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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민족적 회개 (느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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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님을 사랑하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옆사람과 인사 합시다.

유대인들이 나라를 잃고 1900년동안이나 세계를 떠 돌아 다니며 유 리하며, 갖은 핍박을 받아가면서도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었는 원동 력이 무엇인가를 본문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유 대주의 입니다. 유대주의란 곧 율법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지나친 율법주의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의 구세주로 받 아들이지 못했으며 그 결과로 유대인들은 세계에 유리하며 가는 곳마 다 갖은 박해를 받았음에도 그들의 신앙을 잃지 않고 유지할 수 있었느냐하는 것은 철저한 윱법주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윱법주의는 물론 복음과 어긋납니다. 그러나 유대 인들은 사도 바울이 말씀 하신 것처럼 성경을 읽을때 계시를 깨닫지 못하고 수건에 가리어졌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오늘 말 씀을 통해서 유대인이나 유대주의를 칭찬하자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철저한 말씀 중심과 하나님께 돌아가자는 회개의 정신을 가져 야 할줄 믿습니다.

뿐만아니라 오늘 말씀을 통하여 진정한 부흥운동의 모델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부흥운동은 회개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 다. 말씀이 선포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죄를 자복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참으로 바라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회개도 일시적 회 개가 아니라 실천에 옮기는 즉 회개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 자신 뿐 아니라 우리교회와 더 나아 가 우리 민족 전체가 하나님 앞에 이러한 회개하는 운동이 일어나기 를 바라는 마음 간절한 것입니다.

I. 회개하는 모습

1. 다 모였다고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수문 앞 광장에 모여서 말씀을 듣다가 율법에 초막적을 지키라는 말씀을 따라서 초막절을 지키어 여호수아 시대 이 후로 큰 즐거움이 있었다는 것 가지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장의 시작은 초막절을 지낸 2틀 후에 회개 운동이 시작됩니다. 아마 이들은 초막절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매일 들음으로 해서 그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범죄함과 아울러 가나 안 땅에 들어와서도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해서 포로가 되었다가 이제는 열방의 종이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절기 가 끝나자 마자 그들은 다시 하나님 앞에 모였던 것입니다.

모인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것도 이스라엘이 다 모였다고 했습니 다. 이스라엘은 중요한 일이 있을때 마다 하나님 앞에 모입니다. 하 나님 앞에 나와서 어떤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와 서 죄를 자복하고 굴복하는 것입니다.

요사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이기과 관계된 것이 있으면 모여 서 요구합니다. 국가적인 이익과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는 어떠 하든지 상관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이익를 위하여 모이고 외치는 모습과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모임는 비교해 볼때 그 나라의 국민성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중심의 모임입니다.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 아니 라 하나님 앞에 시간을 드리고 눈물을 드리며 회개하는 아픈 마음을 드리기 위하여 모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직장생활과 사회 생활 하면서 무슨 모임이 있다고 하면 자주 모입니다. 어떤때는 눈치보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 억지로도 모임에 참석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모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기 위한 모임은 가장 중요한 모임인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도 모이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2. 금식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금욕주의가 아닙니다. 금욕주의는 헬라철학에서 영 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영지주의에서 나왔습니다. 우리의 금식은 육신의 정욕이나 욕심을 끊기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금식은 우리 육체의 힘이되는 모든 양식을 끊음으로 해서 우리의 힘 과 도움은 오직 하나님 뿐이시다라는 것을 고백하는 신앙적 행위인 것입니다. 그래서 금식 그 자체가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으니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능력과 보살핌이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하나님이여 도우소서라고 하는 몸으로 기도하는 행위인입니다.

꼭 금식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년 내내 하나님의 긍 휼과 은혜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끼도 금식하지 않은 것은 한번쯤은 생가해 볼 문제인 것입니다. 다행이 많은 성도님들이 교회를 위하여 건축을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한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우리 교회의 축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썼습니다.

이것은 슬픔과 애통을 나타내는 고대 근동 지방의 관습이었습니 다. 베옷은 우리 나라도 상을 당하면 삼베옷을 입는데 애통의 표 현인것입니다. 머리위에 티끌 즉 재나 흙을 뿌리는 것은 극한 슬픔 을 나타내는 표현인 것이다. 다시 말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티끌만도 못하다는 낮아짐과 겸손함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회개하는 자의 마음의 자세를 볼 수 있습니다.

회개하는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형벌을 받아야 할 존재임을 깨닫고 지은 죄를 인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아니 면 나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행위인 것이다.

 4. 이방 사람들과 절교를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지난주에 중국과 수교 하면서 대만과는 단교했는데 더큰 국가적 이익 때문에 오랜 친구와 정을 끊어야하는 아픔이 라고 할 수있습니다. 중국이 대만과의 공식적인 관게를 끊지 않으면 안된 다 해서 대만과의 오랜 관계를 끊어 버리는 아픔이 있었습니가.만, 마찬가지로 여기에 나오는 이방인과의 절교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절교를 선언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향한 순 수한 신앙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수한 신앙을 유지 하기 위해서는 이방인과의 혼인을 금했던 것입니다. 만약 이방인과 결혼하면 이방신의 문화를 들여오게되어 이스라엘로 범죄하기 때문에 이방과 혼인을 금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의 백성으 로서 이방의 우상과 풍습과 문화를 버릴때에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 을 수 있는 것이다.

에스라는 느헤미아 보다 앞서 귀국하여 보니 제사장과 리위인들과 방백들이 이방인들과 연혼하였다는 말을 듣고 에스라 9:3절에 보면 속 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막혔다고 했고, 6절에 보면 하나님 앞에 부그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하나님을 향하여 얼 굴을 들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에스라는 느헤미아 보다 10여전 전에 일찍와서 이방여인과 혼인한 사실을 책망하고 이방여인들을 다 내어보 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에루살렘 성에는 이방인과 혼인한 사람들 이 친한 왕래가 있었고 이들이 물건을 가지고 와서 안식일에도 물건 을 팔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확실히 절교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혼합주의를 좋와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악은 그만큼 물들기가 쉽습니다.

예화 어떤 목사님 집에 앵무새가 있었는데 이새는 하는 말이 기도합시다. 집사집의 앵무새는 하는 말이 뽀보합시다. 하는데 사람이 오면 뽀보합시다. 집사가 창피하기도 해서 목사님 새에게 배우라고 몇일 갖다 놓았더니 거기서도 집사님의 새가 뽀뽀합시다. 목사님의 새가 하는 말이 하나님 내기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했답니 다. 그만큼 나쁨것은 영향받기 쉽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한 것인줄 믿 습니다.

민수기 11장 4절에 보면  이스라엘에 섞여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할 꼬  솔로몬은 정치적인 책략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이방여인들을 왕비로 데리고 와서 예루살렘을 우상의 도시로 만들고 그 결과 나라 가 둘로 나누어지는 비극을 겪어야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아직까지 세속적인 요소가 있습니 까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한 것이 우리에게 아직도 남아 있다면 우 리는 과감히 버릴줄 아는 결단과 용기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느헤미아 시대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죄 뿐 아니라 열 조의 죄를 자백하고 그 표시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은 과거의 습관과 행동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은 인간관계가지 완전히 돌이 켰던 것입니다.

 5. 말씀을 듣고 자복했다.

말씀은 우리를 비춰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또 우리의 신앙과 생활 의 기준입니다. 말씀의 표준이 없이는 옳고 그름을 판가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말씀의 거울로 우리의 신앙과 생활을 조명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시간 동안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그들의 죄가 더욱 드러날 수 밖에 없 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만이 아니라 민족의 죄가 생각납니다. 그 죄 를 볼때 마다 그들은 자복합니다. 세시간 동안 이나 자복하며 회개하 는 운동 일어났습니다.

자복이란 스스로 죄를 드러내어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입술로 자기의 죄를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입술 뿐만 아니라 행동 으로 실천하며 마음과 행동이 다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진정한 회개를 했던 것입니다.6. 여호와께 경배 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경배와 찬양을 드 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 앞에 이와 같은 회개를 하고나니 중심에 우러나오는 찬양을 드렸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심령의 부흥을 원하십니까 모이기를 힘쓰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올때 우리의 심령은 새로운 기쁨이 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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