에 열심이 많고 아주 엄격하고 철저한 사람들인데 비해서 사두개인들은 정반대로 아주 현실주의자들이며 합리주의자들입니다.한 마디로 이들은 세속주의자들입니다.그래서 사두개인 중에는 제사장들도 있고 정치 지도자들도 있고 심지어 산헤드린공회원들도 있습니다.성경에는 산헤드린이라는 말은 안나오고 공회원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산헤드린공회원을 말합니다.칠십일명으로 구성된 예루살렘에 있는 것으로 오늘날로 말하면 국회와도 같습니다.그 나라의 법을 정하는 종교적인 지도자들이 모이는 곳입니다.그런데 그들이 한 것이 무엇입니까 저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 위해서 공모를 했고 재판을 통해서 통과를 시켰습니다.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서로 원수가 됩니다.그런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데는 서로 연합했습니다.악한 세력들은 저희들끼리 싸우다가도 의인을 핍박하고 주님을,교회를 핍박할 때는 저희들끼리 이의 없이 연합합니다.이것이 바로 악인들의 생리입니다.

3.주님의 교훈과 책망
이들은 예수님께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했습니다.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이들은 하늘의 일기에 관한 징조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그러면서도 더욱 중요한 영적인 분별력은 저들에게 없었던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향해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여”라고 책망하셨습니다.악하고 음란한 것은 어제나 함께 작용을 합니다.음란하다고 하는 말은 육적으로 음란하다는 말과 영적으로 음란하다는 말이 있습니다.영적인 음란은 우상숭배를 말합니다.그런데 놀라운 것은 영적인 음란과 육적인 음란은 언제나 함께 다닙니다.왜 예수님께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말했을까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신부입니다.신부이면 자기의 신랑만을 사람하고 신랑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그런데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신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신랑 이외의 다른 보이프랜드가 있었습니다.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그것이 바로 바알이고 아세라입니다.쉽게 말하면 신앙의 정조를 저들은 버렸던 것입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책망하시면서 4절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요나서에 보면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요나를 광풍을 통해서 물고기 뱃속에 사흘 동안 갇혀 있도록 만들었습니다.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장차 무덤 속에 들어가셔서 사흘 동안 계실 것을 모형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요나가 마침내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있다가 하나님의 섭리로 다시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무덤 속에 부활하실 것을 보여줍니다.그러나 이때만해도 이들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가 예수님이 부활한 후에야 그것이 바로 그런 뜻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4,누룩에 대한 경고
본문 5절 이하에서는 예수님께서 누룩에 대한 경고를 하십니다.그 당시는 시장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어디를 가려면 꼭 떡,즉 빵을 가져가야 됩니다.그런데 제자들이 그것을 깜빡잊어 버렸습니다.그때에 예수님께서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그때에 제자들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빵을 안가져 왔더니 예수님께서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는구나 하고 착각을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 누룩이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로 사용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마태복음 13장 33절에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갔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고 천국을 누룩과 같다고 했는데 이때는 좋은 의미입니다.그러나 본문 속에서는 나쁜 의미입니다.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했습니다.해석이 12절에 나옵니다.“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즉 누룩이라는 말은 교훈이라는 말입니다.좋은 교훈이 아니라 거짓된 교훈,나쁜 교훈을 의미합니다.다시 말씀드려서 형식주의,율법주의,외식주의,바로 그것이 바리새인들의 누룩입니다.사두개인들 누룩은 저들의 합리주의,외식주의,회의주의,세속주의를 얘기합니다.그것을 예수님께서는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왜냐하면 누룩은 적은 분량으로 전체를 부풀게 만드는 역사를 합니다.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본문에 보면 “삼가 조심하라”고 했습니다.아무리 훌륭한 신자라도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의 누룩에 빠질 위험성은 언제든지 있습니다.그렇개 때문에 우리는 조심해야 됩니다.우리 자신들의 믿음이 적음을 조심해야 됩니다.깨닫지 못하는 것을 조심해야 됩니다.저와 여러분들은 먼저 저들의 교훈의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됩니다.

5.본문이 주는 교훈
첫째는 우리들에게 잘못된 종교지도자들을 경계하라고 하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그 당시에 잘못된 종교지도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도 어디로부터인지도 알지 못하는 거짓 지도자들이 많은데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 같은 사람들의 교훈을 조심하고 경계해야 됩니다.둘째로 우리는 시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여기 분별하다는 말은 원문에 보면 디아크리노라고 하는 말인데 떼어낸다.가리어낸다는 말입니다.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무엇이 정통이고 무엇이 이단인지 가리어낸다는 말입니다.모든 음식이 다 좋은 것이 아니고 해로운 음식이 있어서 음식을 가려 먹듯이 우리는 말씀을 분별해서 들어야 합니다.물론 이것은 편식하라는 뜻이 아닙니다.바른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된다는 말입니다.셋째로 우리는 누룩을 조심해야 됩니다.왜냐하면 누룩은 조용하고 은밀히 번져갑니다.그러나 그 침투력이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전체로 다 번져갑니다.이것이 바로 누룩입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 교회 안에 누룩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됩니다.이단사상이나 잘못된 신학이 일단 교회 안에 들어오면 그것이 바로 누룩입니다.한 줌의 독초가 오랜 세월동안 정성들여 키워온 양떼를 하루 아침에 죽일 수도 있듯이 오랜동안 신앙 생활을 해왔던 신자들도 순간에 잘못 먹은 독초 때문에 생명을 잃고 멸망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늘 조심해야 됩니다.
이 말씀 속에서 기도제목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첫째는 16장 8절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라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를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또 16장 11절에 “깨닫지 못하느냐”는 말씀도 우리를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우리는 항상 말씀과 기도가 병행하는 신앙생활을 통하여 믿음이 적은 자가 아니라 믿음이 큰 자,깨닫지 못하는 자가 아니라 깨닫는 자가 다 되어서 영적인 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어지러운 이 세상에서 끝날까지 승리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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