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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선민에 대한 심판 (암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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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들을 심판하시므로 이스라엘이 깨닫고 죄악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셨지만 유다와 이스라엘이 여전히 범죄하자 하나님의 사랑의 매로 그들을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점진적 심판
“내가 아모리 사람을 저희 앞에서 멸하였나니”(2:9상)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데 점진적인 방법으로 사용하십니다.
먼저 이스라엘을 때리시는 것이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인근의 이방 나라들을 먼저 때리십니다.
이방 나라를 심판하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것을 보고 경각심을 갖고 깨달음이 있게 하시려고 간접적인 어려움을 사방팔방에서 폭탄을 집어 던지득이 일으키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때쯤 ‘아하,나도 이 길을 가다가는 하나님 앞에 큰 징벌을 박겠구나’ 깨닫기를 원하시어 그 주변의 나라부터 정리하시고 그 다음에 이스라엘을 징벌하시고 그 다움에 유다를 징벌하시는 점진적인 방법을 지금 채택하고 계십니다.
1-2절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징계하지 않 수 없는 세가지 이유가 나타납니다.1).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을 다시 택하여 자기 고토에 두시리니”(사14:1상)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입니다.
‘더 이상 야곱이라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부르리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백성을 이렇게 구별하시었습니다.
2).애굽에서의 구원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2:10상)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고 구원입니다.
선택된 구원, 이 구 기둥이 여기에 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만 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구원만 받은 사람이 아니고 선택된 백성입니다.
3).유일하고 독특한 은혜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3:2상)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선택과 구원은 다른 민족에게도 있었던 또 하나의 우례가 아니고 유일하고 독특한 은혜요 독특한 선택이요 독특한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상이 하나님을 배신 했을 때에 이스라엘이 하나남을 떠나는 그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징계의 채찍을 내리지 아니하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과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한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깨닫게 하시려고 우리 주위의 사람들을 징계하시면서 우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도 못깨달으면 친히 우리를 징계하십니다.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며서 자신을 정리합시다.

2.경고장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3:3)
하나님은 9가지 질문 속에서 경고장을 발하고 있습니다.
축구 선수가 반칙을 하면 처음에는 노랑 경고장이 들려집니다.
다시 반칙하면 빨강 카드가 들려지고 선수는 쭃겨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처음부터 빨강 카드를 내어 놓고 나가라고 하시지는 않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은 노랑카드를 먼저 제시 하십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로 오는지는 모릅니다.
어떤 때는 가정의 어려운 풍랑으로 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몸에 병으로 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사업의 파탄으로 오기도 합니다.
국가적인 어려움으로 오기도하고 교회적으로 어려움으로 오기도 할 때에 우리는 그 노랑 경고장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노랑 카드를 받아놓고도 방심하면 큰일 납니다.
농구 선수가 4번 반칙을 하고도 정신 못차리면 상대방 선수들이 5번 반칙을 하도록 유도 합니다.
마귀가 우리를 반칙으로 유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게 합니다.
그것도 모르고 미련한 인생들은 용갑하게 마치 자기 편의 승리를 가져다 주기 위해서 싸우는 것처럼, 하나님을 위해 싸우는 것처럼 미련하게 싸우다가 마귀의 올무에 걸려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9가지 질문에 간단히 생각해 봅시다.
①.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느냐(3절)
동업자가 함께 일을 하려고 하면 뜻이 같아야 성공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너의 뜻이 합쳐지지 못하면 너희 악행으로 인해서 오히려 대적자가 되니 형벌을 면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뜻에 하나니의 뜻을 맞추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뜻을 맞추어야 합니다.
②.사자가 움킨 것이 없고야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느냐(4절)
사자가 그 앞에 먹이가 없으면 부르짖을 리가 없습니다.
먹을 것이 있으므로 그것을 잡아먹기 위해서 으르릉거리고 다른 것이 달려들지 못하도록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내가 멸망시킬 대상이 앞에 없다면 내가 왜 너희에게 위헙하는 말을 하겠느냐, 너희가 죄를 지었으므로 내가 큰 소리로 경고를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③.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고야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4하)
잡은 먹이를 앞에 놓고 그것을 뜯어 먹으려고 산이 울리도록 소리를 지른다는 말입니다.
④.창애를 땅에 베풀지 아니하고야 새가 어찌 차이겠느냐(5절)
새를 잡으려면 그물을 쳐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야 재앙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⑤.아무 잡힌 것이 없고야 창애가 어찌 땅에서 뛰겠느냐(5하)
심판의 대상물을 발견할 때에 곧 심판이 시작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죄가 심판의 대상으로 등장된 것입니다.
⑥.성읍에서 나팔을 불게 되고야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6상)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시에 나팔을 사용하였습니다.(삿7:20)
전쟁을 알리는 경보가 울릴 때 두려워 아니할 사람이 없듯이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에 누가 두려워 떨지 않겠느나는 말씀입니다.
⑦.여호와의 시키심이 아니고야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6하)
사람들은 재앙이 올 때에 우연히 오는 줄 알고 적당히 지나치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재앙이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라와 민족과 개인이 당하는 모든 재앙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오는 것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⑧.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8상)
부르짖는 사자 앞에서 공포를 느끼지 않을 만큼 담대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노가 사자의 부르짖음 같이 공포를 일으킵니다.
⑨.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않겠느냐(8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말씀이 나오고서야 어찌 선지자가 예언하지 않겠습니까. 아모스도 하나님께서 강권하시므로 예언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내리신 하나님의 재앙은 점진적인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았는데 하나님의 재앙이 점점 더 깊어집니다.
나중에는 바로의 궁에서부터 천민에 이르기까지 맏아들과 맏새끼를 다 죽이는 재앙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요나에게 니느웨의 멸망을 경고하실 때에도 사람들은 귓전으로 들었습니다.
“또 선지자중의 한 사람이 말하나보다. 저거 누구네 선지자인가. 어느 동네 선지자인가”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설교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목사가 말씀을 증거하면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것까지 압니다.
그러므로 만성이 되어 버렸습니다.
들어도 경각심이 안생깁니다.
조용히 말하면 은혜가 없다고 하고 큰 소리로 해야 하니 부흥사들이 상스런 소리까지 합니다.
어떤 이들은 욕을 얻어 먹어야 은혜가 있다고 하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국어학자들에 의하면 칼이 아니고 갈이었답니다.
갈로 죽인다고 하였더니 무서워 아니하여 상대편이 무서워 하도록 센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서 강퍅해지니까 폭탄을 펑펑 터뜨리시는데 그 소리가 지금 가까이 들려오고 있는데도 인간들이 아직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목소리가 크든지 작든지 말씀을 많이 들었든지 적게 들었든지 하나님의 말씀이 강단에서 떨어질 때 우리의 양심과 속사람이 말씀을 예민하게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셨는데도 그것을 멀리 떠나는 인생, 율법을 멀리 떠나는 인생이 참회개가 없이는 재앙을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노랑딱지를 받고도 각성하지 않으면 빨강카드가 주어질 때에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경고하실 때에 돌이킵시다.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이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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