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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귀신을 제압하시는 그리스도 (마 08:2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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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라는 말은 어려서는 두려움의 대상으로 어른이 되어서는 공포를 통한 흥밋거리로 사람들과 관련을 맺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경험했다고 하는 귀신의 모습도 너무나 다양합니다. 비오는 날 설악산 천불동 계곡에서 보았다는 처녀 귀신도 있고, 운전하는 기사들을 호리고 정신을 빼놓는 귀신, 몽달귀신 계란 귀신까지 그 수효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귀신들이 있습니다.
오늘 날에 와서는 사람의 머리 구조가 과학적인 사고로 길들여져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으려고 하는 세대가 되어서 귀신은 연속극에서나 아니면 귀신 영화에서나 더운 여름을 공포로 시원하게 해주는 정도로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게 되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모습과는 다르게 분명히 귀신은 존재하며 이 귀신이 인간을 괴롭게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 오면서 귀신에 들린 많은 사람을 보아 왔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태도, 빨갛게 이글거리는 눈빛, 무서운 힘, 괴로워하는 표정, 등 사람의 존엄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불쌍하고 가련한 모습 이것이 귀신들린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 귀신은 사람의 말을 잘 듣지를 않습니다. 무당이 푸닥거리를 하면 나간다고 해 놓고서는 또 금방 들어옵니다. 집요하게 괴롭히다가는 파멸을 시키고마는 것이 바로 귀신의 정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한 마디에 귀신이 떨면서 꼼짝을 못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휘관이 부하에게 명하듯이 귀신을 명하시며 귀신은 꼼짝없이 복종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성경은 귀신을 제압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봅니다. 말씀에 은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I. 귀신의 고백
28-29 .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라다 지방으로 가시매 귀신들린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워 아무도 그 길로 지날 수 없을만 하더라. 이에 저희가 소리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A. 가라다지방의 귀신들린 사람
가라다 지방에는 해변으로 이어지는 몇 개의 길이 있고 그 길이 끝나는 지점은 산으로 연결이 됩니다. 이 지역에는 호수를 향한 가파른 언덕이 형성되어 있고 주위에는 고대의 무덤이 흩어져 있습니다. 이 무덤 중에는 벼랑의 바위벽을 깍아 내어 만든 조그만 방이나 굴의 모양이 있는데 이러한 무덤 중의 일부가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귀신들린 자의 거처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귀신들린 이 사람은 광폭성 환자로 이런 환자는 흔히 무덤에 거처하기를 좋아하며 광적인 힘을 가집니다. 이러한 증세는 현대 의학적 관점으로는 심한 정신병 증세의 하나입니다.
오늘날에도 귀신들려 미친 사람은 의학적으로도 속수무책인 것을 보면 성경에 나오는 이 광인의 광란은 어떤 세력도 물리칠 수 없는 고질적인 것으로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그의 능력으로 다스릴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B. ‘하나님의 아들이여!’
귀신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았습니다.하나님의 아들이란 예수님의 신성을 말하는 동시에 신약에서는 ‘인자’와 더불어 메시야의 별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귀신이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을 정확히 간파한 것으로서 이 고백 속에는 예수님에 대한 증오와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목격하기도 전에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는데 이는 그들이 악령이기는 하지만 영적인 안목이 있는 존재임을 알려줍니다.
C. 때가 이르기 전에
귀신들린 자가 말한 ‘때’는 세상의 종말을 말하며 그 때에 그리스도는 재림하셔서 마귀를 심판하며 불못에 던지시게 됩니다.
계20:10-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당시 불신자들은 물론 제자들도 아직 예수님의 신분과 역사를 알지 못했으므로 마귀의 이런 지식은 오직 놀라울 뿐입니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지식이 곧 신앙은 아닙니다. 이 귀신의 두 번째 고백은 영원히 멸망할 때가 올 것임을 나타내 주고 예수께서 종말의 때 심판주가 되실 것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가장 완벽하게 증명해 줍니다.

II. 귀신의 간구
31-32-귀신들이 예수께 간구하여 가로되 만일 우리를 쫏아내실진대 돼지 떼에 들여보내소서
A. 귀신의 간구
귀신들은 예수님이 그들을 심판하시기 전에 돼지 떼에 들여보내소서라고 간구하였습니다. 귀신들은 이미 쫓겨나고 형벌 받아야 할 형편이었으므로 짐승에게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귀신에게는 사람이든 짐승이든 육체 밖에서 사는 것이 큰 고통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귀신이 예수님께 간구한 데 주목해야 합니다. 이는 마귀의 활동도 결국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보여주며 마귀조차도 예수님의 권세를 인정한 것을 증거 합니다. 귀신들의 간구의 목적은 하나님의 피조물을 증오하는 마음에서 돼지 떼에 들어가 그 짐승들의 죽음을 초래하고자 했고 그 지방 사람들의 귀중한 재산인 돼지 떼를 몰사시킴으로 해서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미워하고 배척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고자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악령에 속하는 귀신의 간구는 이기적이며 파괴적입니다.
결국 악한 자는 악한 일만을 꾀하고 더불어 악한 결과만을 낳습니다. 성도들도 하나님 앞에 많은 간구를 올립니다. 그러나 그 간구가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간구라면 귀신의 간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여 아름다운 결과를 맺는 선한 간구만을 하나님께 올리는 귀한 믿음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간구는 하나님께서 흠향하실만한 아름다운 제물과 향기가 되어 야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B. 예수님의 허락
예수님은 귀신들의 의도를 간파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귀신들의 간구를 허락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귀신들의 소원을 들어주셨다거나 공연히 인간들의 재산에 피해를 끼치고자 하신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있는 것은 모두가 주님께 속한 것으로서 당신의 마음대로 하실 수 있다는 주권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그것도 그 귀신들이 실제로 그 사람에게서 나갔다는 눈에 보이는 증거이며 나음을 받은 두 사람의 믿음을 확고히 해주기 위한 의도로 암시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악령의 세계도 지배하십니다.
III. 귀신의 최후
32-34-저희더러 가라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는지라. 온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 들어가 물에서 몰사하거늘 치던 자들이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이 모든 일과 귀신들린 자의 일을 고하니 온 시내가 예수를 만나려고 나가서 보고 그 지방에서 떠나기를 간구하더라.
A. 돼지 떼의 몰사
귀신의 최후는 남의 재산을 파괴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돼지의 소유자가 유대인인지 이방인인지는 확실치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포함한 불결한 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데가볼리는 이방인들이 현저하게 많이 살았습니다. 따라서 돼지의 소유주는 이방인일 가능성이 높으며 혹은 이방인에게 팔기 위하여 돼지를 키우는 욕심 낳은 유대인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보았을 때 부당한 일을 하지 않으셨음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기준으로는 이해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이 이적은 예수님께서 바다의 광풍을 진압하신 후 사람의 속에 있는 광풍을 고치신 이적입니다. 돼지 떼의 몰사는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떠난 확실한 증거이고 두 사람의 가치가 많은 돼지보다 귀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만일 소유자가 유대인이었다면 이는 그의 반 율법적인 행위를 징계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의도에서 비롯되었고 또 그 의도를 성취한 사건입니다.
이 일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천하보다도 귀한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B. 예수님이 떠나시기를 간구함
그 땅 백성들은 이 일로 두려워하여 그들의 지방에서 예수님이 떠나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돼지를 치던 자들은 예수님의 능력의 두려움과 돼지가 죽은 손실에 당황해서 달아나 시내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전했고 돼지의 소유자에게도 전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신적 권능에 공포심이 생겨 또 무슨 손실이나 생기지 않을까 염려한 나머지 떠나기를 간구했던 것입니다. 확실히 그들은 예수님을 감당치 못했습니다. 물질적 타산에서만 살고 미신적 신앙에서만 사는 사람은 진정 구주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소유인 돼지의 죽은 것만 아까워했지 귀신 들린 자의 치유엔 관심이 없었습니다. 눈앞에 놓인 재물에 눈이 어두워 예수님이 행하신 놀라운 구원 사역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성도들은 물욕이 인간을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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