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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사 52:7-10, 히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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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분위기에 맞추어 새벽 미사를 위한 구약의 성경 일과로 사용되어 왔으며, 또 대관식 때는 읽는 대관식 시편과도 같은 구실을 하였습니다.
7절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는 말은 왕의 즉위식 때 사용하는 경우 외에 포로에서 자유로운 귀환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포는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단어로 쓰이는데, 궁극적으로 여기에서 생겨난 말이 ‘복음’ 이라는 점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을 들어서 복음을 전파하는 자신의 사도적 사역에 작용하고 있고,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예수님 자신의 말씀에 근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좋은 소식으로서는 탄생에 관한 천사의 기쁜 소식을 특별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탄생에 있어 교회는 시온으로 돌아오는 귀환과, 그의 백성을 위로하는 것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베들레헴에서 그의 팔을 나타내므로 모든 사람들이 그의 구원의 도래를 보게 하십니다.
이 구원이 직접으로 나타나는 것은 포로들의 해방과 자유입니다.
이에 근거해서 오늘의 예언자는 영적으로 보는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사48:20)
히브리서 1:1-4 (5-12)
히01:01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 은 곳에 계신 위엄의우편에 앉으셨느니라,4 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남은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히01:05-12)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6 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7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8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9 네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였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네게 주어 네 동류들보다 승하게 하셨도다 하였고,10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11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12 의복처럼 갈아 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 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
히브리서의 첫 부분에서는 천사를 능가하는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아마 그것은 그 당시의 예수님의 위치에 대해 그리스도도 단지 다른 천사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하는 영지 주의자들의 견해가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지배하고 있는 생활에서 분명히 문제가 되었을 것입니다.
히브리어의 서두는 그리스도에 대한 찬미로 시작되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지혜를 노래했던 초기 유대 찬미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며 일정한 형태를 따르고 있음이 특징입니다.
지혜는 영원하신 하나님과 함께, 먼저부터 있는 것으로 기술 됩니다.
이러한 형태가 기독론적인 신앙을 표현하는 기독교에 의해 채택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선재하는(먼저부터 있음) 지혜와 동일시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창조와 보전의 주관자가 됩니다.
3절“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라는 말에서 그의 탄생을 생각해 보라, 그리스도 인은 단순히 지혜 그 자체를 찬미하는 차원에 있지 않았습니다.
명백하게 그리스도가 세상 안으로 들어오심에 관심을 둡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문제는 이 찬미에 대한 저자의 기술의 표현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전 구원역사에 걸친 하나님의 계시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은 전 예언자를 통해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헬라어에서 그 구절은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부분적인 또는 단편적인 특징을 표현하는 것으로 쓰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오늘의 본문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궁극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14
(요01:01-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6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7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하려 함이라,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네번째 복음과 관련인는 본문의 찬미의 기능은 예수님의 사역과, 삶과, 그리고 죽음의 궁극적인 배경을 준비하는데 있습니다.
이 전인적 사역은 말씀이 육신이 된 계시였고, 하나님의 자기 계기의 완전성의 말씀이 육신이 되시었습니다.
이 자기 계시는 그리스도의 사건과 함께 시작된 것이 아니라 창조와 더불어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 가운데 자신과 대화하기 위해서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가 계속되는 동안 개입하시고, 소통하셨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구속사 속에서 하나님의 계시는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형상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엄밀히 보면, 본문은 말씀선재론에서 말씀이 육신으로 그리스도를 옮겨간 것입니다.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4절 의 말씀에서 그것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전 생에는 말씀이 육신이 된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말씀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완전한 지혜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 서론”
국내 소식이든 해외 소식이든 신문에 실린 소식들을 스크랩하여 나누어 볼 것 같으면, 밝고, 어두운 차이가 뚜렷이 나타납니다.
기쁜 소식보다 슬픈 소식이 배나 더 많은 지면을 차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 개인과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신문에서 보듯이 기쁘고 좋은 일보다 슬프고 나뿐 일이 더 많은 것이 우리들의 삶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 의”
내게 기쁜 것이 남에게 또한, 모두에게 기쁜 것이 되지 못할 때 그것은, 자신에 거짓이 없는 온전한 기쁨이라 할 수 없습니다.
기쁨은 모든 좋은 것을 포함하는 적극적인 것입니다.
참된 기쁨은 외적 조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적 동기에 근거합니다.
그러기에 그 기쁨은 범사가 모두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이 그의 말씀 가운데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기쁨은 공동체적이고 외부 지향적으로 뻗어 나가는 기쁨입니다.
“동기부여”
예수님의 탄생이 왜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가1).하나님의 아들이 오심으로 인해 우리들의 오래도록 공통된 과제인 죄의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2).오늘 여기로 제한된 인생이 사후 세계인 영원한 나라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삶으로 바뀌어졌기 때문입니다.
3).슬픔과 수고로 가득찬 삶이 기쁨과 평안 그리고 소망으로 대신 채워지는 놀라운 변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계21: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 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방법론”
이 좋은 소식을 내게 주어지는 말씀으로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1).(요3:36)하나님은 사도 요한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어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마르다의 입을 통해 (요11:27)“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라고 고백하게 하십니다.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그를 영접할 때 우리는 부활의 생명을 얻게 되고 그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허락 받는 다는 것입니다.
2).(요3:3) 주님은 니고데모와의 만남을 통하여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죄를 회개하고 변하여 새사람이 된 자만이 이 좋은 소식, 기쁨의 복된 소식을 간직하고 답장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3).(사52:7)“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하나님은 이 좋은 소식, 평화를 가져오는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산을 넘는 발이 아름답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듣고 받은 자마다 모두가 삶으로 응답하는 답장을 써서, 듣지 못한 자들에게 알려주는 아름다운 발들이 되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 사명은 지극히 자발적이고 자연스러우며 전적인 헌신을 낳는다.
“결 론”
큰 기쁨의 소식을 듣는 자마다 이전의 어둡고 슬픈 일들이 변하여 기쁨으로 화하게 됩니다.
이 소식은 생명력이 있어 밖으로 벋어가는데, 그 작은 불씨가 퍼지는 곳마다 기쁨의 열매가 맺어질 것입니다.
독생자를 아낌없이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 그 헌신적인 사랑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에게 미치는 이 좋은 소식이 우리의 구석구석까지 드리워져 있는 어둡고 슬픈 그림자를 깨끗이 몰아내게 하시고, 새로이 밝음과 기쁨과 평안의 복으로 가득 채워지는 역사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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