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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계산되지 않는 회개 (호 0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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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로 돌아 오라 좀벌레처럼 심판하시던 심판을 거두시고 사자같이 물고 찢으시는 그 무서운 폭풍이 사라지고 고멜을 돈주고 사 오던 호세아의 심정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안아 주실 것입니다.

1.속한 회복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6:1)
돌아오기까지는 얼마나 걸려도 오래 기다리시던 하나님께서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손을 펴시는데 곧 펴십니다.
‘이틀 후에 살리시고 제3일에 일으키신다’ 는 말씀은 2,3일 내에 곧 회복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회개는 곧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비뚤어졌는데, 잘못된 상태에서 다시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되는 것이 관계 회복이며 이것이 곧 회개의 열매입니다.
관계가 회복된다는 말은 내가 피조물인 사실을 안다는 말입니다.
신앙이 깊을수록 죄의식이 민감합니다.
죄를 용서받고 긍휼을 입은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유일한 살길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기 전에 회개하는 것입니다.
원리는 간단하나 그것이 잘 안됩니다.
기회는 계속 주어지지 않습니다.
기회를 주실 때에 회개하지 않고 놓치면 구름이 지나가면 비가 쏟아지는 법인데 햇빛 난 다음에 비를 기다리는 것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입니다.
어깨뼈가 탈골되어 팔을 잘라 내면 아무리 귀한 것이지만 버려야 되고 땅에 묻어야 됩니다.
우리가 정상적인 관계에서 벗어날 때 하나님 앞에서 제 구실을 못하게 되고 남에게 손해를 주고 쓸모 없어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더럽고 무가치하고 무의미하고 남의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는, 머리를 들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우리가 피조물인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교만해지고 자율적인 존재가 되어서 죄를 짓고도 뻔뻔해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비인격화 되어 버린 우리 자신, 하나님을 비인격화시켜서 우상처럼 섬기던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돌아오되 철저히 돌아와야 합니다.

2.사랑의 생명력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6:3상)
호세아는 ‘이 백성이 아는 것이 없어 망한다’ 했습니다.(4:6,5:4)
여기 ‘아는 것’은 보통 지식이 아니라 인애와 사랑이며 번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알라는 것은 그를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인애’ 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만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 할 뿐 아니라 이웃도 사랑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랑은 관념에 머무를 수 없는 행동으로 확산되는 생력입니다.
‘힘써 알라’ 는 말은 모든 것을 다 제치고 여호와를 아는 데 줄달음치라는 말입니다.
사냥하는 자가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냥 물을 따라가는 것같이 뒤를 따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여호와를 사랑하되 적당히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죽을 정도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죽기까지 사랑하라, 옆으로 눈을 슬쩍 돌려 가며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한 눈을 고정시키고 완전히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일편단심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바로 알아야 바로 섬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상대방을 온전히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힘쓰되 좀 도 힘써서 여호와를 사랑해야 합니다.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랑의 결여 때문입니다.
희생해 보십 시요, 인간적으로 대하지 마십시오, 충성과 사랑과 인애와 힘을 다하면 녹아지지 않을 자 없습니다.
문둥이의 석은 발의 고름을 입으로 핥아 주던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의 원자탄을 한 번 쏘아보십시오, 안 녹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사랑으로 못 깨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이런 사랑입니다.
내 수고를 말하지 말고 사랑의 결핍을 말하십시오.

3.변하는 사랑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같도다”(6:4하)
‘하나님을 아는 것’ 을 번제보다 더 원하신 하나님은 또한 제사보다 ‘인애’를 더 원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사랑은 변하는 사랑입니다.
그들의 사랑은 아침 구름과 같고 쉬 없어지는 이슬과 같다고 합니다(6:4)
아침 이슬은 쉬 떨어집니다. 구름과 이슬은 믿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인애’도 그 모양입니다.
하나님 사랑한다고 애를 쓰지만 지속성이 없습니다.
인간끼리의 사랑에도 지구력을 가져야 하건만 하나님을 사랑함에 너무 변화무쌍합니다.
‘어기자’는 말은 경계를 넘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전혀 생각지 않고 무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결국 계약을 파기했습니다.
아담처럼 언약을 파기하고 패역하므로 신실성을 결여했습니다(6:7).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진실과 인애가 있어야 할 ‘거기’가 행악자의 고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대해서 신실성이 깨어지면 온갖 더러운 죄악으로 빠지게 됩니다.
좋을 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같고 나쁠 때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 버리는 자신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나 우리가 하나님을 변덕스럽게 사랑하여 하루에도 몇 번 씩 사랑하는 척하다가 멀리 떠나기가 얼마입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손해 보면서도 기쁘고 매를 맞으면서도 기쁜 사랑의 수고가 아쉬운 세상입니다.
수고한 것을 제세하는 사람은 아직도 사랑이 부족한 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나는 무익한 종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할 것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 신실하여 더러워지지 않도록 더욱 힘쓰고 애써 기도해야 합니다.

4.숨길 수 없는 죄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저희가 사악을 행하였느니라”(6:9)
세겜 길은 ‘도피성의 길’ 로서 생명을 구원하는 길이었고 또한 북쪽 이스라엘의 경건한 성도들이 절기를 맞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쉬어 가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사장들로 말미암아 죽음의 길이 되었습니다.
죄를 덮으려는 속셈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아담은 이브에게 핑계했고, 이브는 뱀에게 전가했습니다.
인간이 죄를 짓고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것도 비극이지만 그 보다 더한 비극은 죄를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는 하나님 앞에서 감추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 죄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에 ‘악인’ 은 멸하고 ‘남은 자’ 는 구원할 것입니다.
알갱이는 곡간에 들어가고 쭉정이는 불속에 들어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행악, 가증과 거짓을 기억하셨고(6:8-10),
그 모든 악이 여호와의 목전에 있었습니다.
토설치 않고는 여름 가물의 마름 같은 괴로운 죄를 자복하지 않고 핑계하고 전가하고 있지는 않는 지요
주께서는 자복하기까지 그의 강한 손으로 주야로 누를 것입니다.
내뼈가 쇠하여 종일 신음하고 구로할 것입니다.
죄를 지연시켜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지 마십시오.
속히 토해내면 회복도 빠를 것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비극 중 가장 큰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 마십시오.
햇빛 난 다음에 비를 기다리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고 기회를 놓치지 말고 회개하십시오.
새마음, 새뜻, 참이라고 하는 새방언, 새말을 사용하는 회개의 열매를 맺으십시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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