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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명예를 구하는 기도 (마 20: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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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유대인들의 삼대 절기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19:1).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일어난 사건입니다.

1.고난에 관한 예언(17-19)
예수님께서는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마침내 죽으신 다음 사흘만에 부활할 것을 제자들에게 예고했습니다.예수님께서는 16장과 17장에서 이미 두번이나 장차 십자가를 지실 수난에 대한 예고를 했지만 제자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했습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본문의 내용을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반복해서 그가 십자가를 지실 것을 말씀하신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첫째는 앞으로 환난이 다가올테니 그것을 위해서 준비하라는 이유입니다.둘째는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제자들이 깨달았다면 주님께서 자꾸만 말씀하신 필요가 없습니다.그러나 저들이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반복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2.여인의 이기적 간구(20-21)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수난에 관한 말씀을 하실 때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주의 나라가 임할 때에 나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의 우편에,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하는 부탁을 드렸습니다.본문의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미는 살로메입니다(마 27:56,막 15:40).살로메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로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이것은 죄악된 인간의 욕구가 얼마나 이기적인 것인가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잘못되기는 했지만 첫째는 주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고 둘째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이라는 약속을 살로메는 믿고 있었다고 하는 점은 칭찬할만 합니다.이것은 저와 여러분들이 본받아야 할 점입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분명히 약속을 했는데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지 않고 자기 아들들의 영광을 구한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그러나 사실은 이것이 인간의 일반적인 경향입니다.우리는 하나님의 영광보다 내 자신의 영광을 구할 때가 많습니다.살로메의 명예를 구하는 이기적인 간구가 우리의 기도생활의 모습입니다.

3.예수님의 응답(22-23)
살로메의 요구에 대해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22절).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잘못 구하는 이들을 오히려 온유한 어조로 잘못을 지적하셨습니다.알지 못한다는 말은 성경지식이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저와 여러분이 성경지식이 없으면 살로메처럼 잘못된 기도를 합니다.예수님께서는 살로메의 잘못을 지적하시면서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22절)라고 질문을 하셨습니다.그러자 요한과 야고보가 “할 수 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그러나 이 대답은 닥쳐올 예수님의 수난때에 자신들이 배신할 것을 알지 못하는 영적 무지에서 온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과연 너희가 내 잔을 마시려니와”라고 하셨습니다.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이 장차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이들이 도망갈 사건에 대해서는 말씀을 안하시고,그 후에 그들이 다시 돌아와서 에수님의 잔을 마실 것,그들이 머지 않아서 주님을 위해서 순교할 모습을 말씀하셨습니다.그러면서 계속해서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이 말씀은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벳겔은 이를 ‘내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이외에는 내가 줄 것이 없다.내가 줄 것이 아니다.하나님께서 결정을 하시고 하나님께서 자리배정을 할 것이다’라고 해석했습니다.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좋은 자리에 앉기를,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영광을 얻기를 원합니다.그런데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서 결정이 납니다.어느 누구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그러시면서 27절에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여기서 우리는 으뜸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지녀야 할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으뜸이 되려고 하는 사람은 고난을 겪어야 하고,남을 섬기는 종이되어야 하며,주님을 위해서 자기 생명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막 10:45)고 했습니다.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주님은 이 땅에 오셨는데 우리는 자꾸 섬김을 받으려고만 합니다.이것이 문제입니다.

4.그 결과(24-28)
24절에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그럼 다른 제자들은 좀 나으냐 하면 그들도 마찬가지입니다.분히 여겼다고 했는데 사실 분히 여길 필요도 없습니다.그들이 무엇을 부탁하든,예수님이 로비활동에 의해서 좌지우지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알아야 합니다.그런데 다른 열 제자들은 ‘잘못하다가는 하나님 나라가 임했을 때 좋은 자리 다 빼앗기겠구나’ 생각하고 분히 여겼습니다.그들도 지금까지 누가 높으냐 하는 싸움에 가담했고,우월한 것을 좋아했고,교만하고 시기했던 사람들입니다.성경에 보면 교만만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유다서 6절에 보면 교만이 아담과 하와 그리고 천사들로 하여금 타락하게 했습니다.그밖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교만 때문에 패망의 길을 걸었습니다.이렇듯 가장 무섭고 오래된 죄 가운데 하나가 교만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교만을 없애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적 표준과 주님의 표준의 차이점을 봅니다.세상의 표준은 이방인들의 집권자입니다.25절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줄 너희가 알거니와”라고 했습니다.그러나 주님의 표준은 그리스도인,즉 섬기는 자입니다.26절에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세상의 표준과 주님의 표준이 완전히 다릅니다.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의 표준이 세상적인 의미에서 보면 얼마나 역설적인 진리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누가 참으로 위대하고 으뜸입니까세상에서 제일 낮은 사람입니다.많은 사람들을 섬기고,봉사하고,기도하는 사람이 바로 위대한 사람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우리 교회에서 누가 제일 높습니까 제일 많이 섬기는 사람.제일 많이 봉사하는 사람,제일 많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5.결 론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8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했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은 그것을 구체적으로 가르칠 뿐만 아니라 모범으로 보여주셨습니다.예수님의 나심과 사심과 죽으심이 모두 예수님의 섬기는 생활을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그 중에 앞에서 말씀드린 발을 씻긴 예는 가장 대표적인 것입니다.이렇게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을 섬겼습니다.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했는데 원문에 보면 ‘많은 사람의’에서 ‘의’라는 말은 ‘무엇을 대신하여’라는 단어입니다.‘많은 사람을 대신한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대속물이라는 말은 교환의 개념이 있는 말입니다.당시의 노예에게 자유를 줄 때에는 우선 노예를 돈을 주고 사서 노예문서를 태워버린 다음에 노예를 자유롭게 했습니다.노예를 위해서 지불하는 돈을 대속물이라고 합니다.우리는 예수님께서 피값으로 산 대속물이라고 합니다.이 말씀에서 예수님의 삶의 철학을 발견하게 됩니다.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삶입니다.또 많은 사람들 대신 대속물이 되신 희생의 삶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예수님은 인간의 본성 안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교만의 해독을 잘 알고 계시기에 섬기고 봉사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섬기고 봉사를 하다보면 교만이 사라집니다.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며 주님을 본받게 됩니다.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교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섬기는 삶살아야 합니다.또 참된 지도자의 자세를 발견하게 됩니다.누가 교회의 지도자입니까 섬김을 받으려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려는 사람,희생할 줄 아는 사람,희생 정신이 있는 사람입니다.그리고 참된 기도생활에 대해서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우리 속에는 본문에 나와 있는 살로메나 요한과 야고보처럼 세상적인 것이나 자기 가족의 안일만을 위하고 섬김을 받으려고 하고 남을 지배하려고 하는 세속적 야망이 있습니다.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그런 우리 자신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그대로 많은 사람들을 섬기고 그들을 위해서 희생하며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생활을 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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