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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 날에 (사 2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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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26장은 “그 날에”로 시작됩니다.여기서 말하는 그 날은 하나님의 구원의 날을 의미합니다.세계 민족 가운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의 날을 가장 많이 경험한 민족입니다.
430년간의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받은 것도 그 날의 축복 때문이었고 앗수르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승리한 것도 그 날의 은총 때문이었으며 70년 만에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해방받은 것도 그 날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구원받은 날이 있고 은혜받은 날이 있고 은사받은 날이 있습니다.그 날의 감격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삶의 자세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본문은 그 날에 있을 일을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1.그 날에 노래 부르게 됩니다.
1절을 보면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그 날에 노래를 부르게 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견고한 성읍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이 가장 견고하다고 믿습니다.그러나 그 예루살렘 성은 수시로 원수들의 침략을 받아 초토화되기 일쑤였고 이방인의 발에 짓밟히곤 했습니다.그러니까 그들이 생각하듯이 예루살렘은 견고한 성읍이 못됩니다.
견고한 성읍이란 침략도 당하지 않고 파괴도 당하지 않는 성읍이라야 합니다.
이 지상엔 그런 성읍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노래할 견고한 성읍은 어딥니까 그곳은 영원한 도성 새 예루살렘입니다.
미국의 서부는 중부나 동부 지방에 비해 지진 발생률이 높습니다.특히 서부 가운데서도 캘리포니아 주는 지진 지역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동부에 비해 고층 건물이 적은 편입니다.
그러나 건축 기술이 발달하면서 지진이 일어나도 견딜 수 있는 건축구조로 건물을 짓게 되었습니다.그런데 지난번 샌프란시스코를 강타했던 지진은 인간들이 계산해 낸 역학이나 구조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를 여실히 드러내 주었습니다.
고가 도로가 엿가락처럼 늘어지는가 하면 고층 건물이 내려앉고 땅이 갈라졌습니다.
이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은 견고하지 않습니다.권력도 견고한 것이 아니고 풍요도 견고한 것이 못 됩니다.
경제 성장이 지속되고 살기가 좋아졌다고 해서 흥청거리고 고삐를 풀어 주던 것이 엊그제 일인데 이제는 경제 성장이 둔화되었다면서 고삐를 조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는 솔직하게 이 지상에서 펼쳐지고 있는 인간사들이 견고한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시인해야 합니다.
견고한 성읍은 하나님뿐입니다.
둘째는,하나님의 구원 때문입니다.
시인은 이 노래를 “새 노래”라고 했고,요한계시록에서는 “구원의 노래”라고 했습니다.
패잔병들에게는 노래가 없지만 승리하고 개선하는 병사들에게는 개선가가 있습니다.
사실 기독교를 떠나서는 음악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음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그것은 종교 음악과 세속 음악입니다.종교 음악은 다시 기독교 교회 음악과 종교 음악으로 나뉩니다.
창세기 4:21을 보면 이미 그때 유발의 후손들이 수금과 퉁소를 만들어 연주를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시작된 노래는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영원한 나라에까지 연속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볼 때 우리의 삶은 찬송을 떠나서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특히 성탄 계절은 찬송과 감사의 계절입니다.우리 모두 함께 힘껏 구원의 노래를 합창합시다.

2.평강으로 지켜 주십니다.
3절을 보면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강은 세상에서 찾는 평면적 평강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샬롬”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이 평강을 가리켜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은 그 자체만으로도 크고 놀라운 것입니다.그런데 본문은 평강에 평강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죄는 분량이 많아질수록 고통과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만,평강은 많을수록 행복해지고 주께로 가까이 가게 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에게 이런 평강을 주십니까
첫째,심지가 견고한 사람입니다.
심지가 견고하다는 것은 마음을 정하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다시 말하면 변덕스럽지 않고 한마음으로 주를 따르고 섬기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의 예방 의학팀이 최근 대학생 173명을 대상으로 신장,앉은 키,다리 길이,체중,발 길이와 너비,발목 둘레 등을 마틴 신체 계측기와 체중계로 측정 조사했습니다.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 두시간 간격으로 측정한 결과 시간대에 따라 키나 체중 등이 달라진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면 앉은 키의 경우 오전 9시가 가장 크고 오후 5시가 되면 0.5cm가 줄어들며,서 있는 키의 경우 역시 오전 9시에는 16

9.7cm였던 사람이 오후 3시가 되면 16

8.9cm로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신체 조건은 철따라 변하고 시간따라 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사람의 심지가 시간대에 따라 변하고 철따라 변한다면 진실한 신앙을 갖기는 어려울 것입니다.하나님은 심지가 견고한 사람에게 평강의 복을 주십니다.
둘째,주를 의뢰하는 사람입니다.
주를 의뢰한다는 것은 주님만 신뢰하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주님도 믿고 세상 것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또 세상도 무척 사랑하면서 주님을 사랑하노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양동 작전과 같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4절은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라고 했습니다.즉,4절은 주를 의뢰해야 될 결정적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믿고 의뢰하는 것들은 일시적이고 유한한 것들이지만,하나님은 영원한 반석이시기 때문에 자신을 의뢰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평강을 주십니다.
진실한 평강을 원한다면 지금 당장 주를 의뢰합시다.그 언젠가는 무너져 버릴 것들을 기대지 맙시다.

3.첩경을 평탄케 해주십니다.
7절을 보면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의인이 가는 길을 곧고 바르고 편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시골에 있는 교회를 방문하기 위해 자동차로 길을 떠난 일이 있었습니다.
고속 도로는 쾌적하고 달리기에 기분이 좋았습니다.그런데 고속 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들어서자 길이 2차선으로 좁아졌고 자동차의 속도 역시 줄어들었습니다.2시간 정도 국도를 달린 후 시멘트로 포장된 시골 길로 들어섰습니다.승차감이 아스팔트 길만 못했습니다.
그리고 1시간 정도 달린 후 포장되지 않은 시골 길로 들어섰습니다.비가 오고 난 후였기 때문에 길 군데군데가 패여 웅덩이가 되었는가하면 크고 작은 자갈들이 돌출되어 있어 곡예 운전을 해야 했고 흙탕물이 튀겨 차가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그런 길을 1시간 이상 달렸습니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 코스였습니다.
평평하고 곧은 고속 도로에 들어서는 순간 평탄 대로의 고마움을 실감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 느낀 것이 있었습니다.그것은 우리가 걷는 인생 길 역시 여러 종류의 길이 있으며 평탄한 길을 걸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길은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결정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대학 진학을 위해 시험을 치릅니다.
수험생 전원의 한결같은 기대는 합격의 영광을 안는 것입니다.그러나 그것은 기대일 뿐 모두가 다 합격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왕 대학 시험 이야기가 나왔으니 부언하겠습니다.
당사자들은 물론 부형들은 대학 입학 시험을 인생의 종점으로 생각해선 안됩니다.
시험이란 출발이지 종점일 수가 없습니다.그리고 마자막 카드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실패할 경우 그 때문에 좌절한다든지 절망에 빠지게 된다면 그 사람은 두 번 세 번 겹치기 실패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겸허하고 조용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마음과 태도를 견지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험하고 늦은 길이 있는가 하면 쉽게 빨리 달리는 길도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사업하는 모든 사람은 한결같은 기대역시 사업에 성공하는 것입니다.그러나 그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의 본문은 주께서 그 첩경을 평탄케 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의인의 길”을 평탄케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살기 위해 힘쓰는 사람,하나님을 위해 의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자신의 의를 감추고 하나님의 의를 갈망하는 사람의 길을 그렇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토데이는 “하나님께서 잘 다듬어 만들어 놓으신 곧은 길을 외면하고 사람이 만든 굽은 길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시대는 사상도 가치관도 예술도 문화도 불타다 남은 고철처럼 풀기 어렵게 굽어 있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의 심성은 더욱더 굽어 있습니다.
그래서 진실도 정의도 통하지 않고 거짓과 폭력과 투쟁만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드보노와 가진 대담에서 언론인 호영진씨는 “인간을 다른 생명체들과 구별지을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성은 끝없는 소유 욕구라고 할 수 있다.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유심히 지켜 봤지만 인간이 ‘엄마’라는 말 다음에 배우는 단어는 ‘내 것’이라고 기억된다”라고 했습니다.
정당한 소유욕은 발전의 자극제가 될 수 있습니다.그러나 그것이 통제 불가능한 욕망으로 변신하면 모든 것을 탈취하고 수탈하고 통째로 삼키려는 죄악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보좌도 버리시고 우리들을 위해 종으로 오셨습니다.
우린 지금 그렇게 오신 주님의 성탄절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어떤 자세로 맞이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주변에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을 생각합시다.그들에게 정성과 사랑을 베풀어 줍시다.
그리고 성탄의 참뜻과 깊은 뜻을 다시 한번 생각합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과 역사와 세계의 굽은 길과 어그러진 길을 곧고 바르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큰 성탄 선물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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