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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마 24:32-33, 막 13:28-29, 눅 21: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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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나무의 비유는 예수님 당시의 청중과 그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서 언급하신 것입니다. 농부의 삶과, 어부 그리고 목자의 삶을 많이 다루셨는데 당시의 청중들은 우리보다 더 많은 시간을 자연을 접하며 살았습니다. 예수 님도 그런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주위의 자연을 보시면서 비유를 말씀신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 전역에 유실수로 평범한 것이었습 니다. 특별히 Bethphage(무화과 나무들의 집)이 위치한 예루살렘 근처는 더 욱 그러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화과 나무에 대하여 좀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무화과 나무는 히브리어로 테에나이며 헬라어로는 수콘, 덜익은 무화 과를 팍가라는 말로 아2:13절에 사용되었습니다. 무화과 나무는 구약에서 테에나로 23번, 신약에서 수케로 16번 언급되었습니다. 무화과 학명은 피쿠스 카리카(Ficus carica)입니다. 무화과 나무 열매는 즙이 많고 열매를 자르지 않으면 꽃을 볼 수 없도록 생겼습니다.

무화과는 둥근 종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배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습 니다. 무화과 나무는 계절에 따라 일정하게 두 차례 열매를 맺는데 5,6월에 익는 일반적인 겨울 무화과가 있고 8,9월에 익는 여름 무화과가 있습니다.

매년 4월쯤 입이 나타나며 열매의 싹은 2월쯤 볼 수 있습니다. 팔레스틴에 서는 1년에 9-10개월 이상 열매를 딸 수 있다는데 어린 무화과 나무는 겨울 에 얼어죽어 첫번째 열매는 딸 수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여러 종류의 무화과 나무가 있던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무화과는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 나무잎으로 몸을 가렸습니다.

(창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하나님은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에게 팔레스틴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신 8:8)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팔레스틴 땅을 살펴본 사람들은 그 땅을 (민 13:23)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 한송이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취하니라 라고 표현했습니다.

<참고구절> (렘 5:17) 그들이 네 자녀들의 먹을 추수 곡물과 양식을 먹으며 네 양떼 와 소떼를 먹으며 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열매를 먹으며 네가 의뢰하는 견고한 성들을 칼로 파멸하리라 (사 28:4) 그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는 그 영화의 쇠잔해 가는 꽃이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으리니 보는 자가 그것을 보고 얼른 따서 먹으리로다 (사 36:16) 히스기야를 청종치 말라 앗수르 왕이 또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각각 자기 의 포도와 자기의 무화과를 먹을 것이며 각각 자기의 우물 물을 마실 것이요 (아 2: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왕하 18:31)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 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고 너희는 각각 그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또한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마시라 (왕하 20:7) 이사야가 가로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 가 그 종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잠 27:18)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을 시종하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 (호 9:10)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열조 보기를 무화과 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저희가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의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 여 졌도다 구약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화과 나무와 함께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는데 유대 민족의 번영을 묘사하는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왕상 4:25) 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더라 (미 4:4)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 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 무화과 나무는 더운 지방에서 무상한 커다란 잎사귀와 고마운 그늘을 제 공해 줍니다. 우물 옆에 심겨진 무화과 나무를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 한 이유 때문입니다. 올리부나 삼목, 그리고 감람나무와는 달리 무화과 나무 는 겨울이 다가 오면 잎을 떨어집니다. 그리고 다른 여러 낙옆송들이 봄철 에 일찌기 생명의 신호를 보여주기 시작할 때도 무화과나무는 그 앙상한 가 지를 여름이 오기 직전까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눈이 나고 봉우리가 터져 며칠만에 부드러운 잎이 나옵니다. 자연은 살인적인 밤의 추 위는 지나가고 여름철이 왔다고 전합니다.

예수님은 4월 첫 주 동안에 싹이 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가르치셨는데 바로 그 때가 무화과나무에서 생명의 첫 신호를 보여주는 시기입니다.

(마 24: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 말씀은 청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이야기 였습니다. 그러나 영적 으로 이 비유를 이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Ahiqar 史話(기원전 5세기의 것으로 확인됨)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 다. 내 아들아, 너는 물가에 서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와 같 다. 이제 주인은 그 나무를 베어 버려야 하게 되었다. 그 때 그 나무가 주인 에게 말했다. 나를 옮겨 심어 주세요. 그 때에도 내가 열매를 맺니 못하거든 나를 베어버리세요. 그러나 그 주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물가에 서 있 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했거늘 어찌 다른 장소에 옮겨진다고 열매를 맺겠 는가 예수님은 이러한 民話를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이 민화에서는 무화과나 무의 간청이 거부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자가 곧 문앞에 가까이 온 것으로 회개의 기회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제목의 전도지를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 문은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언제 이 문이 닫힐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이 은혜의 기간은 변경할 수 없는 최후의 것입니다. 이 마지막 기간이 회개의 기회로 이용되지 않은 채 지나가 버리면, 하나님은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에 의해 허락된 회개의 기간이 지나가 버리면, 그것을 연장 시킬 수 있는 힘은 아무에게도 없습니다.(눅 13:9) 김일성이 지난 9

4.

7.

8. 새벽 2시 사망했습니다. 북한은 김일성이 쌓아올린 업적을 찬양하며 천만년 길이 빛날 것이라고 하지만 그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을 비켜 갈 수는 없습니다. 남북 정상회담 등의 고무적인 분위기가 그의 말기에 있어서 일부 사람들은 그의 생전에 죽음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고 말 하지만 너무 늦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가 진실로 하나님 앞에서 지난 과오를 회개하고 민족의 통일을 위해 더 빨리 노력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제 그는 우상화 작업에서 영원히 죽지않는 김일성 수령님 태양 등의 표현도 사용했었으나 결국은 죽음 앞에서 거절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미래에 대한 모든일을 인간에게 감추셨습니다. 김일성의 죽음 뿐만이 아니라 나도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미래를 아는 사람은 이 땅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사회의 흐름을 예측해 볼 뿐입니다.

오늘 분몬 말씀에 누가 문앞에 서 있습니까(마 24:33, 막 13:29) (마 24: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줄 알라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바 로 그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왜 문앞에 계십니까 6.3빌딩의 모든 문을 관리하는 분이 계십니다. 현관문, 방문, 화장실문 모 든 열쇠를 가지고 있으며 열쇄가 없어도 모든 자물쇠와 문을 열 수 있는 사 람입니다. 이분이 한 말이 기억납니다. 자물쇠는 열리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 입니다.

예수님은 왜 문 앞에 계시느냐 우리를 데려가시기 위해서 오신 것 입니 다. 여러분 예수님이 오라하면 바로 가셔야 합니다. 문 꽉 붙잡고 죽어도 못 갑니다 하면 예수님은 그냥 가십니다. 그것은 마귀가 왔을 때 그렇게 해야 합니다. 마귀는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은 따라다니지 않는 그런 사람도 있습 니다.

예수님이 문 앞에 계시다는 것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임박함을 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저 멀리서 오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문앞 에 와 계신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총각 때 친구 결혼식 전날 신부 집으로 함팔러 갔습니다. 그 런데 그 신부집이 아파트에 살았습니다. 한발짝 띄는데 함 값 받아야 하는 데 아파트는 어디서 부터 시작을 해서 발을 옮겨야 함 값이 제대로 나올지 계산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있다가 그만 신부 친 구들(여자)이 얼마나 뚱뚱보 힘쎈 여자가 있는지 확 밀어서 그만 엘리베이 터를 타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어디 나오겠습니까 바로 문 앞 입니다. 그 러니 함 값 다 받았지요.

여러분 우리도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도 지금 봉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롬 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 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 라 (롬 13: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우리 문 앞에 예수님은 와 계십니다.

그 문이 열려질 때-할렐루야 아멘-으로 예수님 영접하시기를 축원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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