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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러가지 환상들 (암 0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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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앙의 환상들1).황충의 재앙
“주께서 황충을 지으시매 황충이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7:1하-2)
이 황충의 재앙은 요엘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서 받은 재앙과 흡사합니다
아모스는 이 황충의 공격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심판을 하시는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황충은 메뚜기와 비슷한 메뚜기 종류라고만 알지 더 깊이는 신학자들도 모른다고 합니다.
황충 재앙이 내린 때는 일차적인 추수는 끝난 때입니다.
일차적인 추수라고 하는 것은 첫곡식, 첫열매를 말하는데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서 먼저 추수하는 것입니다.
일차적인 추수는 일단 끝났는데 거기서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에 주께서 황충을 지으셨다고 했으니 이것이 황충이 나타나서 이삭을 모조리 갉아먹고 있으니 큰 일입니다.
겨울을 위해서 ㅇ야식을 겨우 준비했는데 다시 준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양식이 모조리 없어져 버리는 경우와 같습니다.
황충의 재앙은 파괴적인 공격을 의미합니다.
지극히 작은 생물에 의해서 아주 커다란 손해를 가져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작은 거이라고 무시하면 안됩니다.
작은 것이 우리를 괴롭히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감기쯤이야 하지만 감기가 모든 질병의 출발이 된다고 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감기는 눈에 보이지 않느 미생물의 균이 호홉기로 들어가므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죄, 지극히 보잘 것 없는 것들, 그런 것들 때문에 결국 인간이 고통을 당하고 곤고함이 옵니다.
황충의 창조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삼판하시기를 작정하시고 황충을 보내서 심판의 칼을 내미는 순간에 인간들이 살려달라고 애원 합니다.
“여호와여 청컨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이 고백을 듣고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십니다.(3절)
하나님은 계획을 가지신 분이고 한 번 작정하시면 불변하시고 모든 것을 뜻대로 인도하시는 분인데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징벌하신다고 하시고 또 뜻을 돌이키신다고 하니 하나님은 거짓말 하시는 분이 아니냐고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속아서는 안될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의 칼을 들겠다고 하는 것은 죄를 미워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 십니다.
그런데 이 죄인이 죄를 회개하고 죄를 떠났을 때 심판하실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두고도 심판 안이하겠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무조건 하나님의 자비만 구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돌이켜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계획속에서 죄는 용납하지 아니하십니다.
죄를 떠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됩니다.
죄의 용서는 구원의 기초입니다.
3절에서 또 한가지 배울 수 있는 것은 기도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뜻을 돌이켰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이 돌이켰다는 ㄱ서이 아니고 죄가 사라졌으므로 심판을 않겠다는 것 뿐입니다.
익서이 기도의 능력입니다.
기도 중에도 회개의 기도의 능력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을 저지르고 난 다음에 그 일을 저지른 사람의 의도를 살피는 ㄱ서입니다.
고의적으로 계획을 세워 악을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습니다.
무서운 심판감입니다.
바로 살아 보려고 얘를 썼지만 모르는 사이에 순간적으로 실수를 하는 경우는 다릅니다.
우리는 순간의 일을 알지 못합니다.
가슴에 심장이 뛰니까 살아있는 것 같지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의도적으로 죄를 짓고 게을러서 범죄하고 잘못을 저지를 때는 사과하고 용서받을 때까지 깨닫게 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정말 회개하고 돌아가기만 하면 돌이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불의 재앙
“주 여호와께서 명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 자라”(7:4)
이 불은 심판의 불입니다.
불로 태워버린다는 뜻입니다.
말살시키는 것입니다.
지옥은 불은 있고 물은 없는 곳입니다.
무서운 곳입니다.
불의 재앙,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떨어뜨리는 죄의 대가입니다.
3).다림줄 재앙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베풀고 다시는 용서치 아니하리니”(7:8)
다림줄은 줄자로 이것은 한 치도 어긋나지 않게 재어서 심판하시는 심판의 확실함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하실 때는 마구 쓸어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측량사가 자로 재는 것러럼 정확히 재어서 한 치도 오차가 없게 하십니다.
기준차에 모자라는가 넘치는가를 다림줄로 재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억울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인 동시에 완전하고 정확하신 기하학자이십니다.
핑계할 수 없습니다.
억울하다고 원망할 수가 없습니다.
수고하면 수고한대로 봉사한 일, 보이지 않게 한 모든 선한 일에 대해서 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무명으로 헌금한 것을 아무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2.심판의 대상
하나님이 공격하시는 대상이 변두리가 아니라 핵심인 산당과 왕궁입니다.
종교인들, 다스린다고 하는 사람들, 앞서 있다고 하는 사람들을 먼저 심판하십니다.
그 두 가지 죄는 타락한 종교와 부패한 정부임니다.1).타락한 종교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훼파될 것이라”(7:10)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남용 또는 오용한 것을 말합니다.
은혜를 받고 은혜를 잘 활용할 수 었어야 하는데 은혜를 남용하거나 오용 했을 경우 하나님은 심판의 칼을 드실 수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은혜란 죄인에게 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데 우리가 은혜를 받아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영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영적인 은혜입니다.
영적인 은혜는 하나님이 시작을 하셨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참으로 놀라운 혜택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께 영적인 은혜를 받으면서 성전에 와서 찾은 것은 겨우 땅의 열매를 통한 세상적인 번영을 찾았고 자기의 창고가 가득 차고 즙틀이 풍부해 지는 것만을 요구했습니다.
영적인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고 하는 것에 대한 응답은 보이지지 않았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영적인 은혜를 힘입고 물질적인 것으로 대응하는 정도의 천박한 신앙을 그들이 가졌다는 대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세상에서 만질 수 있고 찾을 수 있는 세상적인 것 이전에 영적인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고 우리의 감사를 보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한 것보다 독생자를 보내주신 것보다 육적인 것, 세상적인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마치 자기들이 구해서 얻은 것처럼 여기니 이것이 타락한 종교요 하나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괴롭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잘못입니다.
한국 기독교가 샤마니즘이 되고 무당종교처럼 된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무엇을 구하고 얻는 곳이 교회인줄 알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섬기고 하나님의 영적인 은혜에 대한 응답을 하는 것은 상실하고 있는 것이 한국 기독교의 길이 되어버렸으므로 아모스 선지자의 이 지적을 통하여 배워야 됩니다.
또 성경에서 말하는 은혜는 영적인 은혜인 동시에 기도 응답속에서 베풀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소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은 기도의 응답이라기 보다 자기들의 의식과 가견적인 행사에서만 찾아보려고 노력을 했던 것입니다.
어떤 형식을 통해서 하나님께 응답을 하려고 했지 기도로 응답하고 기도로 감사하는 면이 지극히 적었던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해서 하나님이 다림줄을 가지고 재 보시니까 거기에 부족이 오고 결국은 은혜를 남용한 죄로 나타나게 되고 은혜를 오용한 죄로 나타난 것입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기회는 주어집니다.
기회가 주어질 때에 그 기회를 남용하는 사람이 있고 오용하는 사람이 있고 선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회를 선용하는 사람을 우리는 성공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기회를 잘못 사용하거나 남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졌는데 이를 남용했으니 불쌍한 일입니다.
메시야가 자기 땅에 왔는데도 저버리고 영접하지 않는 불쌍한 민족입니다.
이것은 곧 우리 자신의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좋은 은례의 자리에 나를 두셨건만 그 은혜에 대한 감사나 응답보다는 오히려 은혜에 대한 기쁨과 감격을 상실해 버린 채 자꾸 물질적이고 형식적이고 어떤 프로그렘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종교적인 부패상입니다.
2).정치적인 부패
“내가 얼마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7:9하)
여로보암집의 죄명은 한 마디로 불순종의 죄입니다.
이것이 여로보암 왕의 정치적인 죄요 사회적인 죄입니다.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하나님 대신 예배를 드렸으니 이것은 율법에 대한 반역이요 은혜에 대한 배신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모든 것을 주셨는데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배를 금송아지를 세워놓고 드렸으니 익서은 무서운 배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배신 자의 결국은 가정이 파괴되고 개인이 망하게 되고 국가가 흩어지게 되는 결과 밖에는 올 것이 없다는 것을 아모스는 쓰린 마음으로 경고합니다.
심판을 선언하고 있는 이 예언자도 결토 냉혈동물이 아닙니다.
감정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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