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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옛 사람과 새 사람 (롬 0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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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유한 사람이요 또 하나 는 무엇엔가 얽매여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나는 어떠한 부류의 사람일 까요 여러분 중에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나는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 으로서 주권을 행사할 수 있고 재산도 있어서 누구에게 예속되어 본 경험이 없으니 나는 자유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위치하고 있는 가정, 직장, 이루어 놓은 많은 것들... 이 모든 것에서 떠나 나 홀로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까 그 모든 것 이 없는 나를 생각할 수 있습니까 아브라함 처럼 갈대아 우르를 과감히 떠날 수 있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고백할 것입니다. 이 말은 지급 여러분은 여러분이 소유한 많은 것들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거기에서 떠날 수 없는 것을, 다시 말하면 그것에 예 속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반면에 우리는 기독교가 자유의 종교라고 합니다. 너희가 내 말 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1-32) 과연 우리는 어떠한 모습을 지닌 사람들인가요 기독교인 의 참 본질을 생각해 보는 이 시간에 주님이 함께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세례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사람이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세례를 받을 때 완전히 전신이 물에 잠기는 침례를 거행했습니다. 이렇게 물에 완전히 잠김으로써 인간의 모든 호흡이 정지 되는 것입니다. 즉 과거의 나의 모든 호흡은 이제 끝이 나고 다시 물에 올라올 때는 새롭게 거듭난 사람으로 태 어나는 것을 상징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은 나 혼자만의 죽음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하나의 인간적 결단이 될 뿐이지 진실로 부활한 실재의 몸이 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성서는 그리스도와 한몸이 되는 비밀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신 것처럼 그와 함께 죽는 사람은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롬 6:3)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서 그가 죽으면 우리도 죽고 그가 살아나면 우리도 새 몸으로 살아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 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 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 라(6:4) 우리의 모습을 보건대 인간들의 삶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기 전 의 삶이 있고 그와 함께 새 몸으로 부활한 몸이 있습니다.

그러면 죄 아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성서에 표현대로 보면 이 세상에 속한 사람입니다. 만약 사람이 아무것도 의지함 없이 홀로 서야 한다면 그 두려움과 외로움을 이겨나갈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사람 들은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저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을 의 지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돈을 의지하기도 하고, 권력을 의지하기도 하며, 자신의 지식을 의지하기도 합니다. 또한 이것들은 자신들을 의지하라고 인 간들을 유혹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의지하고 싶은 모든 것은 그것이 미래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지나가는 과거의 것이 되고 말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시 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를 남겨 두고 사라져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 간들은 이것을 의지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 나님 앞에 놓고 볼 때에 인간의 오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즉 우리에게 생 명을 주신 것도 하나님이시고, 인간은 그를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 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태도를 성서는 죄라고 합니다.

인간의 죄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써 삶을 추구하며, 하나님 대신에 그 자신으로부터 살아가려는 인간 의 그릇된 생각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는 세상을 향한 삶의 방 향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로 인간은 지신이 의지하고 있는 세상을 포기할 수 없게 되고 그것이 지배하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세상의 노예가 되고 말게 됩니다. 여기에는 사망 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상적인 삶을 죄로서 인식하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죄인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재서야 그들은 그 반대로 끊 임없이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스스로 죄인 임을 깨닫는 것과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은 거의 동시의 일입니다.

그 때에 그들은 자신이 의지하던 것이 참된 의지가 되지 못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그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분입니다. 사랍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그곳에서 하나님은 그 를 위해 행동하셔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 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우리는 곧 하나님의 거부할 수 없는 은 혜를 만나게 됩니다.

여기에는 복종과 실존적인 결단만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 때에 그분은 현 재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이러한 면에서 신앙이란 새로운 자기 이해라 고 하면 좋을 것입니다. 새 사람은 오직 이러한 신앙만으로 가능합니다.

이제 그는 미래를 소망할 수 있게 됩니다. 집착하던 많은 것들보다 더 중 요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자신으로 부터 해방된 새 사람이요, 매 순 간 새롭게 자신을 미래에의 소망에 맡기는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매 순간 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요, 매 시간이 새롭고 의미 있게 됩니다.

신앙은 일정한 의지의 방향을 말합니다. 그것은 또한 업적이 아닙니다.

신앙을 업적으로 볼 때 우리는 그것을 소유하고, 평가, 정죄, 자랑 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때에 우리는 나 자신 안에 머물게 됩니다. 그러나 반면 에 신앙은 그만큼 더 행위입니다. 그 행위는 하나님에게서 선사받은 자유 안에서 자기를 포착하는 행위, 즉 결단의 행위를 말합니다.

그런데 신앙은 그것이 은혜의 선물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 자신의 공로 로 이룬 것은 없습니다. 신앙인은 은혜의 체험을 통해 자신이 선택되었다 는 것을 알게 도와줍니다. 이러한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까지 잡착해 왔던 것에서 떠나 하나님의 은혜 아래로, 하나님꼐서 허락하신 미래 속으로 나 자신을 내어맡길 수 있게 합니다. 사도 바울의 말대로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빌 3:13) 오직 그리스도에게 달려갈 수 있게 됩니다.

이제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과연 우리의 삶은 거듭난 삶인가 우 리에게 그리스도를 만난 체험이 있는가 그분의 은혜를 느끼고 살고 있는 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과 그 후에 달라진 것이 있는가 지금까지 내가 집착했던 많은 것들, 고민케 했던 많은 것들을 돌이켜 보면 서 그것이 진정 나의 삶에 그토록 중요했던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세상 사람들이 사치와 낭비를 일삼고 있을 때 우리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우리가 왜 그토록 이웃과의 삶에 인색했는지, 우리가 왜 남의 이목에 그토 록 집착했는지 ...

우리는 이 시간 다시 한번 겸허히 머리 숙여 주님을 영접할 시간을 갖으 십시다. 다시 한번 주님과 함께 나 자신을 죽이고, 주님과 함께 거듭나는 이 시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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