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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찬미하는 그리스도인 (롬 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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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할 수 없다 로마서 8장 3절은 이렇게 말한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 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율법은 무능하다고 말한 다. 율법은 할 수 없다. 율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는 육 신이다. 율법은 신령하며 거룩하다. 문제가 없다. 그러할지라도 율법 은 못한다. 육신이 연약하기 때문이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이라고 말한다. 할 수 없다. 왜 할 수 없는가 육신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부족한 죄인' 이라고 말한다.

부족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내가 30퍼센트 뿐이니 70퍼센트가 보 충된다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깨서 조금만 도와주시면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 3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 성경은 할 수 없다고 단정 한다. 우리는 할 수 없다. 부족한 죄인이 아니라 할 수 없는 죄인이 다. 자신이 부족한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단코 승리하거나 성공하지 못한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라. 부족하다고 말하지 말고 할 수 없다고 말하라.

하나님은 하신다 우리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신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 하나님 이 어떻게 하시는가 그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쫓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은 그리스도 안에 서 이미 정죄되었다. 하나님은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 그분이 왜 아들을 보내셨는가 할 수 없는 우릴 할 수 있게 하시려고 그 아들을 보내셨다. 누가 할 수 있게 하는가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육신으로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첫째는 아 들을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죄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육신이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죄의 육신의 모양으로 오신 것이다. 우리의 죄 의 육신은 이미 정죄당한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육신을 좋게 생 각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그것을 이미 정죄하셨다. 하나님은 이 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육신을 파산시켰고 끝내셨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육신을 정죄하셨다.

영을 좇아 행하라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인가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것이다. 그럴 때 율법의 요구는 이루어진다. 영을 좇는 문제가 있다.

영을 좇는 것은 육신을 좇는 것과 대비된다. 영을 좇아 행하는 것은 성령을 신뢰하고 그분깨 지위를 드리고 그분을 주로 삼는 것이다. 그 분이 내 속에서 행하시도록 지위를 내어 드리는 것이 영을 좇아 행하 는 것이다. 누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가 만일 당신이 잡았다면 승리 했어도 무익한 것이다. 승리의 보조품잊 승리가 아니다. 그러나 당신 이 운전대를 성령님깨 드렸을 때 상신의 승리는 참된 그리스도의 승 리이다.

형제 자매들이여, 생활 가운데서 그리스도깨 지위를 드리기를 배워 야 한다. 영을 좇아 행하고 영이 충만해야 한다. 영으로 충만되는 가 장 좋은 비결은 기도하고 말씀 먹고 찬송하고 교통하는 것이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는 것이다. 세월을 아꺼 성령으 로 충만해야 한다. 이럴 때 당신은 성령을 좇기가 쉽다. 기도하고 말 씀 먹고 찬미하는 것이다. 당신의 생활에 찬미가 넘치는가 그렇지 않다면 성령이 덜 충만한 것이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찬미가 넘친 다. 이제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됐네 신성과 인성도 있고..

곡조가 틀려도 괜찮다. 찬송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자신을 주님께 맡 기고 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주님이 하시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이럴 때 입에서는 찬미가 넘친다.

갈라디아서 5장은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른다고 말한다. 육체와 내 자신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싸움은 성령과 육체와이 싸움이다. 당신이 맡기기만 한다면 성령깨서 육체를 처리한다. 그럴 때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사랑, 희락, 화평,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만들 어 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성령의 열매이다. 당신이 성령께 지위 를 드릴 때 이러한 열매가 맺어진다.

성령이 충만할 때 근심이 사라진다. 근심하는 자여, 네 모든 근 심 갖고 주깨로 나오라. 근심을 버리고 찬양하라! 구약의 율법 대 신약의 복음 하나님이 구약 시대에 왜 율법을 주셨는가 드러내기 위해 주신 것 이다. 신약은 무엇인가 주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구약의 율법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로마서 7장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이것을 깨닫는 데 4000년 이상이나 걸렸다. 이제 그리스도가 오셨다. 신양기 도래했다. 내가 하겠다. 내가 너희를 위해 구속하 고, 구원하고, 너희의 생명이 되겠다. 내가 너희 속에서 승리하게 해 주겠다. 이것이 신약이다. 안식하면 된다. 기뻐하면 된다. 찬양하 면 된다. 왜 찬미하지 못하는가 신약의 복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 다. 이 복음을 받는다면 즉시 바뀔 것이다. 거듭난 후 여전히 죄의 권세 아래서 신음한다면 다시 한 번 이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이 말씀을 받는다면 몇 년 후에는 성장이 있게 될 것이다. 만 일에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면 많은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을 것 이다. 이 복음을 받기 바란다.

믿음의 문제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믿기 쉭고 간단하다. 지금까지의 문제는 믿음이 부족한 데 있다. 말로는 하나님이 하신다고 하나 실지로는 자 신이 다 한다. 믿음을 가져야 한다. 당신은 이미 포도나무의 가지인 것을 아는가 아버지는 농부요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와 접붙였는가 농부가 하셨다. 당신은 가 시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 안의 풍성을 가져 오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이미 가지가 되었다. 노력해서 진액을 얻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신성, 풍성, 생명, 영광, 모든 것을 주 시기로 작정하셨고 이미 우리를 그리스도안에 접붙이셨다. 그 안에 거하기만 하면 된다. 흔드니까 떨어지고 열매를 맺지 못한다. 열매는 절로 맺히는 것이다. 로마서 11장에서 바울은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 님깨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 리스도와 함깨 못 박았다고 하면 못 박힌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 도가 우리의 생명이라고 말씀하시면 생명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 렇게 의심한다. 정말 내 속에 생명이 있는가 성령이 정말로 내 속 에 계신가 느낌을 주의하기 때문이다. 느낌과 감정을 믿는가 하 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 느낌과 나님의 말씀과는 관계가 없다.

느낌은 소용이 없다. 믿을만한 근거가 못 된다. 경험도 믿을만한 것 이 못 된다. 유일하게 우리가 믿고 의지할 것은 하나님의 변치 않는 말씀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 마치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에게 모든 것을 준 것과 같다. 우리는 믿음으로 받으면 된 다. 이미 우리는 거룩한 분 그리스도깨 연결되었다. 견고하게 접붙여 졌다. 우리는 그분과 함깨 연합되었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그분의 모든 풍성, 모든 것이 우리 속에 매일매일 공급되며 열매가 맺힌다.

아주 쉽다 힘들여 죄짓는 사람이 있는가 수고해서 죄짓는 사람은 없다. 그런 데 왜 그리스도인들은 힘을 들여야 의를 행할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담이 죄를 범해 우리로 힘들이지 않고 죄를 짓게 하는 것보다 주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고 순종하심으로 우리로 의로운 행동을 하 게 하는 것이 더 쉽다. 노력해서 승리하는 것은 틀린 것이다. 그리스 도인은 자동적으로 의, 사랑, 등등 성령의 열매가 맺힌다. 하루 아침 에 이렇게 될 수가 있다. 어떤 사람은 수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주를 믿는 것이 아니라 불교를 믿는 것이다. 산에서 도를 닦 는 것이다. 복음의 말씀은 일순간에 죄와 권세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일순간에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일순간에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사탄은 우리를 잡지 못한다. 죄는 우리를 잡지 못한다. 율법은 우리를 속박하지 못한다. 법 아래 있지 않고 은 혜 아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령을 따를 때 우리가 그렇게 노력해도 얻을 수 없었던 것 을 성령께서 이루신다. 그분은 율법을 주셨을 뿐 아니라 율법을 이루 시는 분이다. 율법과 은헤는 반대되는 말이며, 상대되는 말이다. 율 법은 내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며, 은혜는 내가 할 필요 없이 주님이 우리 속에서 거저 해주시는 것이다.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 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

열쇠는 생각이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 나니 . 어떻게 영을 좇아 행하는가 여기에 육신을 좇는 자와 영을 좇는 자의 특징이 있다. 영을 좇는 사람은 영의 일을 생각한다. 육신 을 좇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한다. 문제는 생각에 있다. 생각이 육신의 일을 생각한다면 그는 육신을 좇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한다면 그는 영을 좇는 사람이다.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를 말해준다. 영적인 대화라 할지라도 여전히 육신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자신 안에 있을 때 육신 안에 있게 된다. 자신을 잊어 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다. 잘하고 잘못하는 것, 성공과 실패, 다 의미가 없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그분의 영원한 경 륜, 계획, 구속, 목적, 그분의 지혜, 이러한 것만이 의미가 있다. 자 신에게서 나오라. 자신 안에 있는 한 구원받지 못한다. 당신의 생각 이 어디에 있는가 영을 좇는 것은 영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며, 육신 을 좇는 것은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다.

사망이냐 생명이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 육신 에 생각을 둔 결과는 무엇인가 사망이다. 사망에는 특징이 있다. 답 답하고 불안하다. 사망은 공허한 것이다. 당신의 느낌이 이러하다면 이것은 당신이 육신을 좇고 있다는 강한 증거이다. 주를 위한 일, 하 나님깨 속한 일이라고 다 생명에 속한 것은 아니다. 물론 죄를 짓는 것은 사망이다. 죄가 아니라 할지라도 당신의 생각 속에 사망, 우울, 불안, 근심, 초조, 조금함 등이 있다면 당신은 돌이켜야 한다. 주 여, 육신에서 돌이킵니다. 나를 정결케 하시고 씻어 주소서. 영안에 머물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 안이기 때문이다. 영에 생각을 둔 사람의 특징은 살아 있는 느낌이 충만하디. 생기가 솟고, 기쁨과 만족과 안식이 충만하다. 영광스러움 과 존귀함과 안식이 충만하다. 영광스러움과 존귀함과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당신의 상태가 이렇다면 영을 좇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떠 나, 육신을 벗어나 영 안으로 들어가라. 생명과 평안이 넘쳐날 것이 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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