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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슬픔을 통한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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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어느 누구에게나 갑작스럽게 예고없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남편 월터가 영원히 떠나버릴 것이라는 예감이 들기는 했었지만, 그가 시월 어느 아침에 조반을 들기 직전 갑자기 세상을 떠나리라고는 상상을 못했었습니다.
그날 아침 그는 여느때처럼 모닝커피를 들고 우리 침실로 들어 와서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잉그리드, 오늘은 뭔가 내 몸이 심상치 않은 것 같애. 그런데 어디가 아픈건지 모르겠어.' 그런 다음 그는 침대에 드러누웠습니다.
나는 그에게 찻잔을 건네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의 손에서 힘없이 미끌어지면서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나는 재빨리 침대로 달려 갔지만, 이미 그는 마지막 숨을 들이키고 있었습니다. 오분 후 도착한 의사는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었습니다. '너무 늦었어요. 이미 심장이 멈추었어요.'
우리의 작은 집은 오스트리아의 산 중에 있었습니다. 그날은 산봉우리에 햇살이 비치고있는 아름다운 가을날이었고 그날 따라 부활에 대한 소망은 죽음보다 강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월터가 죽은 후 하늘의 빛이 그 방 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는 그가 주님과 함께하는 또다른 삶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그의 죽음에 대해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두려웠습니다. 이제 나는 미망인이된 것입니다. 앞으 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나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 육 개월 동안 나는 그냥 멍하게 지냈습니다. 모든 것이 잿빛으로 보일 뿐이었습니다. 해야 할 일상적인 일을 하긴 했지만 마치 내가 나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인 것처럼 뒤로 물러서서 나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저 사는 흉내만 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월터와 나는 종종 떨어져 지낸 적이 있긴 했습니다. 그는 목회자로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광범위한 상담사역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디에 가든지 그는 수시로 전화를 걸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마침내 그가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여행을 떠나, 이제는 전화 걸 일이 다시는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동반자를 잃어버린 끔찍한 충격을 감당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의 생활과 홀로 씨름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만일 나 혼자였더라면 도저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 을 필요로 했습니다.
내가 언제라 도 믿고 만날 수 있고, 혼자 있는 것이 감당하기 어려울 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필요 했던 것입니다. 나는 누군가가, 내가 아직도 살아있으며, 제대로 먹고, 마시고, 운동하고, 잠잘 필 요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때마침 그 필요를 잘 알았던 한 가까운 친구가 나를 자기 가정에 초대해서 식사를 나누고, 차를 대접하고, 친절한 질문들을 계속해 주었습니다. 내가 나의 느낌들을 극복하고서 고통스러운 기억들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도와 주었던 것입니다.
나의 다섯 자녀들과 나의 형제 자매들은 나와 동일한 슬픔을 느끼고 있었는데, 특히 사십년 전에 남편을 잃은 내 어머니는 더욱 나를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과부들은 모두죄의식을 느낍니다. 우리 모두는 놓쳐 버렸던 기회들, 불친절하게 혹은 생각없이 내뱉았던 말들, 그런 식으로 하지 않았더라면 하고 생각되는 일들을 기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담임 목사님께서 나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나의 실수들을 용서해 주셨다고 확신시켜 주셨을 때에야 나는 비로소 거기에서 자유할 수 있었습니다.
몇 달 후, 나는 다시 세상의 색깔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따스한 햇살을 느낄 수도 있었고 아이들과 즐거워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내 자신안에서 평화를 누리기 시작했으며 혼자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소중한 존재의 상실로 인한 상처가 회복되 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요구됩니다. 그런 상처는 두 주일만이나, 여섯 주만이나, 심지어 일 년동안 에도 치유되지 않습니다. 내 경우에는 내적으로 완전히 치유받는데 삼 년이나 걸렸습니다.
그동안에도 일하고 여행하고 강연을 계속했는데도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남편을 사랑했던 여인들은 아무도 그들의 남편을 잊지 못합니다. 아니, 오히려 잊고 싶어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의 경우에도 월터와의 많은 사랑의 추억들을 생각하는 것은 나에겐 커다란 위로가 되곤 했습니다.
그렇다면 슬픔은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을까요?
첫째, 내 남편이 죽는 것을 본 후 나는 그것이 내 자신의 삶에도 언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했습니다. 아무도 죽을 준비가 완전히 될 때까지 살 수는 없습니다. 남편의 죽음 이라는 경험을 통해 나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비록 내가 아직도 필요한 존재이며, 주님께서아직도 내게 시키실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좋기는 하지만 말입 니다.
또한 나 자신의 죽음의 가능성을 직시함으로써 나는 커다란 절박감을 가지고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만일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가장 중요한 일을 다 한 것인가?' 라고 나 자신에게 묻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중요한 일과 사소한 일을 구분하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둘째, 슬픔은 나에게 새로운 종류의 평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는 가장 어려운 일, 내가 아주 두려워했던 일-남편의 죽음-을 직면해야 했고, 그러고도 살아 남았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워 할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된 것입니다.
셋째, 슬픔은 예수님과 나의 관계를 강화시켰습니다. 나는 십대에 나의 훌륭하신 육신의 아버지를 잃어버렸는데 그것은 내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의 관계를 시작하게 하는 시초였습니다. 성인 시절을 지나는 동안 내가 하늘에 계신 나의 하나님 아버지께 의탁하지 않고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을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주님과의 개인적 관계가 없었더라면 결코 그 시기를 헤쳐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넷째, 슬픔은 부활에 대한 나의 소망을 강화시켰습니다. 월터가 죽은 후 나는 몇 차례의 놀라운 부활절 체험을 했고 그것으로써 나는 우리가 언젠가 다시 연합하게 될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확신은 점점 더 자라고 있습니다. 언제 부활할지는 모르지만 월터와 내가 예수님과 함께 있게 될 것은 너무나 확실합니다.
슬픔에 대한 체험의 정수(精髓)는 우리 자신 안에서 진정한 평화를 누리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내적 자아가 평안할 때만 우리는 세상 속에서의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존재를 잃는 경험을 하게 될 때 고통과 상처와 슬픔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며 필요하기까지 하다고 나는 믿습니다.
그것은 불신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해 당될 것입니다. 느낌 그 자체는 옳지도 그르지도 않습니다. 그것들은 그냥 존재할 뿐입니다. 일단 우리가 그것들의 존재를 받아들이면 우리는 두 손에 그것들을 들고 가서 주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슬픔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사랑'에 대해 우리가 지불해야하는 댓가입니다. 남편의 죽음 이후, 나에겐 여전히 훌륭한 친구들과 나의 귀한 주님, 그리고 매일 찾아오는 기 쁨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삶 속에는 월터만이 채워줄 수 있었던 텅빈 공간이 있습니다. 나는 그것에 대해 결코 부정적인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도 아직 그것을 메꾸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선 그 대신 그 커다란 공간위에 다리를 놓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다리는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대단히 훌륭한 길이 되었습니다.
/마틴 마티(Martin Ma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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