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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의 감사 (요 03: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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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민족에게는 3가지 큰 절기가 있는데 유월절과 오순절과 장막절이겠습니다.
그 중에 오늘은 장막절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장막절은 이스라엘 민족의 추수감사절이겠습니다. 이 장막절을 초실절이라 하기도 하고, 수장절이라 하기도 합니다. 이는 원래 출애굽을 회고하며 이들이 광야에 나와서 40년간 하나님이 만나, 메추라기, 반석의 샘물을 주심에 감사하여 이 때는 집에 거하지 않고 전부 길거리나 2층 옥상에 풀이나 나뭇가지(종려나무,버드나무)로 움막을 짓고 거기서 먹고, 자고 7일간을 거하며 그 옛날 조상들이 광야 40년의 유랑 생활을 기념하여 지킵니다.
이 절기는 티스리 즉 10월 15일에 시작하여 8일간 계속되는데 첫날과 끝날에는 성회가 있습니다. 이 때, 초막에 거하며 수송아지, 수양, 어린양을 제물로 날마다 드리며 율법이 낭송되며 곡식과 올리브, 감람유 기름을 거둬들여서 광야에 40년간 배회하던 것을 기억하며 예물을 서로 주고받으며 크게 즐거워하는 가장 거족적이며 민족 명절로 지켰습니다. 적어도 이 절기 때에는 24km 이내에 있는 이스라엘 남자들이라면 다 예루살렘으로 의무적으로 모여야 합니다. 역사가 요세프스에 의하면 이 때는 200만 인파가 모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모여 날마다 제단을 돌고 마지막 날에는 제단을 7바퀴 돌고 불기둥을 상징하는 화불행열이 있고, 마지막 날에는 실로암에 가서 물을 제사장들이 길러 와 성전 문지방 돌에 부으면서 반석의 샘물을 먹던 것을 기념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예수님은 요한복음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하시고 거대한 불기둥, 구름 기둥 행사로 꺼저진 기둥들을 보시며 “내가 빛이라”고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심을 회고하며 감사하고 찬송하고 그 은혜를 잊지 않으려고 8일간을 장막에서 거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진 앞에 하나님의 사자가 서고, 이스라엘 진에 메추라기가 날아들고, 이스라엘 진에 새벽에 만나가 내리고, 이스라엘 진 앞에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해 불기둥, 구름 기둥이 앞서고 뒤서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옛날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대로 창15:13절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의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400년 뒤에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그 약속하신 대로 야곱이 창46:27절 기근 때문에 70명의 가족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 400년을 거하게 됩니다.
그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 내려가 자손은 번성하여 바다의 모래알, 하늘의 별처럼 많아져 그 수가 중다(重多) 하였습니다. 여기에 위협을 느낀 애굽은 이스라엘을 학대하며 요셉의 은혜를 알지 못하던 새 왕이 등장하므로 이스라엘을 괴롭히며 노예화시켰습니다. 그 때에 모세가 출생하여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해 낸 것이 출애굽인데(출1;1-9) 이 때, 장정만 60만, 아이들, 여자들 그 수효가 많아 그 백성이 티끌 같고 해변에 모래알 같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런 이 자기들의 고사를 뒤돌아보며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린 것이 장막절 혹은 초실절입니다.
그 내면에는 구속의 은혜가 깔려 있고 복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며 이 절기를 지켰습니다.

Ⅱ. 둘째, 우리가 지키고 있는 현재 추수감사절(秋收感謝節 Thanks Giving Day)

추수감사절의 기원은 조금 전에도 말씀을 드렸 듯이 모세를 통한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한 해방에 기인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너희의 소산을 먹을 때, 너희는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한 것에 기인합니다만, 현재의 추수 감사는 미국으로 이주한 자들에게서 생긴 것이겠습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1620년 9월 6일 남자 76명, 여자 24명 도합 102명이 메이플라워호라는 배를 타고 정처 없이 바다 위에서 두 달(67일)을 떠돌다 프라이머드란 곳에 상륙하게 되었습니다. 먼 뱃길에 멀미로 죽고, 풍랑과 파도에 죽고, 굶어서 죽고, 상륙하여서는 열병과 인디언에게 죽고 몇 명이 남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살아남은 이들이 씨를 뿌리고 농사를 해서 그 이듬해 수확을 했는데 너무너무 흉작이라 불평도 하고 하나님을 원망도 했습니다.1)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다만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며 믿으려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곳에 왔는데
2)왜 생명을 많이 앗아갔으며
3)왜 식량이 모자랍니까
이렇게 불명을 하고 탈기를 할 때, 어느 한 노인 농부가 일어나 “우리가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그래도 우리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고 적은 곡식이라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합시다”고 하였습니다.
적은 것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하고 감사를 드렸더니 이들에게 하나님은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 역사는 반만년을 자랑하지만 저들은 아직 건국 250년도 못됩니다. 그런데도 저들은 세계적인 나라, 복 받은 경제 대국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대로 적은 것에 충성하고 적은 것에 감사하면 많은 것으로 채우리라는 말씀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 청교도들이 프라이머드에 이르러 3가지 원칙을 정했답니다.1) 먼저 하나님께 예배하자.
2) 둘째는 내 집보다 교회를 먼저 세운다.
3) 그리고 셋째, 자녀 교육을 위하여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고, 그리고 나중에 자기들이 거쳐할 집을 지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올 해 심한 가뭄으로 모든 경제가 어렵고 생활에 힘이 듭니다만, 넉넉지 못해도 적은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래도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감사합시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어도 우리 안에 양이 없고, 밭에 식물이 넉넉지 못하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며 믿음으로 삽시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고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 결국은 승리할 것입니다.

Ⅲ. 한국의 추수감사절

우리 한국 교회에 추수감사절은 1904년부터 입니다.
제 4 회 조선 예수교 장로회 총회에서 서 경조 장로의 제의로 한국 교회 감사일로 정해져 지키게 되었습니다. 처음 장로 교회만 단독으로 11월 10일날 정해서 지켰는데, 그 후 1914년 미국 선교사가 처음으로 조선에 입국한 날을 기념하여 매년 11월 셋째 주일 후 수요일로 했습니다. 그 때부터 11월 셋째 주일날을 추수감사일로 지켰습니다. 이것이 오늘에 이르는데 이 감사절은 우리 것이 아니고 또, 우리 한국 농촌 실정에 맞게 한창 추수할 때가 아닙니다. 가을걷이를 다하고, 내년 농사를 위해 이미 보리를 땅에 뿌린 다음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한창 추수 때인 10월 둘째 아니면 셋째 주일에 정해서 지킵니다. 그러나 그 근본은 같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일년을 건강하게,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사업적으로 축복해 주시고 인도해 주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Ⅳ.넷째, 본문으로 돌아가서 구원에 감사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본문의 배경은 이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통해길로 쫓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다가 광야 40년 생활에 지쳤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길로 인하여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이곳은 먹을 식물도 없고 마실 물도 없다, 우리는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하며 모세를 원망했습니다.(민21:4-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았습니다.
이 때, 백성들은 회개하며 모세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과 당신 모세를 가리킵니다.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였으므로 범죄 하였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더러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간구를 하라고 하자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를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르시기를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이것을 보면 살리라” 해서 모세가 놋뱀을 만들고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처다 본 즉 살았습니다. 뱀독이 올라서 곧 죽어 가던 자도 깨끗이 나았습니다. 뚱뚱 부어서 쓰러지던 자가 놋뱀을 처다 보는 순간 온몸에 독이 빠지고 나았습니다. 뱀의 독이 무서워 혈관을 타고 들어도 처다 보는 순간 깨끗이 나았습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은 말씀하기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여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십니다.
뱀의 독이 올라 뚱뚱 부어 곧 죽어 가던 자가 장대 끝의 놋뱀을 처다 보고 살아나고 깨끗해졌다면, 우리가 어떤 죄를 짓고 죄의 독으로 죽을 수 밖에 없으나 구리뱀을 쳐다보고 나았듯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처다만 보면, 믿기만 하면 깨끗해지는 줄 믿습니다. 구원을 얻는 줄 믿습니다. 모든 죄의 독이 다 풀리고 깨끗하며 새 생명을 얻는 줄 믿습니다.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부인이 다섯살짜리 아들과 세살 된 아들을 키우기 위해 이런 일, 저런 일을 하는 가운데 철길 가에 있는 신발 공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을 할 때에는 두 아들을 맡길 곳이 없기 때문에 때로는 한 아이는 없고, 안고 때로는 하나는 걷기고 하나는 엎고 공장으로 출근을 하여 공장 안에 있는 조그만 방에서 놀게 하고는 부인은 일을 했습니다. 따뜻한 어느 봄 날 방안이 답답하다고 이 두 아이들은 엄마 몰래 철길로 나갔습니다. 철길에서 조약돌 치기도 하고, 가위바위보 놀이도 하며, 공기놀이를 하고 있는데 기차가 달려옵니다. 누군가가 애들이 없다는 소리에 엄마가 뛰어나가 보니 두 아들이 철길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쏜살같이 달려가 두 아들을 철길 밖으로 던져 낸 순간 기차가 달려들어 엄마를 치고 지나갔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산산조각 난 엄마의 시체를 장례 치르고 난 후 두 형제를 고아원으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거기서 자라 어른이 된 후 어머님의 고마움을 알고 그 무덤 앞에 조그마한 묘비를 세우고 다음과 같은 글을 새겨 놓았습니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
그 어머니의 사랑의 절정은 두 아들을 기르기 위해 일당 몇 만원을 받으며 일했던 그것이 아닙니다. 두 아들을 기르기 위해 자신이 굶고 아이들 입에 먹을 것을 넣어 주던 그것이 아닙니다. 엄동설한 춥다고 당신의 옷을 벗어 걸쳐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 기찻길에서 놀고 있던 두 아들의 생명을 건져내고 자신의 목숨을 버렸던 그 사건에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절정은
우리를 위해 마실 물과 먹을 양식, 사업의 번성이 아닙니다. 우리를 건강하게 하고, 병에서 낫게 하고 그런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절정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경건치 않은 우리를 위해 죽어 주셨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어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날 죄인이라고, 세상 사람들이 날 못쓸 사람이라고 해도 주님은 나를 위해 죽어 주셨습니다. 당신이 십자가에 대신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해야 합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셨고, 지금도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이요, 나를 위해 죽어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94년 이 한 해 무엇보다 구원에 은혜가 감사하는 한 해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천하를 얻고도 내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었습니다.
199

4. 10.

9.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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