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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와 사랑의 봉사 (요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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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베드로는 그의 말년에 아시아 각체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에게 말하기를 겸손해야 할 것과 서로 봉사해야 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이러한 봉사의 권면에 대하여 현대교회들은 각기 그 견해를 달리하고 있기도 합니다. 자유주의 사상을 가진 교회와 신학자들은 사회봉사를 말씀의 선포, 찬양, 기도, 전도보다 더 우선적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극단적인 보수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근본주의의 입장은 영혼구원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사회봉사와 문화할동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복음주의적인 교회와 신학자들은 영혼구원과 사회활동의 중요성을 둘다 인정하되 사회봉사 활동은 영혼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 자연히 따라오는 열매와 결과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성경은 이를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신앙이 생기는 순간 고아와 과부에 대한 태도가 바뀌어 지고 신앙이 자라면서 이에 비례하여 이웃에 대한 구체적인 봉사의 행위가 많아지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이웃에 대한 봉사와 사랑의 의무를 외면하는 기도와 예배는 무용한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사1:11-17) 형제에 대한 사랑과 봉사의 의무는 다하지 못하는 사람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거짓된 것이라고 했습니다.(요일4:20) 하나님께 헌신한 성도의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삶은 이웃을 섬기는 일과 구제하는 일 긍휼을 베푸는 일 쓸 것을 공급하는 일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롬12:3) 오늘 성경분문은 문둥이 시몬, 마리아, 가롯 유다등 세 사람의 예수님에 대한 봉사를 특별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제 이 세 사람의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봉사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시몬의 감사와 봉사를 생각합니다.

베다니라는 예루살렘 동편 감람산 아래에 있는 작은 동네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마26:6) 이 시몬은 문둥병에 걸린 사람이었으나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어 고침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시몬이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예수님을 자기 입으로 초청하여 대접하였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도무지 그냥 있을 수가 없어 예수님을 초대하여 대접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받은 사람의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말로만 감사라고 말하는 것은 참된 감사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16:14-15에 기록되어 있는 빌립보의 자주장사 루디아 또한 은혜에 온전히 감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두아디라 시에서 온 사람으로 지헤롭고, 부요하며 모든 면에 경험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거기에 종교심이 돈독한 경건한 여자요 기도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주께서 이 여자의 마음문을 열어 복음을 듣고 받아드리게 하였습니다. 그는 복음을 듣고 결단하여 세례를 받은 후 사도들을 귀한 손님으로 자기집에 모시고 대접하였습니다. 이러한 대접이 바로 감사에 넘친 봉사인 것입니다. 참 신앙인의 가슴 속에는 이러한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한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덕입니다. 일찌기 로마의 대문호 키케로는 감사의 마음은 최고의 덕일 뿐만 아니라 모든 덕의 어머니가 되느니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감사한 마음은 모든 덕의 어머니로써 선행과 봉사와 희생, 믿음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감사가 있습니까 감사한 마음엔 기쁨과 화평이 깃들게 됩니다.

같은 병을 앓아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치료를 받는 사람이 감사하지 않고 불평불만을 말하는 사람 보다 훨씬 일찍 퇴원하게 된다는 임상결과가 발표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까닭일 것입니다.

 2.둘째로 마리아의 사랑의 봉사를 생각합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값비싼 향유를 붓는 장면을 한폭의 그림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리아 같은 여인들이 예수님 곁에 있어서 예수님을 섬기고 봉사하는 모습은 예수님의 고난과 역경의 생애에 있어서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름이 밝혀지고 있는 마리아, 마르다 마리아,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인 요안나, 수산나, 다른 마리아등 외에도 예수님 곁에는 항상 상당수의 여인들이 따르면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름도 없이 예수님을 따르며 사랑의 봉사를 아끼지 않은 여인들은 대부분이 예수님으로부터 병고침을 받은 사람들이였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소유로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정성껏 섬겼으며(눅8:3)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실 때도 예수님께서 못박히셨을 때에도 그 십자가 밑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변치않는 사랑으로 항상 예수님 곁에 있었던 사랑의 봉사자들입니다. 그 결과 안식후 첫날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은총을 입은 여인들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여인들 가운데 대표적인 사랑의 봉사자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은혜에 너무나 감격하여 옥합에 담긴 향기로운 향유를 옥합을 깨어서 온전히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씻었습니다. 은혜에 감사한 사랑의 발로요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가롯 유다는 이를 못마땅이 여겨 불평했습니다. 유다는 타산적인 성격의 사람이었기에 진정한 사랑의 발로로 드리는 것에 까지 금전적인 계산을 끌어드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입니다.

그런데 왜 마리아는 옥합을 기울여 쏟아 붓지 않고 아예 옥합을 깨어 그 안에 모든 기름을 아낌없이 주님의 발에 붓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온전한 사랑의 마음이 그녀를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기름 뿐만아니라 옥합까지 주님께 온전히 바쳤습니다. 그옥합은 이후에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도 그녀는 원치 않았기에 옥합을 아예 깨뜨려 버린 것입니다. 온전한 사랑의 헌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봉사는 예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이 삼백 데나리온이나 나가는 비싼 향유를 옥합채 깨뜨려서 예수님의 발에 붓게 만들었고 그 향기는 온 방에 진덩하게 된 것입니다. 그 사랑의 향기는 그때 그방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오늘날까지이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서는 시간과 장소, 인종을 초월하여 아름답게 풍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도 마리아와 같은 사랑의 봉사자가 되어 예수님을 온전히 섬겨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물질의 옥합을, 시간의 옥합을, 인격의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온전한 향기로 드려야만 하겠습니다.

 3.세째로 가롯 유다의 봉사입니다.

유다는 유대의 남방 가롯이란 땅의 사람인데 그는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 다녔으므로 회계의 귀한 직분까지 맡게 되었지만 그는 믿음에 있어서는 인정받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배은방덕하여 스승인 예수님을 은30에 팔기까지 한 배은방덕한 사람입니다. 그런 가롯 유다였기에 그는 마리아가 옥합을 깨어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는 것을 보고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고 힐난하였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진 사람같은 소리입니다.

그러나 그의 속셈은 다른데 있었음을 성경이 밝혀 주고 있습니다. 사실상 그의 속마음은 도적의 마음으로 그것을 훔쳤으면 하는 마음이였다고 성경은 일러 줍니다. 우리 신앙인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 못지 않게 더욱 중요한 것이 주님께 사랑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갚을 길없는 영생의 은혜를 받은 우리가 어찌 은혜를 받고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진정한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발적으로 예수님을 위하여 드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척도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감사와 사랑의 봉사입니다. 시몬처럼 기쁨으로 감사와 봉사를, 마리아처럼 사랑의 봉사를 하는 신앙인만이 은혜를 아는 신앙인인 것입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는 은혜 받은 자로써 마땅히 감사와 사랑의 봉사를 하라고 하는 말입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 할 수 없느니라(요9:4) 바로 그렇습니다.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무한정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 주님이 다시 오실지 모르며 언제 나의 생명이 끝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제 저와 여러분은 깨어 경성해야 합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과 봉사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부터 우리는 구체적으로 주님을 위한, 은혜에 감사하는 참된 감사와 사랑의 봉사를 시작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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