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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 (눅 07: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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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시몬이라 불리우는 바래시인의 집에 예수께서 초청을 받아 음 식을 대접받는 중에 한 여인이 와서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사건 에 관한 내용입니다.

시몬의 식사대접과 여인의 향유로 주님의 발을 씻어 드리는 두 사람 의 헌신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시몬은 호된 질책과 비난을 받았고, 여인은 칭찬과 축복을 받고서 하나님의 평안을 품고 삶의 터전으로 돌아 갔습니다.

만주의 주이신 예수님께서 바래시인 시몬의 집에 와 계신 그 자체가 시몬에겐 더 할 수 없는 영광이었고, 인간으로서 필요한 복음받을 기 회를 얻은 것입니다. 이런 시몬에 비해 여인은 예수님을 보기 위해 시 몬의 집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들린 것에 불과 하며 매우 짧은 만남의 기회를 가졌을 뿐이었습니다. 이 기회는 예수님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 과 똑같은 평범한 기회였습니다.

그런데도 시몬에겐 심한 책망이 돌아갔고 여인에게는 죄의 용서와 평 화의 복이 선포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분명 두 사람에 대한 어떤 견해에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시몬이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청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깊은 흥미와 가르침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 습니다. 당시 다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증오하고 혐오한데 비해 바 리새인으로서 시몬의 태도는 칭찬 받을 가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인 도 흥미와 호기심을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몬의 관심은 지적인 것이며 예수님의 인격에 대한 흥미였습 니다. 시몬을 바리새인으로서 지성을 가진자였습니다.

자신이 알고있는 지식보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더 고상하다고 느낀것 입니다.시몬은 예수님의 종교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이 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의 관심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여인이 에수님을 찾은 것은 단순한 지식적 습득이나 인격을 배우려는 것이 아니라 분명 실패한 그의 인생, 수치스런 죄의 문제 때문에 예순 미을 찾은 것이었고, 주님의 말씀을 들었을때 그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그 결과 그의 감동적인 행동이 자발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시몬에겐 예수님의 가르침이 어떤 전율도 감동도 변화도 없었으나 여 인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고 그냥 있을 수 없는 마음으로 감동과 변화 를 느낀것입니다. 그녀의 헌신은 이 감동의 표현이었습니다.

주님앞에 나올때 우리의 자세와 마음 가짐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시 몬처럼 내 욕구의 충족과 이득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께 접근한다면 그 결과는 시몬을 대하신 예수님의 책망 뿐일 것입니다.

주님께 나아오는 자는 자신의 육과 영의 전체 문제를 지녀야 합니다.

예수님께 대한 관심은 단순히 이 세상 문제만이 아니라 저 세상의 문 제까지도 지녀야 합니다. 죄 문제가 이 세상의 문제만이 아님은 누구 나 알고 있습니다. 죄를짓고 두려워하는 것은 저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심판을 의식 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이 자신의 집안 으로 들어오실 때 발을 씻을 물도 떠 드리지 않았으며 그 발에 입을 맞추지도 않았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예우 하지 않은 태도 입니다.

그는 말과 행동이 달랐습니다.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한 것은 단순히 그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속셈일 뿐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여인의 행동은 예수님의 발앞에 엎드렸고 주님의 얼굴을 감히 쳐다보 지 못했으며 주님의 발에 입을 맞추며 눈물로 그 발을 씻기며 향유를 붓고 그 머리털로 닦아 내었습니다.

비록 시몬이 에수님을 초청하고 후한 식사를 대접하였다 해도 거기에 는 믿음도, 정성도, 존경심도, 겸손도 없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엘리트 계층이었습니다. 그는 그 여인에 비해 모든 면이 앞섰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예수님께 대한 헌신은 식사 한끼였고 형식일 뿐이었습니다.

영,육의 구원은 결코 아무렇게나 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마음과 뜻 과 정성과 목숨을 다해 그리스도를 위할 때 얻는 것입니다. 시몬은 끝 까지 예수님을 선생으로 보았으나 여인은 구세주로 보았습니다. 시몬 은 끝까지 자신이 자신의 것이었지만 여인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 니라 자신의 모든 것이 예수님의 것임을 발견한 것입니다.

예)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은 사울에게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사울은 이미 죽으신 예수 자신에 대해서는 한번도 핍 박한 적이 없었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은 내 백성을 핍박하는 것이 곧 나를 핍박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삶이 전능하신 한 님을 대적해왔던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함이 곧 교회와 그의 종들과 이웃들을 위 하는 것입니다.내가 남에게 하는 모든 헌신이 곧 하나님께 드리는 헌 신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남을 증오하고 적대시한 행위는 곧 하나님 을 향한 것이됩니다.

여인은 자신이 지은 모든 죄가 하나님께 지은 죄임을 깨닫는 것입니 다.그가 그때 지니고 있었던 전부를 아까워 하지 않고 깨뜨려 드릴 수 있엇던 것은 죄에 대한 사유의 보답이었습니다.

헌신의 원천은 바로 여기서 나와야 합니다. 예의나 대접의 차원이 아 닙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향한 나의 견해와 특히 죄에 대한 견해를 바르게 지녀야 합니다.

예) 예수님은 시몬에게 비유로 어떤 사람에게 빚을 진 사람이 둘이 있는데 한사람은 500데나리온을 졌고 한 사람은 50데나리온을 졌는데 둘 다 갚을 길이 없어서 주인이 둘의 것을 모두 탕감하여 주었는데 이 두 사람중 누가 그 탕감해준 사람을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 기를 많이 탕감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말이 옳다 이 여 인이 바로 많이 탕감받은자와 같이 나를 이렇게 사랑한다고 하셨습니 다.

문제는 500데나리온과 50데나리온 이라는 죄의 차이입니다. 예수님께 서 가르치시려는 비유의 목적은 죄 용서의 양이 아니라 죄를 용서 받 아야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죄인이 죄인되게 하는 것은 횟수나 양이 아니라 죄를 짓고자 하는 욕 망, 죄의 본성 그 자체가 이미 죄인으로 정죄하는 것입니다. 시몬은 바리새인으로서 철저히 율법주의자였기에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며 남 들에게도 그렇게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시몬에 비해 여인은 옳지 못한 생활을 하는자였으며 크나큰 죄인이었 습니다.심노은 주정꾼, 도박꾼, 도적질등, 도덕적으로 부패한 그들만 이 큰 죄인이며 자기는 50데나리온 정도의 가벼운 죄인일 뿐이라고 여 겨온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여인은 죄인이고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 조금 잘못하고 있 는 정도라는 죄에 대한 인식, 자신에 대한 인식, 하나님에 대한 인식 이 분명히 비 신앙적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위의 비유를 통해 500데나리온이든 50데나리온이든 둘 다 갚을 능력이 없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똑같이 죄인이며, 무일푼이며 법에는 똑같이 죄인으로 선고받고 옥에 가야합니다. 500데 나리온의 빚을 진 자가 용서받는 방법이나 50데나리온의 빚진자의 용 서받는 방법이나 방법은 똑같습니다. 그것은 주인이 용서해주는 길 뿐 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진리입니다.

롬 3:1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3:23 죄의 차이는 없으며,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3:27 그런즉 행위의 법으로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예수님이 내 죄를 지시고 죽으셨다는 믿음의 법으로서만 구원받는다고하 셨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도 그 하나만 못 지켜도 그는 범법자이며 그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내 죄는 아주 적고, 죄라고도 할 수 없다 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죄를 많이 짓고,적게 짖고의 수와 상관없 고, 큰죄, 작은죄 관계없이 하나라도 범법한 자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 며 그대로 두면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아무리 작은 죄라도 스스로 자신의 죄를 지을수도, 속 죄할 수도,제거할 수도 없는 무력한 자들입니다. 오직 용서의 한 길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리어 통회의 절망의 눈물을 흘리는 참회의 길뿐입 니다.

예수님께 향한 헌신은 바로 이 참회의 자세에서 나와야 합니다. 귀한 옥합을 깨뜨려도 내 죄 용서의 은총에 대해서는 티끌의 가치도 없으며 내 눈물로 에수님의 발을 씻고 내 머리털로 그 발을 닦는 전 존재의 헌신이라해도 결코 죄 용서의 사랑에는 만분의 일의 보답도 못된다는 그 겸손과 감사와 감격속에서의 헌신만이 참된 것이며 하나님께서 영 광을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며 헌신인 것입니다.

롬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해 죽으셨도다.

분명 우리가 갚을 수 없을때 예수님께서 대신 내 죄의 빚을 갚아주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믿음으로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믿음의 헌신은 결코 시몬과 같은 태도나 생각에서 가질 수 없습 니다. 시몬은 예수님과 같이 있었으나 예수님의 백성이 아니었고, 식 사를 대접하였으나 헌신이 아니었고, 그의 집에 모셨으나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향한 믿음 생활과 헌신이 이런 차원이라면 그 결과는 수고에 대한 아무런 칭찬과 보상은 고사하고 호된 책망과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더 이상 나는 내것이 아니며, 내 소유 또한 내것이 아니기에 눈물로 씻고 머리털로 닦는 전 존재를 통해 헌신한다해도 그것은 자랑할 것이 아니고 오직 죄용서에 대한 감사의 작은 정성에 불과한 것이므로 그 헌신 자체가 영광이며, 감사며, 축복으로 여거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헌신의 결과로 하나님의 칭찬과 구원의 감격과 평강의 축복을 얻어야 날로 새 힘을 얻게 되고 기쁨으로 주님영광위해 교회와 주의 종들과 형제자매와 이웃을 향해 묵묵히 섬기며 헌신하는 복된 성도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런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름없는 여인처럼 죄용서와 주의 사랑을 얻어 그 감격과 은혜 로 헌신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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