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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 태 로 부 터 헌 신 (삿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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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의 등장과 함께 사사 시대는 막을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삼손은 2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15:20). 구약 학자들의 중평에 의하면 이 기간은 불레셋이 이스라엘을 억압했던 40년간의 하반기와 일치합니다. 그렇다면 삼손은 이스라엘이 언약궤를 빼앗겼던 아벡 전투와(삼상4;1-11) 사무엘이 불레셋을 누르고 그들의 압제를 종식시켰던 미스바 전투(삼상7:2-12)사이의 기간에 이스라엘을 통치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삼손은 실로에서 엘리 선지자가 사역하던 때에 자라났을 것이고 엘리가 사망했을 즈음에 이스라엘을 이끌기 시작하여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등단할 때까지 사사로서 활약했을 것입니다. 입다는 동쪽에서 두각을 드러낸 반면 삼손은 서쪽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사사 시대를 전체적으로 개관해 보면 삼손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시작한 때는 여호수아의 장로들이 죽은 지 약 300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때는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기 약 5년 전이었습니다.(주전1075-주전1055). 그러니까 사사 시대는 왕들의 출현으로 인해 막을 내리고 이스라엘은 왕권 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현대사회는 정부의 비중이 더 높아야 한다는 견해와 더 낮아야 한다는 주장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사사들이 다스리던 이스라엘의 정부는 비록 신정의 성격이 뚜렷하긴 해도, 백성들에게 끼치는 정치적 비중은 낮은 편이었습니다. 당시의 영구적인 중앙 정부는 실로에 있던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반자치적인 이스라엘 지파들을 지도하고 단합시키는 역활을 하였습니다. 사사들은 특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응급조치로 세워진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신실했더라면 이런 제도로도 충분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신실치 못하였고 사사들도 백성들의 거듭된 탈선을 막지 못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삼손의 시대에 무정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신정 왕권제를 도입하였습니다. 백성들의 죄 때문에 정부의 간섭과 비중이 더 높아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무궁하여서 이같은 왕권제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야 할 유일하신 참 왕을 가리켜 주는 궁극적인 진리의 화살표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왕은 다윗의 자손으로 약속된 메시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는 시온의 왕이시며 머리되신 분입니다. 종국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의 정치제도 그 자체는 중요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문제는 ‘주께서 우리의 왕이 되실 것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짐
사사기 13-16장에 기록된 삼손의 역사는 두 부분으로 엮어져 있는데 13-15장까지는 삼손의 출생과 지도자로 등장하는 과정이 나옵니다. 그리고 둘째 부분은 16장인데 삼손의 20년 간의 사사직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는 13장에서 성삼위의 2위이신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라고 부르는 한 단 지파 사람의 아내에게 나타났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그녀가 비록 불임이지만 아들을 갖게 될 것이며 그 아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바쳐질 것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2-4절) 그녀는 자기에게 나타난 분을 하나님으로 알아보지 못하였지만 그 분의 말씀을 믿고 곧 자기 남편인 마노아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마노아는 아내의 말을 믿었지만 기드온 처럼 확인하고 싶어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나중에 이들 부부에게 나타나서 처음에 들려주었던 말씀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 방법은 먼저 그들에게 다시 말씀을 선포하시고 그 다음 마노아가 바친 희생 제물을 불로 태우신 후, 그 불꽃 사이로 승천하시는 것이었습니다.(13:13, 14, 19, 20).때가 되자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약속된 아들이 태어났고 이름을 삼손이라 지었습니다.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여호와의 신이 비로소 그에게 감동하시니라’(13:24, 25).
우리는 삼손의 출생 기사를 통해 삼손이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차지하는 의의를 이해하는데 기본적인 전망대가 되어야 할 두가지 특징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첫째,삼손의 출생이 여호와의 사자에 의해 선포되고 희생 제물의 열납으로 학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삼손은 그와 유사한 형태로 출생이 선포되었던 성경의 또 다른 한 사람인 이삭과 동류가 되었습니다(창18:9-15). 삼손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시키기 위한 중요한 역활을 감당할 자였습니다.
둘째로 중요한 요점은 삼손이 모태로부터 영구적인 나실인이 되기 이해 성별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나실인 서원’은 민6:장에서 하나님의 율법으로 제정된 의식이었습니다. 이것은 제사장들의 경우와 구별되는 영적 헌신의 한 방법이었는데 자신이 성별된 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세 가지 구체적인 규례를 준수해야 했습니다. 즉, 포도주나 포도 열매 자체가지도 삼가며, 머리를 깍아서는 안되며, 죽은 시체가 있는 곳(초상집)에 들어가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준칙들은 단순한 외형적 징표가 아니고 나실인의 헌신을 드러내는 표식이었습니다.(고전11:2-16). 나실인은 실생활에서 경건해야 했습니다. 나실인의 서원은 자원제였으며 이정한 기간 동안만 유효하였습니다. 그러나 삼손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서 평생동안 나실인으로 헌신된 자였습니다. 이것은 삼손의 역활이 지닌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는 구원자로 부름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주께 헌신된 자의 한 모범이었습니다.
하나님의 ‘獨不將軍’
사사기 14장과 15자은 삼손이 태어나서 감당키로 작정된 일련의 사건들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들로 인해서 삼손은 자신이 맡아야 할 사역 속으로 깊이 끌려들게 됩니다. 삼손은 이스라엘 아벡에서 언약궤를 빼앗겼을 즈음에 청년기를 맞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삼상4장). 당시 블레셋의 세력은 누구도 도전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팽창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해줄 구원자의 출현이 대망되던 때었습니다. 삼손은 성령의 감동을 받고 블레셋을 대항할 기회를 엿보았습니다.(14:4) 마침 삼손은 딤나에 사는 한 블레셋 아가씨를 좋아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을 채비를 하였습니다. 아마 그는 이런 식으로 블레셋 사람들과 접촉을 한 후 적당한 기회에 구실을 만들어 이스라엘의 유감을 풀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삼손은 부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블레셋 아가씨를 신부로 맞으려고 굳게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어느 날 결혼 준비를 위해 딤나로 가던 길에서 한 젊은 사자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삼손은 성령의 능력으로 이 사자를 맨손으로 죽였습니다.(14:1-7) 얼마후 삼손은 결혼식을 위해 딤나로 내려가던 중 전에 죽였던 사자의 시체 곁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삼손은 벌떼들과 벌꿀을 발견하고 꿀을 떠서 먹었습니다. 이 일이 삼손에게 하나의 수수께끼로 떠올라 30명의 불레셋인 신랑 들러리들과 내기를 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14:14)
삼손은 이 수수께끼 를 내고는 30명의 블레셋 사람들이 알아맞추면 자기가 그들에게 각기 새옷 한 벌씩을 주고, 만일 풀지못하면 그들이 삼손에게 30벌의 새옷을 주어야 한다고 정했습니다(14:8-14)
블레셋의 신랑 들러리들은 삼손의 제의를 수락했으나 그의 수수께끼를 알아맞출 수가 없어 당황하며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삼손의 신부를 졸라대어 해답을 얻기로 궁리하였고 그들은 신부에게 말하기를 그녀가 답을 알려주지 않으면 그녀와 그 아버지의 집을 다 태워 죽이겠다고 위협하였습니다. 신부는 그녀의 남편을 신뢰하지 않고 블레셋 남자들이 시키는 대로 그냥 순순히 받아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삼손은 그만 내기에 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속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를 냈고, 이것이 동기가 되어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을 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령에 감동되어 아스글론으로 가서 30명을 살해 한 후 그들의 옷을들을 벗겨 블레셋 남자들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그 다음 홧김에 딤나를 떠났고 그의 신부는 장인에 의해서 신랑 들러리 중의 한 남자에게 넘어갔습니다(14:15-20)
얼마 후 밀을 추수할 때가 되자 삼손은 딤나로 돌아가서 자기 아내를 취하겠다고 장인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장인이 이를 거절하자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 밭을 쑥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300마리의 여우들을 잡아 두 마리씩 꼬리를 붙들어 묶고 그 매듭에 홰를 달아 곡식 밭으로 내몰았습니다(15:1-5)
이 시점에서부터 삼손과 블레셋 사람들 사이의 대결은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애꿎은 삼손의 아내와 그의 장인에게 책임을 돌리고 그들을 태워죽였습니다(15:6). 삼손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블레셋 사람들을 크게 살륙하였습니다(15:7,8). 그러자 블레셋은 이스라엘에 강력한 군대를 파병하여 삼손을 색출케 하였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견딜 수 없어 삼손을 블레셋에 넘겨주기로 하였습니다. 한편 삼손은 자신이 적들에게 가까운 접근할 수 있는 기회라면 적극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이같은 조치를 기꺼이 승락하였습니다. 그러잖아도 주님의 성령이 강건한 삼손에게 다시금 더 큰 힘을 넣어주자 삼손은 당나귀의 턱뼈로 1,000명을 거뜬히 죽였습니다(15:9-17).
주님은 이 모든 일들을 사용하여 삼손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삼손은 마침내 하나님의 백성들을 수호하는 우두머리가 되었고 적들에게는 커다란 두통거리가 되었습니다. 삼손은 이것이 하나님의 활동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번 사움에 대해서 ‘주께서 종의 손으로 이 큰 구원을 베푸셨다’고 간증하였고 하나님은 갈증에 시달린 삼손에게 기적적으로 물을 제공해 주심으로써 이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15:18-20).
삼손은 군대를 이끌지 않았습니다. 그는 불레셋을 정복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20년 동안 블레셋을 수 차례 강타함으로써 그들의 침략을 막고 이스라엘의 고통을 크게 덜어 주었습니다. 나폴레옹은 한 때 영국의 웰링톤 장군의 이름이 10,000명의 군인들과 맞먹는 가치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 삼손의 이름은 얼마나 더 크게 느껴졌겠습니까! 삼손은 과연 블레셋 국가를 호되게 갈기는 채찍이었습니다. 삼손은 이런 식으로 이스라엘을 20면 간 신실하게 다스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성별된 하나님의 독불장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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