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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씀으로 변화 받는 삶 (요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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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관원 니고데모와 예수님과의 대화는 매우 잘 알려진 성경구절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유대인관원이자, 바리새인인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당시의 유대인중의 저명한 관리인이자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유대인의 관원이란 종교,정치,경제,사회,생활 제반을 관할하는 산헤드린(70명으로 구성된 법정)의 회원을 가리킵니다. 즉,사법과 행정이 통합된 예수님 당시의 사회의 지도자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은 유대교의 한 종파로서 철저한 외식주의자요 율법주의자요 관례와 규례를 중시하는 종교분파를 말합니다. 이들은 메시야가 올 것을 믿었으며 구약의 성경을 인정하고 미래의 영혼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구원은 율법을 철저히 지킴으로 얻어진다고 믿는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의 철저한 율법주의를 싫어 하셨습니다. 유대인 관원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아마도 주님을 만나기 좋은 시간에, 자신의 행위가 자칫 드러나기가 두려워서 밤에 한적한 시간에 주님을 만나기 원했던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이제 주님이 갈릴리에서 또는 예루살렘에서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행했던 것을 알고, 또한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라는 사실을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단지 랍비, 선생님이라 칭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저 기적을 행하는 정도의 선생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모든 명예를 지니고 있었지만, 인생에 어떤 결핍을 느끼고 있던 복잡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과 깊은 대화을 원했습니다. 이 분이 보통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은혜를 값없이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니고데모와 같은 외식적인 모습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깊은 영적 대화에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알기 위해, 그분과의 깊은 영적대화를 위해 우리의 모든 것을 투자해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가장 값진 시간이요, 가장 소중한 시간이 바로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입니다.오늘 본문속에서 니고데모와 주님과의 대화속에서 우리의 참모습과 함께 주님의 놀라운 진리인 성령과 물로 거듭나라는 이 말씀을 다시한번 마음속에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1. 니고데모는 하나님을 피상적으로만 아는 자기 의(義)를 주장하는 사람이었습니다.(요3:1-2) 1) 본문설명:
1절-2절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의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본문의 니고데모는 헬라식 이름으로 '백성의 정복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니고데모는 바리새인 중에서도 유대인의 관원이라 하니 매우 지위가 있는 유대인의 지도자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관원의 뜻은 헬라어로 (아르콘)으로 산헤드린의 회원을 가르킵니다. 또한 유대인 관원은 전세계에 있는 유대인들의 종교적 문제를 다스리는 사법권을 가진 자였습니다. 이러한 니고데모는 얼마든지 거짓 선지자로 혐의를 받는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는 능력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이 예수께 나왔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모든 유대인 관원들에게 거짓선지자로 비난과 멸시를 받고 있는 중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다른 관원들과는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행하고 있는 기적과 표적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이 표적은 하나님 이외에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영생의 기쁨을 알지 못하는 유대인의 관리자였으며 또한 주님이 행하신 기이한 표적만을 보고 주님을 좇았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기적과 표적을 인정했으며, 또한 오늘밤 그와는 만나지 않으면 안될 비장한 각오와 결심을 했습니다. 다른 관원들의 눈치와 체면에도 불구하고 한낫 나사렛 목수인 예수께 나와서 영적인 것을 충족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자신의 이기적이고 편협된 선행으로 영생을 얻으며 살아가는 율법주의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런 바리새인중의 바리새인이며 유대인 관원이라는 소위 유대인 선생에게 주님은 매우 중요한 진리의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2) 성경적 연결
니고데모의 외적인 모습과는 다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를 나타내는 자는 요한복음 4장에 등장하는 사마리아 여인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와는 달리 그녀는 비천한 사마리아 여인이었지만 그녀의 생각은 오늘 본문의 유대인관원 니고데모와 똑같은 영적인 무지의 사람이었습니다.
요4장13-14절 이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주님이 그녀에게 말씀하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겠다고 하자 그녀는 그 물을 그저 육신의 갈급함을 채워주는 샘물로만 생각했습니다. 마치 오늘 본문에서 거듭남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니고데모가 모태에서 두 번 태어나는 것으로 해석한것과 같은 영적인 무지함이었습니다.
3) 적용
오늘 본문의 니고데모는 당시 부유하고 학식이 있고 부러울것이 없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완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적인 면에서는 완전히 무지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비천하며 또한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마리아여인과 비교해 볼 때 인간적인 부유함과 외적인 기준은 하나님의 나라의 기준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신분의 격차는 매우 컸지만 영적으로 모두 무지한 어리석은 자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외적인 중요성 보다도 더욱 가치있는 것은 하나님을 올바로 아는 믿음입니다. 두사람은 주님이 말씀하시는 영생의 길에 아직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영생의 길로 가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선행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중심을 오직 주님께로 맞추어야 합니다. 세상적인 것에 우리의 관심과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위대하고 학식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영적으로 대단히 무지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외모를 취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2. 표적을 믿는 믿음이 아닌 거듭남을 체험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요3:3)1) 본문설명
3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본문에서 니고데모는 특별한 질문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표적에 관심을 보이면서 주님께 찾아왔습니다. 요3장2절 당신의 행하시는 이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라는 말속에서 그가 주님이 행하신 표적을 보고 그를 좇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님을 랍비(율법선생,학자)로 인식하여 자신의 궁금증을 풀어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이시기에 이러한 니고데모의 속 마음을 꿰뚫어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궁금증에 대한 답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네가 율법의 의인이라고 자부하고 표적에만 관심이 있지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너의 속사람의 변화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과 의로 인하여 거듭남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거듭나다라는 헬라어 (아노덴,anothen)은 세가지의 뜻으로 해석됩니다. 첫째,근본적으로,처음부터 완전하게라는 뜻과 둘째, 다시, 두 번째 라는 해석, 세번째,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변화됨이란 세가지의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지금 주님의 말씀을 세 번째중 둘째인 다시, 또한번, 두번째 태어나다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성경적 연결:
요한복음서를 보면 주님이 행하신 7가지의 표적이 나타납니다. 본문에서 니고데모는 그중 가나안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그 사건(두번째 표적)과 그리고 많은 병자를 고치신 사건을 통해서 주님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남다른 사람으로 여겼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을 통하여서 이러한 표적만을 바라는 믿음과 자기의 유익과 배만 채우려는 이기적인 욕심으로 주님을 따르는 무리를 향하여 질타하셨습니다. 요4장48절에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고 하셨으며 또한 뱃새다 언덕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에는 요6장26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그릇된 잘못된 믿음을 질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니고데모도 예수님의 표적만 좇은 자였기에 주님은 거듭남을 필요성을 강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3) 적용:
예수님은 본문에서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거듭남은 육체의 거듭남이 아닌 영적인 거듭남을 뜻하는 것입니다.속사람이 변화되어 완전한 새로운 피조물이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중생을 뜻합니다. 우리의 변화는 근본적으로 내부에서부터 일어나는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신앙인들조차도 이 영적인 무지속에서 방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들은 영적인 주님의 진리의 말씀을 이해하지도 받아 들이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도 많은 어리석은 사람들은 주님의 진리의 말씀을 무시해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에는 그 모든 영적인 진리들이 다 확언되고 확증되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항상 주님이 주시는 영적인 말씀을 통해서 지혜를 간구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이 지혜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엡1장17-19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우상으로 삼고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 마음속에 부자가 되는 꿈이있고, 정치적 권력을 잡을 꿈이 있고 그들 마음가운데 주님이 로마의 압제에서 자기들을 구해 줄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들은 주예수 그리스도를 좇았던 것입니다. 요6장26절에 너희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양식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 이들은 또한 주님을 표적과 이적만 보고 따라 다녔던 것입니다. 표적을 구하는 것에는 결코 만족함이 없습니다. 또 다른 표적을 구하고 끝까지 표적만을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표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표적을 통해 이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주님앞에 나가시기를 축원드립니다.

3.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요4장4-5절)1) 본문:
4절-5절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답변의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유대인관원인 니고데모는 지금까지 인간의 선한행위로만 하늘나라에 가고 또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 는 주님의 말씀을 그저 피상적인 말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본질의 변화, 영혼의 완전한 변화로 생각지 않고,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인이 된 나에게 어찌 다시 어머니 모태에 들어가서 날 수 있느냐고 어처구니 없는 반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은 거듭나다라는 헬라어 (아노덴,anothen) 의 세 번째 뜻, 즉 위로부터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되는 그러한 완전한 근본적인 변화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유대인의 지도자요,바리새인인 너조차도 나의 말을 이해못하는구나 요3장5절에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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