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 (욥 26:1-12)

첨부 1


대개의 사람들은 몸이 건강하며 의식주가 걱정이 없고 부부간에 금술이 좋 으면 그것을 보고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녀가 잘 되고 사업이 번영 하는 일 등을 가리켜 그것이 행복이라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점 에 있어서는 비단 성도가 아닌 사람뿐만 아니라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별 다 름없는 행복관인듯 합니다. 물론 이것이 행복의 일면이 아닐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행복들은 복음서가 가르쳐 주고 있는 행복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깊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선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 는 복이 있나니'(눅6:20),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눅6:21)라고 하신 말씀만 잠깐 들어보아도 그 차이는 능히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당시 욥은 자기를 가리켜 불행한 자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정 녕 행복한 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 욥 자신이 한 말이 그점들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행복한 자는 누구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불의를 말하지 않는 자입니다.

 욥은 당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 지 아니하며 내 혀가 긍휼을 발하지 아니하리라(4절)고 하였습니다. 이 것은 진정 어떤 혹독한 처지에 이르더라도 불의에 관한 말은 절대로 입 밖 에는 내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여 준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절대로 불의 를 말하지 않는 자가 진정 행복한 자입니다. 사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자신 의 처지가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은 아무 상관이 안 됩니다. 다 른 사람에게 칭찬을 듣든지 아니면 비난을 듣든지 혹은 건강하든지 아니면 병들었든지 사업에 성공했든지 아니면 실패했든지 극단에 이르러 살게 되 었든지 아니면 죽게 되었든지 그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그 입에서 불의한 말 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 행복한 자입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혀 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의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3:10)고 하였습니다. 또한 베드로도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라'(벧3:10)고 하였습니다. 진정 어떤 처지에서도 불의를 말하지 않는 자야말로 참으로 행복한 자라는 말입니다. 행복한 자가 되기 원하십니까 진실로 불의한 말을 하지 않으려고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순전을 버리지 않는 자입니다.

--다음으로 욥은 극심한 고통 중에서도 '나는 단정코 죽기 전에는 나의 순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5절)고 하였습니다. 그 어떤 최악의 처지에 이르더라도 자기의 순전성을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여 준 말입 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서의 순전성을 신앙의 생명이요 자기 남편을 향한 한 아내의 정조와도 같은 것입니다. 외경가운데 하나인 지혜서를 보면 '정직 한 마음으로 주님을 생각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아라 는 말이 있습 니다. 정녕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을 생각하고 찾는 태도, 이것이 바로 하 나님을 향한 순전성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참된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죽기를 결의하고 순전을 지키는 것은 곧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처럼 절대로 신앙의 순전성을 버리지 않는 자가 진정 행복한 자입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그의 처지가 어떠냐 하는 점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폴리갑은 처형자들이 예수만 버리면 살려주겠다고 제의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은 한번도 나에게 해 를 끼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불길에 휩싸여 갔습 니다.. 진정 이런 일이야말로 신앙의 순전을 지키기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린 것이라 하겠습니다. 진정 행복한 자가 되기 원하십니까 그러면 하나님 께 대한 순전을 버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5:11).

 3.자기를 책망할 것이 없는 자입니다.

--욥은 계속하여 내가 내 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일평생 내 마 음이 나를 책망치 아니하리라(6절)고 하였습니다. 진정 이 말은 욥 자신이 삶의 마지막 날까지 스스로 부끄러울 짓은 절대로 행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여 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윤동주 시인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희구했던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그처럼 자기 안에서 자책할 만한 무엇을 찾아낼 수 없는 자가 있다 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정녕 행복한 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자책할 것이 없는 자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물론 하나님을 향해서도 담대한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런 사람은 하늘이 무너져도 두려울 것 이 없는 사람입니다. 위대한 문호 톨스토이는 다른 사람에게 고기를 먹는 것은 부덕한 일이라고 가르쳤으면서도 자기는 부엌에서 남몰래 고기를 먹곤 했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사람들은 다같이 그처럼 떳떳지 못한 점을 지니고 있습니다.그러기에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지탄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는 자가 되려고 힘써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마다 다 건강을 원하고 성공을 원하고 번영을 원합니 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행복관은 좀더 하늘을 지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실 내가 불의를 말하지 않을 수 있고 신앙의 순전을 버리지 않을 수 있으며 조금도 자기를 책망할 수 없는 데까지 이른다면 그것이 곧 참된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정녕 지상의 행복은 자기 하나만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복음적인 행복은 뭇 사람을 평안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애쓰는 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 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