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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의 생활화2 (눅 03: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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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사람들의 신앙은 반드시 성장하고 그 삶에 변화가 있다는 것을 앞 장에서 보았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누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통해서 기도에 대한 교훈을 배우고자 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하기 위함이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의 모습 속에 나타난 교훈을 통해서 우리가 은혜를 받고, 우리의 기도 생활이 변화되기를 원합 니다.

세례받으실 때 기도하심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눅 3:21,22).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이 예수님의 사역의 출발인데, 세례를받 으실 때에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기도를 하니까 세 가지 사건이 나타났습니다.

첫째로, 하늘이 열렸습니다.

교회 생활 하면서 하늘나라가 잘 안 보이고 하늘의 세계가 닫혀져 있는 것 같을 때, 하늘 문을 여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기 도입니다. 기도하면 하늘이 열려져, 하늘이 가까워 보입니다. 이 것은 기도의 은혜입니다.

둘째로, 성령께서 임했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가슴 속에 개인적으로 체험하지 못했습니까? 방법은 간단합니다. 당신이 기도를 하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영 이 당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당신의 영혼에 찾아오시고, 당신의 가 슴을 뜨겁게 하고 당신의 삶에 변화를 주시고, 당신에게 눈물과 회개를 주십니다. 기도할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뜨겁게 역사 하시는 그 은혜가 생깁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경험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성령께서 우리 마음 속 에도 임재해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께서 자신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신다는 것과 우리와 함 께하시고 함께 일하신다는 사실을 나타내 주십니다. 이것이 기도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 들립니다.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만일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하나님께서 영원히 나를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눈물이 날 만큼 가슴 깊이 느껴 보지 못했다면,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기도 속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무척 좋아하고 무척 기뻐한다 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당신은 주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까?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기 원 합니까? 저는 스물다섯 살 되었을 때에, 나를 영원히 사랑한다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너무나 감격하여서 성가대에 앉았다가 바닥에 고꾸라져서 한없이 눈물을 흘린 경험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의 사랑의 음성을 경험하니까 세상이 밝아지고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듣게 될 때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 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때때로 수십억의 인구 중에 나 같은 사람이 뭐 그리 중요한가 하 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자신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 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느 냐?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온 세계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음성이 잘 안 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과 늘 대화하고 기도하면,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그 사랑이 인간의 어떤 사랑과도 비교될 수 없는 무한하고 절대적인 사랑이라는 것을 알 게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좋아서 결혼도 안 했습 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너무 좋지만 결혼은 했습니다.

기도할 때 예수님이 경험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하 늘 문이 열려서 하늘의 세계가 보이고, 성령께서 우리 가슴을 뜨 겁게 해 주시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게 됩니다. 이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성장하지 않겠습니까?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 님을 체험하고 영의 세계를 체험한 사람들은 성숙하게 되어 있습니 다. 예수님의 첫번째 경험은 기도하는 가운데 일어났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기도하심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눅 5:16).

기도는 조용한 곳에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들은 많은 사람들 에게 둘러싸여 바쁘게 살기 때문에, 고요한 곳에 혼자 있는 시간 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와 그분에 대한 놀라운 경험 은 조용한 곳에서 생깁니다. 나와 주님의 단 둘의 만남을 통해서 말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바쁜 생활을 하다 보니까 조용한 시 간을 만들기가 힘들 때가 있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결사적 으로 고요한 시간을 만들려고 하십시오. 고요한 시간과 장소가 없 으면, 하나님과 나와 단 둘만의 깊은 대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하려면 조용한 곳이 필요합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조용한 시간 들이 필요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없는 사람은 정신이 돌아 버 릴 수가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마음의 안정을 찾으 려면, 나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 때문에 경건의 시간(Q.T.)을 갖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권 하기도 합니다. 가정 예배를 나 혼자만의 시간과 대치하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가정 예배는 가정 예배이고, 나와 주님과의 관계 는 둘만의 관계입니다. 아침에는 주님과 조용히 만나고, 저녁에는 온 가족이 모여서 오늘 자신이 읽은 말씀에서 깨달은 것을 서로 나누는 것도 좋습니다. 아침에 주님과 나와 만나는 조용한 장소 와 시간을 꼭 확보하십시오. 이것이 예수님의 본(本)입니다.

중요한 일을 놓고 오랜 시간 기도하심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눅 6:12).

인생의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는 오래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13절 이후에 보면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뽑습니다. 이 열두 제자는 미래의 교회를 결정할 사람들입니다. 누구를 제자로 뽑는가 에 따라서 이 기독교 역사와 세계의 역사와 하나님의 영원하신 역 사에 결정적인 영향이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는 집중적으로 장시간 동안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이 있 기 전에는 반드시 집중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경우는 산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내가 어떤 대학을 갈 것인가? 무엇을 공부할 것인 가? 이런 문제들을 고민할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열정적으로 기 도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공부하기 원하시며 ,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며, 내가 주를 위하여 이 땅에서 무엇을 하며 살리이까? 내 인생에 대한 뜻이 무엇이니이까?라고 하나 님께 물으십시오. 아버지 어머니가 이것 해라, 저것 해라 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적극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 결혼도 그렇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합니다. 사 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업을 할 것인지, 어디서 할 것인지 , 언제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제가 워싱톤에 처음 가서 일 년쯤 지난 후에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예수를 믿 게 만들어야 할 텐데 하는 중에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 50명 이 몰려왔습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밤을 새워 가 며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의 결과로, 워싱톤에서 열린 3일간의 최초의 대전도대회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들 중에 목사가 된 사람도 있고, 장로가 된 사람도 있고, 집 사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도 주님을 섬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청년들 중에는 훌륭한 제 2세의 지도자가 된 사람도 있 습니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기도해야 합니다.

이사할 때는 어디로 갈 것인지, 어떤 집으로 갈 것인지를 기도해 야 합니다. 병이 나서 입원할 때도 주님 앞에서 열정적으로 시간 을 들여서 기도해야 합니다. 인생의 중요한 사항들을 앞두고 우리 는 예수님이 기도하신 것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마 지막이 좋습니다.

혼자 기도하심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主)와 함께 있더니 (눅 9:18).

여기에서는 혼자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온 교회가 기도할 때도 있고, 가족이 기도할 때도 있고, 둘이서 기도할 때도 있고, 혼 자 기도할 때도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혼자 기도하시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하나님 앞에서 찾았습니다.

기도의 동역자들과 함께 기도하심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 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눅 9:28).

혼자 기도할 때도 있지만, 같이 기도할 사람도 필요합니다. 어떤 때는 혼자 기도해야 기도가 잘 됩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누군 가 같이 기도할 때 혹은 누군가 날 위해서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을 때 힘이 더 생깁니다. 자신이 관계를 맺고 있는 기도의 동 역자들과 평상시에도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심지어는 전화로 짝기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왔다갔다 번거로우니까 전화로 서로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미국에는 「칸퍼런스 콜」(conferenc e call)이라고 해서 서너 사람이 한꺼번에 들을 수 있는 전 화 시설이 있습니다. 이것을 이용하면 두세 사람이 전화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같이 기도하시려고 세 사람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에 얼굴이 변하고 옷이 빛났습니다. 이것 이 기도 속에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즉, 기도할 때 우리가 변 합니다. 이런 경험을 할 때 우리의 신앙이 자라지 않을 수가 없 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성숙하게 하시고 예수 그 리스도를 닮게 하시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기도 생활입니다. 어떤 때는 몇 명의 기도짝과 함께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당신을 위한 기도의 동역자는 누구입니까? 제가 이 교회에 와서 감동을 받은 것 가운데 하나가 다락방 모임 입니다. 다락방 사람들이 얼마나 똘똘 뭉치고 서로 돕고 위해서 기도하는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제가 늘 원하는 모습이었는데, 이 교회에 와서 보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대여섯 명이 모 여서 기도의 동역자가 되어 같이 기도하고 같이 돕고 같이 친구가 되어 주는 이런 모습이 기도의 생활에 필요합니다. 그럴 때에 큰 유익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중보 기도 하심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 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 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 1,32).

예수께서는 대중을 놓고 기도하시기도 하고 음식을 놓고 감사의 기 도를 드리시기도 하지만, 한 사람을 위해서 정해 놓고 중보 기도 를 하시기도 했습니다. 앞의 구절에는 베드로를 위해서 특별하게 기도하신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도 특별히 누구를 정해 놓고 어떤 때에 특별한 기도를 한 경 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나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윗 사람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약한 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는 것을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남을 위해서 중보 기도를 하는 것은 예수님의 방법입니다. 남을 위해서 기도하고 남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결국은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남을 위해서 살 때 우리의 마음이 커집니다.

내가 남을 위해서 기도한 것이 응답될 때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즐겁고 얼마나 기쁩니까? 나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사는 것, 거기에 참 삶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 에서도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을 위해서, 약한 사람의 짐을 짊어 지기 위해서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남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다 는 것이 벌써 내가 신앙적으로 이미 강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기도해 줌으로써 신앙적으로 더 강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기도하심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 시니(눅 22:41,42).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찾아서 그대로 살기 위해 결사적으로 기 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 루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이 땅에 태어난 데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께서 영원 전부터 우리를 이 시대에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신 것은, 우리의 성격과 지능과 능력과 모습을 통해서만 이 땅에서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 나는 무엇 때문에 세상에 태어났는가?, 나는 하루 세 끼 밥만 먹는 기계인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아닙니 다. 당신은 다릅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과 외모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고 학벌도 다릅니다. 왜 당신이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으로 태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이 아니고는 이룰 수 없는 하나님 자신의 뜻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뜻을 알기 원하십니 까? 주여, 내가 이 땅에 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영원한 하 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나는 이 땅에서 무엇을 하기 위해 존재 하는 것입니까? 하고 하나님께 물어 보십시오.

물론 우리가 육신적으로, 인간적으로 원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마 치 예수께서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 옵시고… 하신 것처럼 내 개인적인 뜻이 있습니다. 누구나 다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가치 있게 사는 것은, 이 인생 속에서 나 혼자만의 삶과 내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것을 이루며 사는 것입니다.

여기에 가위가 하나 있다고 해 봅시다. 가위는 무엇인가를 자르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을 못을 박는 데 사용한다면 가위는 제 구 실을 못하는 것입니다. 볼펜은 글씨를 쓰기 위해서 있습니다. 자 동차 열쇠는 반드시 자동차만을 위해서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 하는 모든 것은 목적이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도 목적이 없는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조그만 볼펜도 목적이 있는데, 이 우 주의 가장 중요한 존재인 우리 인간에게 삶의 목적이 없겠습니까?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가까이해 보십시오.

주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렇게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십니다.

십자가의 길은 부활의 영광이 따릅니다. 십자가를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고난을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러나 고난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고난 저편에는 반드시 부활의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고난이 있습니까? 당신의 고난은 고난 그 자체만이 목적이 아닙니다. 고난을 거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 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성숙해 가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인 생의 모든 것에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목 적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불행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의 뜻을 결사적으로 찾아서 그 뜻을 하루하루 이루며 사셨습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십니다.

용서를 위해 기도하심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 23:34).

예수께서 남을 용서하는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려 하는, 자기를 때리고 욕하고 침뱉는 사람들을 위해 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를 분노와 미움에서부터 해방시 켜 줍니다.

당신의 마음에 억울한 것이 있습니까? 괘씸하게 느껴지고 속상한 것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보았습니까? 당신 이 아무리 그 사람을 잊어버리려고 애를 써도 잘 안 될 것입니다 . 자꾸 생각납니다. 미워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안 됩니다.

언제 그 미움에서부터 해방됩니까? 그를 위해서 기도할 때입니다.

그를 용서하는 기도를 하고, 그가 잘 되기를 위해서 기도할 때 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서 용서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들을 위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운전 면허를 받으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옷을 허 름하게 입고 갔는데 앞에 섰던 사람이 얼마나 저를 무시하는지 이 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뭐라고 한마디 해 주고 싶었습 니다. 그때 갑자기 내가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의 아들이고 만왕 의 왕의 아들인데, 그 사람이 몰라서 그런 걸 어떻게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여, 무식해서 그러는데 용 서해 주옵소서 했더니 괜찮았습니다. 괜찮기는 괜찮은데, 지금까 지 기억이 납니다. 악을 이기는 방법은 선을 행하는 길밖에 없습 니다. 미운 사람은 사랑을 해 버려야 이기지,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서는 좀처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여기 종이 두 장이 있습니다. 오른쪽 종이를 한번 보십시오. 그 상태에서 오른쪽 종이에 대해서 생각하지 마십시오. 잘 됩니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생각이 납니다. 이번엔 왼쪽에 있는 종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오른쪽 종이를 잊어버리고 왼쪽 종이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왼쪽 종이를 생각하 니까 오른쪽 종이는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어떤 사람을 미워하지 않게 해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아예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용서하는 기도를 해 버리고 아예 그를 사랑해 버리면 미움이 저절로 없어집니다. 이런 모습이 참 신앙인들의 모습입니다.

마지막까지 기도하심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마치신 후에 운명하시다(눅 23:46).

예수님은 마지막 숨을 거두시면서 자기의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기도가 늘 생활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호흡을 할 때에도 기도로 끝난 것입니다. 나도 죽기 전에 이 렇게 기도하고 죽을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평상시에 훈련을 해 놓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기도하시고 기도하시고 또 기도하시더니, 마지막 호흡 때에도 기 도하시고 끝난 것입니다. 이것이 비밀입니다. 제 소원도 마지막 죽을 때에 예수님처럼 기도하고 죽는 것입니다.

주여, 제 영혼을 받아 주시옵소서. 제게 아름다운 인생 주시고 행복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희 교우 가운데 한 분이 백화점 앞에 주차해 놓은 자신의 차에 탔는데, 시동도 걸리기 전에 자동차가 저절로 가더랍니다. 그것 도 아주 쏜살같이 빠른 속도로 말입니다. 큰 길을 건너서 언덕을 향해서 질주하다가 어디에 꽝 부딪쳤답니다. 잠깐 30초 사이인 데 운전대를 잡고 있는 집사님이 붕 떴다가 언덕으로 떨어졌습니다. 떨어지는 순간, 집사님이 주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 고 기도했답니다. 그런데 주님이 아직 너무 일러 하셔서, 그 밑의 물 웅덩이에 콱 박혔는데도 별로 다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 집사님의 간증을 듣고 참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집 사님은 자동차가 붕 뜰 때에 아이쿠 기도 생활 해야지 한 것 이 아닙니다. 늘 기도하던 분이기 때문에 위급한 상황의 몇 초 사이인데도 주여, 내 영혼을 받아 주시옵소서 한 것입니다.

차는 두 동강이가 났는데, 집사님은 하나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죽을 것도 기도하니까 삽니다. 데리고 가 달라고 해도 안 데려갑 니다. 언제나 기도하는 사람들은 위기가 올 때도 즉각적으로 그 입에서 기도가 나옵니다. 언제나 기도 생활 함으로 신앙이 성숙해 집니다.

우리가 마지막 숨을 내쉴 때, 교통 사고로 갈는지 병석에서 갈는 지 수술대에서 갈는지 아니면 조용하게 갈는지 모르지만 모두 다 주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는 기도를 하고 갈 수 있기 바랍니다.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어서 마지막까지 기도하신 예수님 의 모습을 닮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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