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믿어지지 않는 기적

첨부 1


외할머니는 어미 잃은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내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셨습니다. 외삼촌이며 이모들도 나의 뒷전이었고, 그 중에 제일 힘들었던 사람은 나보다 3살 위인 막내 이모였습니다. 옷이며 신발 등 무엇이든지 내가 우선이었지요.

내가 중학교에 갈 무렵, 아버지는 당신 곁으로 나를 데려가셨어요. 그런데 새어머니도 내 마음에 안 들었고 셋씩이나 되는 동생들도 싫었습니다. 당연히 맏이가 되는 나에게 돌아오는 동생들의 뒷바라지며 청소, 빨래 등 나는 갑자기 콩쥐가 된 것 같았습니다.

수없이 가출하여 어른들이 질색하게 만들다가는 외할머니께로 아주 갈 수밖에 없는 형편에 이르렀습니다. 다행히, 진학한 고등학교가 미션 스쿨이어서 채플시간에 특송을 해가며 피아노와 바이얼린 등 악기와 가까워졌고, 바이얼린 전공으로 대학 진학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대학생활로 시작된 독립형태는 일부 학비 부담을 위한 아르바이트, 고독과 같은 방황 등으로 학교 공부를 충실하게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다만 기독학생회 모임만이 위로요, 활력이 되었고, 바로 그 곳에서 배우자도 만난 것입니다.

기계공학도인 남편은 말없고 충직한 신앙인입니다. 그저 아내와 자식 그리고 교회와 회사가 전부요, 아내의 재주를 대견해하며 무엇이든지 아내의 뜻을 받들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엄마 잃은 설움을 방패삼아 내 멋대로였고, 시집가서는 순전하고 우직한 남편의 조건 없는 사랑 속에서 지나치게 당당했습니다. 신혼이 시작되면서 나는 음악학원을 개설했습니다.

그럭저럭 운영이 되기에, 나는 부자가 된 듯이 어려운 사람들을 계획성 없이 돕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 재활원, 고아원, 양로원 등 딱한 처지를 보면 앞뒤 분별없이 구제금을 드렸습니다.

살림은 뒷전, 그런데 어느 시점에 이르자, 나는 집과 음악학원 상가를 다 처분해도 메꾸어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었습니다. 막막하고 기가 막혔습니다.

그 동안 그저 기계적으로 오가던 교회, 그리고 말씀 앞에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가 없었고, 남들이 다닌다는 기도원을 먼발치에서만 바라보다가 급기야 나도 찾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주님 앞에 드러난 내 모습은 자기의 덩어리 고집, 아집 투성이였습니다. 통곡의 통회, 벼랑 끝 같은 빚더미를 어떻게 해야 할는지 그저 아빠에게 매달리 듯 매어 달려 데굴데굴 구르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온 뒤에 언제나 새벽 2시에 일어나 기도하며 내 삶의 새로운 길을 구성하며 나 자신의 변화를 간구했습니다.

자신이 생각할 때 모든 것이 옳았던 것 같으나 하나님 아버지의 기준하고 맞지 않을 때, 복을 부어 주시려는데 그릇이 깨끗하지 않을 때, 아버지께서는 그 그릇을 청결하게 만들기를 기다리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매일 새벽 기도하면서, 기르치고 있던 학생들로 현악단을 만들어 아름다운 음률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달쯤 되었을 때, 이상하리만큼 학원을 찾는 학생들이 걷잡을 수 없이 늘었습니다.

학원 수업이 없는 토요일, 퇴근 후, 시간을 쪼개다 못해 새벽에 레슨을 받겠다는 학생까지 생겼습니다. 마치 남편은 런던 지사 근무 발령을 받았습니다. 나는 2년 안에 빚을 정리하고 뒤따라가겠다는 제의를 했습니다.

언제나 나를 철석같이 믿어주는 남편은 두말없이 승낙했습니다. 나는 학원 학생들로 '현악 앙상블 팀'을 만들고 시골 교회, 고아원, 재활원, 양로원 등으로 위문을 다녔습니다. 방문 받는 분들께도 위로가 되었지 만, 다녀온 학생들이 놀라운 변화를 보였습니다.

근검, 절약, 인정이 생기고 효도를 깨닫고, 자립정신과 인내심이 생겼습니다. 주님께서 동행하시며 기뻐하시고 생명수를 부어 주시어 우리 모두의 영혼이 빛 속에서 자라게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년 작정을 했던 빚 청산은 1년 이상 단축되었습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기적이었습니다. 나는 남편이 근무하고 있는 영국으로 건너가 음악 공부를 마음껏 할 작정입니다. 그런 뒤에 귀국하면 먼저 신앙의 음악인을 양성하여 이 세상 곳곳에 찬양을 심겠습니다.

그리고 돈이 없으면 음악 교육을 받기가 너무도 어려운 우리 사회에서 교육비에 굴하지 않고 음악공부를 할 수 있는 음악학원을 설립하는 것이 나의 소원입니다. 아마 주님께서 이 일을 나에게 맡기시려고 훈련을 시키셨을 것입니다.

음악의 어머니가 되게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주신 음악의 인재들에게 돈 없이 값없이 가르치게 하시기 위하여 나를 단련하셨으리라 믿습니다. 나는 승리의 길을 향하여 달려갈 것입니다.
<주부편지 98년 2월호>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